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을 장르로 친다면 하이브리드(hybrid) 무협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체된 가족-공동체의 재결합을 동인(動因)으로 삼는 미국식 가족주의와 영웅의 탄생기라는 서사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있었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관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나 프로게이머의 경기가 규칙을 숙지하고 있더라도 매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며 재미를 안겨주듯, 기본적인 바탕을 공유하더라도 다른 옷을 가져다 입혀 변주된 극을 관객은 결말이 다 예측되는 이야기임에도 흥미롭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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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컷. |
이 영화는 익숙함과 참신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흔하고 뻔한 요소라도 배치와 조성을 바꾸면 색다름과 동시에 친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대중오락의 원리를 증명하는 예시이다. 상투적인 플롯을 답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던 것은, 중국계 캐나다인 배우의 육체로 재현되는, 정작 본산인 홍콩에서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쿵푸 액션과 무협 영화의 컨벤션이 할리우드의 손길로 새로이 단장해 스크린에 돌아왔을 때의 반가움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1985)에서 자동차가 판자촌을 뚫고 질주하는 추격신의 혼란이 대도시 시가지를 휩쓸고 다니는 버스로 뒤바뀌고, 샹치(시무 리우)가 남파권법의 기법을 구사하며 주변 사물을 이용하는 성룡식 액션 스턴트를 펼치는 대목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지 않을 무협영화의 팬이 어디 있으랴? 여동생 샤링의 무기 유성추를 비롯한 텐 링즈의 무기들은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 이래 무협영화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도구들이며, 가면을 쓴 정예 조직원의 복장은 ‘오독’(1978)에서 가져온 것이고, 웬우(양조위)의 무기인 팔찌 텐 링즈는 멀리로는 유가휘 주연의 ‘소림 36방’(1978), 가까이로는 주성치의 ‘쿵푸 허슬’(2004)에 등장한 홍가권의 수련 도구 철수환을 닮아있다.
탈로 마을의 풍경은 ‘협녀’(1971)와 ‘와호장룡’(2000)의 대나무 숲, 샹치의 어머니가 입은 의상의 디자인은 ‘연인’(2004)에서 받은 영향이 역력하며, 샹치의 이모(양자경)가 그를 지도할 때 선보이는 태극권과 팔괘장을 섞은 듯한 움직임은 ‘이연걸의 태극권’(1993)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탈로의 장로로 등장하는 노인은 한때 이소룡의 스턴트 대역이었고 칠소복의 맏형으로 ‘복성고조’(1985)와 ‘비룡맹장’(1988) 등, 홍콩 액션의 전성기에 맹활약한 배우 원화이니 ‘샹치’는 어느덧 장르의 고전이자 지난 시대의 유산이 되어버린 옛 홍콩 액션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와 서구 영화인들의 애정에 찬 헌사인 셈이다.
대개 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신비화된 동양의 이미지는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자의적인 왜곡이 겹친 결과로 오리엔탈리즘이란 비판의 혐의을 면치 못하곤 한다. 그런데 제작진은 탈로 마을이라는 아시아적 판타지의 공간을 창조하면서 중국 고대의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제강 기린 추오 구미호의 삽화까지 3D 그래픽으로 재현하는 등, 타 문화권의 문화적 컨텍스트를 탐구하고 존중하는 성의를 드러내 보인다. ‘촉산’(1983)처럼 동양인 스스로 그려낸 무협 판타지도 괜찮지만, 서구인이 표현한 동양적 판타지도 잘만 하면 나쁘지 않음을 ‘샹치’는 보여준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