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장영실 인간관계에 주안점
- 실록엔 안여사건 이후 기록 없어
- 영화 엔딩은 상상력 곁들인 창작
- 한석규는 대학서 만나 친한 사이
- 섬세한 표현력과 성실함이 장점
-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배우
최고의 연기파 배우 최민식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 개봉 지난해 12월 26일)로 조선 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과 만났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세종 역을 맡은 30년 지기 한석규와 언제나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허진호 감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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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실제로 신분 격차를 뛰어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조선의 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두 사람의 우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특히 대학 선후배로 30년 지기인 최민식과 한석규가 드라마 ‘서울의 달’(1994), 영화 ‘넘버 3’(1997), ‘쉬리’(1999) 이후 20년 만에 만나는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선 굵은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최민식과 섬세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는 한석규, 그리고 이 둘을 유려한 서사시처럼 다듬은 허 감독의 연출이 조선만의 시간을 갖고자 했던 세종과 장영실의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한다.
최근 ‘천문’의 개봉에 맞춰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한석규와의 만남에 대해 “너무 오랜만에 연기 앙상블을 느꼈다”며 즐거워했다. 그에게서 영화의 장인(匠人)들이 모여 만들어낸 ‘천문’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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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 |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에 이어 ‘천문’에서는 장영실 역을 맡았다. 실존 인물을 다시 연기하게 된 느낌은?
▶시나리오를 두고 허 감독, 석규와 회의를 하면서 두 분의 과학적 업적을 바탕으로 세종의 애민사상은 기본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여기에 높은 지위의 왕과 가장 낮은 계급의 천민이 만나서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것이 영화적 설정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천문의기, 자격루 등의 발명품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주안점을 두 인물의 인간관계에 뒀다.
-조선이 독자적으로 천문을 연구한다고 해서 명나라와 빚었던 갈등, 이를 두고 관료들이 벌인 논쟁, 이들 사이에 놓인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가 영화 속에 잘 드러난다. 그래서 상상력을 동원해 창작한 엔딩 장면이 개연성을 갖게 되더라.
▶‘세종실록’에는 안여 사건(세종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문책을 받은 장영실이 곤장 80대형을 받았다는 것으로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끝난다. 끈끈했던 두 인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멀어진 듯한 느낌으로 역사 속에서 장영실이 사라지는데, 영화 속 마지막 결론은 상상력을 곁들인 창작이다.
-장영실이 세종에 대해 갖는 마음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장영실에게 세종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주군이 알아주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능력의 200%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근정전 앞에서 장영실이 세종에게 물시계에 대한 브리핑하는 장면 이후 밤에 둘이 같이 벌러덩 누워 별을 보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궁의 후원을 산책하며 바위에 앉아 별을 보는 장면이었는데, 석규의 아이디어로 누워서 별을 보는 파격적인 장면이 나왔다. 그것이 신분 타파를 뜻했던 세종의 캐릭터다. 면천을 하긴 했어도 천민 출신의 장영실과 세종이 신분을 떠나 같은 곳, 같은 뜻을 바라보는 것이다. 천체 관측을 하는 간의대를 만들었을 때 세종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돈이나 권력이 아닌 ‘전하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장영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세종 역을 한석규 씨가 맡아서 더 좋은 연기가 나왔을 것 같다.
▶석규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제가 선배였다. 자취할 때 우리 집에 와서 라면도 끓여 먹고, 실습 작품 할 때 석규가 조명 스태프를 할 정도로 친했다. 그 당시 석규는 생머리가 유난히 예뻤고, 노래를 잘해서 강변가요제에 나가기도 했다. ‘올드보이’ 때 유지태 역으로 석규를 추천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기회가 무산됐다. 그래서 아쉬움도 있었다. 그리고 아주 시간이 흘러 ‘천문’에서 같이 하게 됐는데, 마치 랠리가 계속되는 탁구나 테니스 같았다. 아주 오래간만에 맛보는 연기 앙상블이었다. 허 감독이 시나리오를 주고 둘이 상의해서 어떤 역을 맡을지 정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석규에게 ‘형은 아무 역이나 괜찮으니 너 하고 싶은 역 하라’고 했다. 그리고 3일 후에 세종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 난 세종도 장영실도 하고 싶었는데, 장영실은 기록이 별로 없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세종과 장영실을 연기하면서 곁들인 새로운 해석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실제로는 장영실이 세종보다 일곱 살이 많다고 하더라. 물론 실제로는 왕과 신하로서 격식과 어법이 철저했을 텐데, 밀접한 두 사람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니 둘이 있을 때는 격식은 차리지만 친근감 있는 말투를 쓰자고 했다. 그래서 세종이 장영실에게 저잣거리에서나 나올 법한 욕을 사이다처럼 한다.
-배우로서 한석규 씨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서로 연기의 톤이 달라서 후배지만 배우는 점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실제 캐릭터도 다르다. 저는 성격이 급하고, 석규는 느긋하다. 석규의 장점은 섬세한 표현이다. 디테일한 표현에 능수능란하다. 그리고 석규는 늙지를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관을 올곧이 지켜가면서 성실하게 생활한다. ‘천문’ 촬영 현장에서 신구 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배우에게 ‘왜 연기를 시작하게 됐냐’고 묻고 다니더라.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았다. 그 질문을 들으면서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됐다.
-새해를 맞아 국제신문 독자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나이가 들면서 슬슬 고장 나고, 상태가 안 좋아지더라.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건강이 제일 첫 번째인 것 같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면 좋겠다.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