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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맨골드가 바라본 ‘르망 24시 레이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11 19:07:3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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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순수해.” ‘포드 V 페라리’(2019)에서 레이싱은 하나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 1966년도 르망 24시간 레이스 경기 장면을 재현한 클라이맥스를 비롯해 이 영화의 카레이싱 시퀀스는 스티븐 맥퀸이 68년형 포드 머스탱 GT를 몰았던 ‘블리트’(1968) 이래 가장 뛰어난 완성도와 박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제임스 맨골드의 관심은 레이싱 시퀀스 자체에 있지 않다. 그는 역사적 이벤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과 두 주인공의 심리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놀라운 건 이 영화가 드라마를 스펙터클을 전시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손쉽게 소모해버리는 오늘날 상업 영화의 경향에서 완벽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레이싱 영화의 활동사진적 쾌감이 농밀한 감성의 휴먼드라마와 씨실과 날줄처럼 엮이는, 드라마와 스펙터클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을 이루는 영화의 한 이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현대의 클래식이다.
‘포드 V 페라리’ 스틸.
헨리 포드 2세가 포드사의 공장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관객은 현대 자본주의의 진풍경을 목격한다. 문자 그대로의 포드주의(Fordism). 기계 설비의 작동에 맞추어 인간 활동을 제약하고 통제함으로써 생산 효율의 증대를 꾀하는 산업 현장의 일사불란한 풍경은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 삭막해진 현대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그러나 대규모 시스템이 낳는 건 천편일률적인 제품일 뿐, 작품은 아니다. 포드의 몰개성한 공산품으로는 페라리의 섬세한 예술품을 이길 수 없다. 캐롤 셀비(맷 데이먼)과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의 작업 방식은 다르다. 두 사람은 컴퓨터가 수집한 데이터보다는 베테랑 레이서로서 단련된 경험과 감을 더욱 신뢰하며, 공장제 시스템이 아닌 아날로그 가내수공업의 방식으로 이상적인 레이싱 카를 만들어나간다.

관객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1977) 또는 ‘스피드 레이서’(2008)의 테마가 다른 외양의 껍데기를 쓰고 부활하는 것을 본다. 그렇다. 이것은 순수와 열정을 믿는 두 사람의 시대착오적 낭만주의자가 자본과 숫자만을 맹신하는 산업 시스템, 기술 문명의 제국에 맞서 싸우는 ‘돈키호테’ 풍의 이야기이며, 세상에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예술가와 ‘상품’을 기획하는 데 혈안이 된 장사꾼이라는,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두 인간 유형 간의 충돌을 그린 영화다. 서부극 ‘3:10 투 유마’(2007)에서 보았듯 맨골드는 우리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낭만주의자이다. 그는 우리 시대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환기시키며, 관객의 내면으로부터 가장 근원적인 감동을 끌어내고자 한다.
둘이 거둔 승리는 포드의 업적으로 날치기 당한다. 캐롤과 켄은 기업의 하수인이 되기엔 맞지 않는 인물들이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때로는 타협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영혼도 이해심도 없는 자본과의 긴장 속에서 예술을 완성시켜야 하는 사람들의 역경과 희생. 그런 점에서 ‘포드 V 페라리’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창작자의 숙명에 관한 은유로서의 메타 시네마이기도 한 것이다.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2019)에 이어서 맨골드는 ‘영화다운 영화’가 실종되어가는 오늘의 추세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린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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