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무협 영화의 하이브리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09-08 19:18:38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을 장르로 친다면 하이브리드(hybrid) 무협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체된 가족-공동체의 재결합을 동인(動因)으로 삼는 미국식 가족주의와 영웅의 탄생기라는 서사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있었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관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나 프로게이머의 경기가 규칙을 숙지하고 있더라도 매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며 재미를 안겨주듯, 기본적인 바탕을 공유하더라도 다른 옷을 가져다 입혀 변주된 극을 관객은 결말이 다 예측되는 이야기임에도 흥미롭게 보게 된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컷.
이 영화는 익숙함과 참신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흔하고 뻔한 요소라도 배치와 조성을 바꾸면 색다름과 동시에 친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대중오락의 원리를 증명하는 예시이다. 상투적인 플롯을 답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던 것은, 중국계 캐나다인 배우의 육체로 재현되는, 정작 본산인 홍콩에서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쿵푸 액션과 무협 영화의 컨벤션이 할리우드의 손길로 새로이 단장해 스크린에 돌아왔을 때의 반가움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1985)에서 자동차가 판자촌을 뚫고 질주하는 추격신의 혼란이 대도시 시가지를 휩쓸고 다니는 버스로 뒤바뀌고, 샹치(시무 리우)가 남파권법의 기법을 구사하며 주변 사물을 이용하는 성룡식 액션 스턴트를 펼치는 대목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지 않을 무협영화의 팬이 어디 있으랴? 여동생 샤링의 무기 유성추를 비롯한 텐 링즈의 무기들은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 이래 무협영화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도구들이며, 가면을 쓴 정예 조직원의 복장은 ‘오독’(1978)에서 가져온 것이고, 웬우(양조위)의 무기인 팔찌 텐 링즈는 멀리로는 유가휘 주연의 ‘소림 36방’(1978), 가까이로는 주성치의 ‘쿵푸 허슬’(2004)에 등장한 홍가권의 수련 도구 철수환을 닮아있다.

탈로 마을의 풍경은 ‘협녀’(1971)와 ‘와호장룡’(2000)의 대나무 숲, 샹치의 어머니가 입은 의상의 디자인은 ‘연인’(2004)에서 받은 영향이 역력하며, 샹치의 이모(양자경)가 그를 지도할 때 선보이는 태극권과 팔괘장을 섞은 듯한 움직임은 ‘이연걸의 태극권’(1993)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탈로의 장로로 등장하는 노인은 한때 이소룡의 스턴트 대역이었고 칠소복의 맏형으로 ‘복성고조’(1985)와 ‘비룡맹장’(1988) 등, 홍콩 액션의 전성기에 맹활약한 배우 원화이니 ‘샹치’는 어느덧 장르의 고전이자 지난 시대의 유산이 되어버린 옛 홍콩 액션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와 서구 영화인들의 애정에 찬 헌사인 셈이다.

대개 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신비화된 동양의 이미지는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자의적인 왜곡이 겹친 결과로 오리엔탈리즘이란 비판의 혐의을 면치 못하곤 한다. 그런데 제작진은 탈로 마을이라는 아시아적 판타지의 공간을 창조하면서 중국 고대의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제강 기린 추오 구미호의 삽화까지 3D 그래픽으로 재현하는 등, 타 문화권의 문화적 컨텍스트를 탐구하고 존중하는 성의를 드러내 보인다. ‘촉산’(1983)처럼 동양인 스스로 그려낸 무협 판타지도 괜찮지만, 서구인이 표현한 동양적 판타지도 잘만 하면 나쁘지 않음을 ‘샹치’는 보여준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칼리드 공항, 또 피격 12명 사망 309명 부상
  2. 2[속보]'가평 계곡살인' 이은해, 남편 유족연금 2년넘게 1300만 원 챙겨… 환수 0원
  3. 3극지해양미래포럼, 오륙도 조간대 체험·플로깅 행사 개최
  4. 4경기 안성 한 국도서 승용차 비탈길 추락, 30대 운전자 사망
  5. 511일 부울경, 구름많고 경남 서부내륙엔 소나기 소식도
  6. 6찬바람 부는 건설업…'비자발적 이직' 35개월來 30만명 돌파
  7. 7삼양사, 최근 3년 반 동안 공정위 과징금 가장 많이 매겨져
  8. 8울산 북구, 내년 구의원 월정수당 15% 인상안 주민 의견 듣는다
  9. 9'대구 상가 천장 마감재 붕괴사고', 경찰 합동감식 진행
  10. 102020년 이후 19조원 풀린 모태펀드…75%는 수도권에 투자
  1. 1울산 북구, 내년 구의원 월정수당 15% 인상안 주민 의견 듣는다
  2. 2與 “한동훈 딸 수사 덮었나”…법무장관 당시 수사개입 의혹 공세
  3. 3나경원 ‘젤렌스키 감사 서한’에 與 “매국”…나 “친북 정권”
  4. 4국힘 “李 대통령, 北 저자세 정동영 즉각 경질하라”
  5. 5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6. 6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7. 7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8. 8李대통령 “능력 안되면서 큰자리 요구하다 안 되니 내부 공격”
  9. 9‘정청래 비자 보류’에 민주당은 유감…국힘 “한미동맹 균열”
  10. 10이 대통령 지지율 직전과 같은 37%…민주당 35%, 국민의힘 26%
  1. 1극지해양미래포럼, 오륙도 조간대 체험·플로깅 행사 개최
  2. 2찬바람 부는 건설업…'비자발적 이직' 35개월來 30만명 돌파
  3. 3삼양사, 최근 3년 반 동안 공정위 과징금 가장 많이 매겨져
  4. 42020년 이후 19조원 풀린 모태펀드…75%는 수도권에 투자
  5. 5배달 문화 자리 잡으면서 불만도 급증… 5년여 간 소비자 상담 9430건
  6. 6"국세 체납액 116조원 돌파…미납에 따른 가산세 급증"
  7. 72030년엔 로봇용 D램, 20배 증가 전망…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호재’
  8. 8동남권 액셀러레이터 시리즈벤처스, 부울경 스타트업 11곳 IR 데모데이
  9. 91245회 로또 복권 1등 10명…당첨금 각 30억 651만 원씩
  10. 10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9.5원… 전주보다 1.3원 ↓
  1. 1[속보]'가평 계곡살인' 이은해, 남편 유족연금 2년넘게 1300만 원 챙겨… 환수 0원
  2. 2경기 안성 한 국도서 승용차 비탈길 추락, 30대 운전자 사망
  3. 311일 부울경, 구름많고 경남 서부내륙엔 소나기 소식도
  4. 4'대구 상가 천장 마감재 붕괴사고', 경찰 합동감식 진행
  5. 5울산 5개 구·군 재정자립도 모두 4년 전보다 하락
  6. 62027학년도 대입 수시, 지역인재·지역의사제 전형 전년대비 40% 지원 증가
  7. 7윤호중 행안부장관, 임은정 광주 중수청장 감찰 지시
  8. 8'이웃 간 강력범죄'까지 부르는 층간소음, 10년간 전화상담 35만 건 넘어
  9. 9한글날 연휴 둘째 날 북항에 5만9천명…‘부캉이’ 누적 방문객 127만명
  10. 10중동 바퀴벌레 부산에 터 잡았다…감만항에 바글바글
  1. 1한화 김경문 감독·손혁 단장 동반 퇴진…후임 인선 착수
  2. 2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3. 3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4. 4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5. 5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6. 6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7. 7“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8. 8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9. 9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10. 10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