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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미싱타는 여자들’ 전태일에 가려진 여성 노동자…그들을 소환하다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01-12 19:35:1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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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 남쪽에 있는 동화시장 계단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쓰러졌다. 어느 청년노동자의 죽음은 형식으로만 존재하는 법과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의 괴리를 폭로했고 한국현대사에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를 남겼다. 유가족인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운동에 헌신한다. 유신 정권은 이소선 여사를 체포해 구치소에 가두었고, 노조원들이 항의의 뜻으로 석방을 요구하자 경찰은 노동학교 건물을 폐쇄하는 걸로 대응했다. 배움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여성 노동자들은 봉쇄를 뚫고 농성에 들어갔다. 1977년 9월 9일, 국가와 언론은 이 날이 북한의 건국절임을 언급하며 그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컷.
김정영, 이혁래 감독의 ‘미싱타는 여자들’(2020)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았던 산증인들,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리며 평화시장에서 쉼 없이 재봉틀을 돌렸고 투쟁의 대오에 나서야 했던 여성 노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전태일의 영웅적인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러나 정작 뒤에 남은 사람들, 지난한 일상의 무게와 함께 수난을 감당해내야 했던 이들에겐 좀처럼 시선을 주지 않는다. 절박했고 치열했지만, 이젠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망각되기 십상인 위태한 기억들. 영화는 당시 20대 여공으로 현장에 나섰고 이젠 어느덧 60대가 되어 해맑은 얼굴로 과거를 추억하는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세 사람의 목소리를 담담히 실어내며, 강바닥에 잠겨있던 시간의 조각들을 다시금 현재로 길어 올린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로서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연출에 임하는 감독의 ‘태도’에 있다. 흔히 다큐멘터리가 빠지곤 하는 윤리적 함정은 감독이 ‘작가’의 위치에 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의욕의 과잉에 있다. 의도적으로 설계된 장면의 작위성, 메시지를 주입받도록 강제하는 내레이션의 남용과 증언의 자의적 편집. 이런 경우 작품의 중심이 되어야 할 화자는 감독의 프레임 안에 갇힌 채 도구화, 대상화되고 만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그러한 계몽의 함정을 비켜나간다. 영화는 어떤 독창적인 형식미를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감독이 ‘청자’의 위치로 두어 발 물러서서 인터뷰에 응하는 화자들의 목소리,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과 감정, 반응을 최대한 존중하고 오롯이 담아내는데 집중한다.

사수 투쟁 당시의 진압 상황을 녹화한 뉴스릴 영상이 한번쯤 들어갈 법한 대목에서도 영화는 직접적으로 보여주고픈 유혹을 뿌리친다. 인용되는 자료는 개인의 사진과 편지의 내용 뿐. 섣부른 스펙터클과 감정이 고이고 흘러넘침을 자제한 채, 영화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자 하고, 덕분에 우리는 저 마다의 심상(心象)을 만들어가며 작고 평범하고 낮지만, 온 몸을 던져 한국 현대사의 위기를 살아낸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종국엔 엄청난 위력의 감동을 만들어낸다.

보통 역사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벌인 비범한 업적의 산물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는 작은 용기와 소소한 선행, 그들이 품은 인간다운 삶과 세상에 대한 희망이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는 진보의 바탕이었다고, ‘미싱타는 여자들’은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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