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리저렉션’(2021)은 시리즈의 리부트(Reboot)도, 극장에서 마음 편히 즐길 흥겨운 액션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이 영화의 기이함은 영화에 대한 대중 관객의 기대를 일부러 배반하고 비켜나가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데 있다. 때때로 슬로 모션을 곁들이며 안정된 구도 안에서 동작의 합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던 원화평 무술감독의 세련된 무술 안무는 거친 핸드헬드 카메라로 인해 가시성을 떨어뜨리는 불편하고 산만한 액션으로 대체되었고, 만화적 과장과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실사에 도입한 참신함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워쇼스키 형제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실제와 가상의 구분을 묻는 지적 유희의 신선함은 18년 만에 돌아온 이 후일담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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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리저렉션’ 스틸컷. |
그렇다면 이건 전성기의 역량을 잃은 창작자가 프랜차이즈라는 산업의 필요에 복무해 억울하게 끌려 나와 내놓은 흔한 실패작인가? 분명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실패작이다. 문제는 이것이 ‘의도된 실패’라는데 있다. ‘매트릭스’(1999)에서 출발해 ‘매트릭스 리로디드’(2003)와 ‘매트릭스 레볼루션’(2003)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고해의 매트릭스로 내려온 네오의 행적, 이 SF 서사극을 일말의 비장함을 품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매트릭스 리저렉션’에서 (창작의 파트너였던 동생 릴리가 불참하고) 홀로 영화를 짊어진 감독 라나 워쇼스키가 하는 작업은 우선 시리즈가 가졌던 진지한 아우라를 파괴해버리는 해체주의적 실천이다.
네오가 아닌 프로그래머 토머스 앤더슨은 명작을 만든 게임 디자이너로 성공한 인생을 누리고 있다. ‘매트릭스’ 3부작은 같은 제목으로 출시된 비디오 게임의 시나리오였으며, 그가 다니는 개발사의 모 기업인 워너 브라더스는 속편을 반대하는 그의 의견을 묵살하고 ‘매트릭스 4’를 제작하라고 강요하며, 심지어 개발사의 사장은 네오의 숙적인 악당 스미스이다. (개발 도중 팀원 간에 오가는 말들은 실제 영화를 둘러싸고 오갔던 비평적 반응을 상기시킨다.) 이건 창조자 스스로 자신의 창조물에 내뱉는 지독한 메타픽션(Meta-fiction)적 농담이다. 영화 안의 상황과 영화 밖의 현실 간에 경계가 모호해지다 못해 무너지는 이러한 농지거리는 산업 시스템에 종속된 창작자로서 감독 자신이 처한 딜레마, 그리고 수익 창출을 위해선 예술가의 창조성 따윈 존중하지 않는 극 중의 워너 브라더스처럼, 오로지 자본의 증식만을 목적으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자학적 풍자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를 통해 타인의 정해준 삶의 목표를 자신의 것인 양 욕망하고,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살다 죽는 현대 자본주의의 비극적 본질을 디지털 시대의 플라톤적 알레고리로 소묘한 바 있다. 그러나 체 게바라의 초상을 새긴 티셔츠와 책이 버젓이 시장에서 팔리는 현실이 입증하듯, 자본주의는 자신을 반대하고 위협하는 혁명의 요소들마저 끌어안아 상품으로 물화(物化)시킴으로써 돌발사태를 저지하는 전략을 취한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계몽과 해방의 서사가 되고자 했지만, 현실적인 귀결은 블록버스터 상품이었을 뿐이라는 얄궂은 현실. 이러한 궁지를 빠져나오는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라나 워쇼스키가 보기에 남은 길은 영화로 현실을 ‘더욱 그럴 싸’하게 복제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폭로하는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이 아니었을까?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