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원작서 퇴보한 ‘2020 뮬란’의 정치적 올바름

  • 조휘재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0-10-07 19:08:16
  •  |   본지 1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뮬란’(2020)은 현재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이 어떤 식으로 동원되고 오용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영화는 근래 주류 상업영화에서 디즈니가 여성주의 서사를 빚어가는 방식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다. ‘캡틴 마블’(2019)이나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19)에서 우리는 극의 전면에 대두하는 여성주인공을 보았다. 그러나 이들 영화는 영웅 서사에서 인물에게 주어져야 할 역경과 고뇌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대폭 생략하면서, 영웅적 주체로 거듭나야 할 여성 캐릭터에 납득할만한 보편적 설득력을 부여하는 데는 실패했다.
   
‘뮬란’ 스틸.
원작 애니메이션 ‘뮬란’(1998)과 실사영화 리메이크작이 갈라지는 지점도 마찬가지이다. 두 영화 모두 기본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짜인 사회질서의 견고한 틀 속에서 차별과 억압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고자 하는 여성 주인공을 그린다. 하지만 인물과 서사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리메이크가 도리어 22년 전의 원작보다 퇴보한 면면을 노출한다. 원작의 뮬란은 평범한 소녀로, 처음에는 군사 훈련을 버거워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전사로 성장한다. 반면 리메이크작에서의 뮬란(유역비)은 처음부터 천부적인 ‘기’를 타고나 우월한 능력을 과시하는 초인으로 묘사된다.

다친 아버지를 대신하기 위해 입대를 결심한 원작 속 뮬란의 모습은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이의 영웅적 비장함과 이타적인 심성을 부각하는 명장면이었지만, 리메이크작에서 뮬란의 동기는 자신을 묶어두려는 집안에 대한 반항심에 뛰쳐나오는 식으로 가볍게 연출돼 행동의 동기와 내적 갈등의 깊이를 잃고 만다. 리메이크작의 이러한 변경은 원작이 가지고 있던 ‘잠재성을 일깨우고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는 근대적 여성상’이라는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훼손하고 만다.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지도 않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대한 고민은 결여돼 있다. 단지 초인적 능력을 뽐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일차원적인 캐릭터성을 두고 진지한 여성주의 서사라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메시지를 강변하기 위해 극의 개연성과 설득력을 무너뜨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메시지조차 조악하다는 데 있다. 마녀 시아니앙(공리)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세상을 꿈꾸지만, 스스로가 지닌 강력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오랑캐의 왕 보리 칸에게 종속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남장으로 정체를 감추고 있기에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는 마녀의 도발에 뮬란이 갑옷을 벗고 머리를 푸는 장면은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주인공을 표현하려고 한 의도였겠으나, 긴 머리를 잘랐던 원작의 뮬란과는 반대로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복귀해버리는 논리적 모순을 낳고 만다. 검에 새겨진 유교적, 봉건적 가치의 화두를 클로즈업하는 엔딩은 그 모순에 정점을 찍는다.

   
잘 다듬어진 인물과 서사는 그에 따르는 다양한 정치적 해석과 심도를 얻는다. 반대로 메시지를 강변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짜낸 서사는 도리어 의도하고자 한 본래의 메시지와 설득력을 잃고 만다. 정치적 올바름이 화두가 된 시대에 어째서 우리는 22년 전보다도 뒷걸음친 영화와 메시지를 봐야 하는 것일까?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법기수원지 추가 개방, 양산시 손 놨나”
  2. 2부산 철마 한우 싸다 싸
  3. 3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4. 4[포토에세이] 노랗게 물든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5. 5부캉이 일단 외해 내보냈다(종합)
  6. 6“우리가 알던 그 시절 SM 맛” 이수만표 흥행 공식 또 적중…돌풍 속 잡음도
  7. 7한화오션, 부산 R&D 확대…설계·연구인력 채용도
  8. 8돗자리 앉아 흥겨운 트로트 즐겨요
  9. 9집값 상승 이끈 ‘수영리버·비치벨트’…부산판 한강벨트 주목
  10. 10부산도시철 7년 만에 멈춰서나…22일 노사 최종교섭
  1. 1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2. 2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3. 3우크라 공관원 추가 철수에 국힘 반발
  4. 4‘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5. 5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6. 6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7. 7부산교통공사 사장 임명, 시설공단은 보류… 협치 여지 남긴 전재수
  8. 8'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9. 9울산시 국감, 시장 발언에 국힘 의원들 퇴장
  10. 10제미나이에 물었다는 이 대통령, 野 "제미나이에 국정 의존, 처참한 수준"(종합)
  1. 1한화오션, 부산 R&D 확대…설계·연구인력 채용도
  2. 2집값 상승 이끈 ‘수영리버·비치벨트’…부산판 한강벨트 주목
  3. 3SB선보, 대선조선 인수 마침표…‘SB대선’ 닻 올렸다
  4. 4비정규직 58만명 역대 최대…부산 노동자의 42%(종합)
  5. 5市, 불꽃축제 앞둔 광안리서 바가지 근절 캠페인
  6. 6타 지역 줄어드는데 부산 5.9%↑…고령화 여파도
  7. 7동남권 해양ICT 육성…해운AX·북극항로 개척 협력
  8. 8‘모두의 창업’ 2기 가동…부울경 1135명 레이스
  9. 9선박 배기가스 저감·밸브제어로 두각…AI 관제 신사업으로 영토 확장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21일
  1. 1“법기수원지 추가 개방, 양산시 손 놨나”
  2. 2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3. 3부캉이 일단 외해 내보냈다(종합)
  4. 4부산도시철 7년 만에 멈춰서나…22일 노사 최종교섭
  5. 5부산대·교대 통합 온도차…부실 보고 질타도
  6. 6데이터센터 몰리는 사하구…주민 갈등 줄일 조례 탄생
  7. 7부산시 신임 기획조정실장, 하민상 공수처 담당관 임용(종합)
  8. 8창원 병원 혈액투석실 C형 간염 14명 집단감염
  9. 9생곡소각장·퐁피두 등 전·현 시정 공방…울산 국힘 퇴장 파행
  10. 1022일 출근길 기온 ‘뚝’…부울경 최저 2~9도
  1. 1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2. 2‘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3. 3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4. 4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5. 5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6. 6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7. 7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8. 8"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9. 9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10. 10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