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봉준호 영화와 ‘사건’의 철학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25 19:09:58
  •  |  본지 1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명제에 한 줄을 덧붙인다. 분명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항상’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을 마주하는 순간, 어떤 ‘낯섦’과 조우하고 나서야 인간은 갑자기 들이닥친 당황스럽고 불편한 것을 이해하고자 사유를 하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이데거는 고장난 망치를 비유로 든다. 벽에 못을 박거나 달군 쇠를 두들길 때, 손 안의 망치는 도구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기에 개별적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루가 빠져 더 이상 편리하지 않게 된 망치는 자명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불편함의 대상이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멀쩡한 망치가 ‘존재했음’을 상기시킨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스틸.
봉준호 영화는 마치 하이데거의 망치와도 같다. ‘괴물’(2006)에서 괴물은 영화가 시작한 지 15분 만에 갑자기 출몰해 한강변을 헤집는다. 괴물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 정체를 중후반까지 감추고 서서히 밝혀가는 구성을 취하는 걸 떠올리면 장르 안에서 이 구성은 괴물의 생김새만큼이나 기형적이다. 애당초 괴물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감독의 선언. 정작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괴물의 출현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어떤 ‘낯선’ 것들, 일상의 층위 아래 감춰져 왔던 한국사회의 공포와 불안을 가시성의 표면 위로 끌어올리고 ‘탈은폐’하는 데 있다. 영화가 겨냥하는 진정한 괴물은 괴물 자체가 아니라, 인물의 대응 과정에서 드러나는 국가의 부재, 제 살길만 도모할 뿐 연대하지 않는 민중과 변절한 운동권 등 침묵 속에 묻어둔 한국사회의 병폐다.

이처럼 ‘사건’을 계기 삼아 불편한 진실에 다가서려는 ‘탈은폐’의 모티브는 일말의 서스펜스를 동반하며 봉준호 영화의 서사를 추동하는 원동력이 된다. ‘마더’(2009)에서 아들이 살인자가 아님을 입증하고자 나섰던 어머니의 탐사는 도리어 약자끼리 서로를 갉아먹는 밑바닥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고, ‘기생충’(2019)에서 성공대로를 달릴 것만 같았던 기우 가족의 사기극은 지하실에 봉인된 비밀의 문을 열어젖히면서부터, 상부 구조에 기생하면서 같은 계급끼리는 투쟁하는 계급적 현실의 역설을 희비극적으로 드러내고 만다. ‘설국열차’(2013)의 말미에서도 주인공 커티스는 첫 칸의 밑바닥을 열고 지하의 기관실에서 부속품처럼 소모되는 계급사회의 실상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면서 문득 봉준호 영화 속 장면을 떠올렸다. 바이러스 확산 못잖게 무서운 건, 이 돌발적 ‘사건’이 들이닥친 뒤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는 한국사회의 어그러진 풍경들, 당장의 생계유지에 위기를 맞은 서민의 계급적 현실과 민중들 삶의 불안을 파고든 사이비 종교의 실체였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양상은 봉준호 영화가 추구해온 발화의 형식과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평소에 외면해왔던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이 파국적 상황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거울을 대하듯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의 말미에서 기우의 아버지 기택은 저택의 전등을 깜빡이며 모르스 신호를 보낸다. 무관심한 이들에겐 단지 전등의 고장이겠지만, 신호를 해독할 수 있는 이에겐 위급함을 알리는 ‘존재의 목소리’다. 그 신호에 응답하는 순간부터 위기를 타개할 하나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많이 본 뉴스RSS

  1. 1자본주의 병폐 지적 ‘필경사 바틀비’ 연극으로
  2. 2일본 톱배우 다케우치 유코 사망
  3. 3최치원…그의 길 위에서 생각한다 <34> 합천 가야산 해인사 들다
  4. 4지방의료원 절반은 흑자…동·서부산의료원 신설 힘실린다
  5. 5[서상균 그림창] 딱이네!
  6. 6힘내라 부울경 소·부·장 <4> ㈜중앙카프링
  7. 7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9> 실향민의 노래 ‘꿈에 본 내 고향’
  8. 8경쟁력 압도적인 거물급 필요…야권 김무성 투입론까지 거론
  9. 9부산 금융센터지수 11계단 대폭 상승
  10. 10부산 서구에도 구립 도서관 생긴다
  1. 1경쟁력 압도적인 거물급 필요…야권 김무성 투입론까지 거론
  2. 2‘산복도로 100원 택시’ 내년 시동
  3. 3‘포스트 심상정’ 김종철·배진교로 좁혀졌다
  4. 4“변화세력 연대” “원도심 비전 구상”…야당 후보군 추석 민심잡기
  5. 5피격 전 문재인-김정은 ‘친서 소통’ 있었다…북한 신속사과 이끈 배경
  6. 6“대통령 보고 47시간 진실 밝혀라”
  7. 7여야 이견…국회 ‘대북결의안’ 채택 불발
  8. 8해상 시신 수색에…북한 “군사분계선 넘지 말라” 이중적 태도
  9. 9북한 "남측, 영해 침범 말라" "시신 수습하면 넘겨줄 방법 생각"
  10. 10靑 "진상 규명 위해 남북 공동조사 요청"
  1. 1 ㈜중앙카프링
  2. 2부산 금융센터지수 11계단 대폭 상승
  3. 3롯데그룹, 사회공헌활동으로 코로나19 극복 앞장
  4. 4“태풍 때 고리·월성원전 가동 중단, 염분으로 인한 전기불꽃 현상 탓”
  5. 5올해 부산서 수도권 이주 1만 명 돌파…75%가 ‘2030’
  6. 6
  7. 7
  8. 8
  9. 9
  10. 10
  1. 1 합천 가야산 해인사 들다
  2. 2지방의료원 절반은 흑자…동·서부산의료원 신설 힘실린다
  3. 3부산 서구에도 구립 도서관 생긴다
  4. 4 ‘반역’을 꿈꾸다
  5. 5김해 봉황동유적지 일대 가야시대 토성 흔적 확인
  6. 6거창 공사중단 모텔 ‘청년주택’ 변신 본격화
  7. 7부산 동구 쪽방촌 정비…공공주택 425채 공급
  8. 8“합천은 최치원이 말년에 은거한 곳…가야산 소릿길 등 이야기 가득”
  9. 9오늘의 날씨- 2020년 9월 28일
  10. 10양산시의회 이상정 부의장, 직무참여 일시정지 풀렸다
  1. 1햇빛이 야속해…롯데, 타구 놓치며 승기 날려
  2. 210년 만에 첫 우승 안송이…10개월 만에 두 번째 정상
  3. 3부산, 파이널라운드 첫 경기 고배…1부 잔류 먹구름
  4. 4가을야구 앞둔 토론토, 에이스 류현진 언제 쓸까
  5. 5발렌시아, 우에스카와 1-1 무승부...‘이강인 교체 출전’
  6. 6 '1골 2도움’ 손흥민 맹활약…토트넘, 유로파리그 PO 진출 성공
  7. 7류현진 7이닝 무실점 완벽투 … 토론토 PS 진출 확정
  8. 8BNK 썸, 코로나19로 지친 팬 위한 뮤직비디오 공개
  9. 9
  10. 10
우리은행
  • 2020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행복한 가족그림 공모전
  • 국제 어린이 경제 아카데미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