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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너머 해돋이, 해국 만발 골목길…손깍지 부르는 이곳

동해 진면목 경주 감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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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이면 개항 100주년인 감포항
- 어항 기능 축소돼 뱃사람 줄었지만
- 오일장·새벽 어선 경매 풍경 간직

- 소나무숲 언덕의 64년 된 송대말등대
- 삼층석탑 형상 새 등대에 역할 넘겨
- 덱서 바라본 노란 등대·갯바위도 눈길

- ‘감포 깍지길’ 7개 구간 중 해국길
- 일본식 건물 그대로 남은 옛 골목
- 하늘빛으로 핀 해국과 계단·벽화 등
- 겨울 바다의 고즈넉함 즐기기 제격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을 것을’.
송대말등대 덱에서 바라본 노란등대. 이 노란등대는 수면 위에서 모진 바람과 거센 파도를 견디며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송대말등대 덱 앞에 있는 갯바위는 주상절리처럼 아름다운 바위 모습을 하고 있다.
1970년에 가수 조미미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가요 ‘바다가 육지라면’의 가사다. 이 노래는 경북 경주시의 시리도록 푸른 감포 바다에서 탄생했다. 감포 출신 작사가 정귀문 씨는 1969년 나정고운모래해변에서 밀려오고 다시 밀려가는 파도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노랫말을 썼고 이인권 씨가 곡을 붙였다. 경주시는 2009년 감포읍 나정고운모래해변에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비를 건립해 이 노래를 기념한다.

사실 경주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경주 하면 바로 불국사 첨성대 보문단지 양동마을 등을 떠올리듯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내륙 고장으로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주 감포항에 가면 경주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겨울 바다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감포항서 만나는 동해 진면목

내년이면 개항 100주년을 맞는 감포항은 일제강점기부터 번창했던 항구다. 드넓은 바다와 풍부한 해양 자원을 등에 업은 감포는 1937년 읍으로 승격했다. 한때 번창했지만 지금은 여유로운 어항이다. 바다가 코앞이지만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카페보다 허름한 가옥에 뱃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다방이 더 많다. 감포는 가자미와 멸치로 유명한데 구룡포의 과메기처럼 특화되어 있지 않아 관광객을 끌어모으기에 부족해 보인다.

그 대신 동해 남부의 중심 어항이던 옛 흔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바다를 앞에 두고 열리는 오일장과 새벽 어선이 잡아 온 생선을 경매하는 풍경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항구 옆에는 횟집들이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싱싱하게 펄떡이는 생선을 회로 썰어 먹으면 부산에서 먹는 맛과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모양으로 기둥을 뚫어 바다가 보이게 만든 감포항 방파제 등대.
감포항 인근 소나무숲 언덕에 자리한 송대말등대도 화려했던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송대말은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란 뜻으로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땅과 그 위에 울창한 송림이 잘 어우러져 있다. 감포항을 이용하는 어선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1955년 송대말에 무인등대가 설치됐고 1964년부터 등대지기가 상주하는 유인등대가 됐다. 송대말등대는 2001년 바로 옆에 자리한 새 등대에 자신의 역할을 넘겼다. 새 등대는 경주의 특성을 살려 1, 2층은 신라 시대 건축양식인 회랑(지붕이 있는 긴 복도)과 맞배지붕의 이견대를, 3층부터 5층까지 등탑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형상화했다. 송대말등대는 지난해 유인등대로 운영된 지 54년 만에 무인등대로 다시 바뀌었다.

송대말등대 덱에서 바라본 노란 등대와 갯바위도 눈길을 끈다. 노란 등대는 수면 위에서 모진 바람과 거친 파도를 견디며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갯바위는 주상절리처럼 아름다운 바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어부들이 갯바위에 시멘트 구조물로 축양장을 만들어 이곳에 물고기를 보관했다가 일본에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송대말등대(왼쪽)와 새 등대.
■옛 골목의 정취와 이국적 분위기 만끽

감포읍 일대에 조성된 둘레길 ‘감포 깍지길’은 총 7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총길이만 80㎞에 이른다. 깍지길의 ‘깍지’는 손가락을 서로 엇갈리게 손잡은 모습처럼 사람과 바다가 깍지를 낀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혼자보다 둘이 손을 잡고 걸어야 제맛이라는 뜻도 담았다. 특히 용굴이 있는 전촌항 구간은 해국 자생지로도 유명한데 감포 사람들에게도 낯설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감포 깍지길 4구간에 속하는 ‘해국길’은 감포항 옛 골목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해국길을 대표하는 장소인 해국 계단.
감포 깍지길 4구간에 속하는 ‘해국길’은 감포항 옛 골목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해국길은 해안과 마을을 잇는 둘레길로 감포항 앞에 자리한 감포 공설시장과 수산물 상회 건물 사잇길에서 시작된다. 항구에서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면 일본식 건물이 곳곳에 남아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건물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 수백 m 이어진다.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건물에는 이발소 목욕탕 등 정겨운 간판이 걸려 있는데 낡고 허물어진 건물에서 1960년대 영화 촬영장이 떠오른다. 해국길은 해국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도 담벼락에 그려진 해국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골목을 거닐다 보면 허름한 식당이 보이는데 외관부터 정감 가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있다. ‘옛골 설렁탕’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은 이곳에서 ‘다물은집’으로도 불린다. 다물은집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육자가 살던 집으로 해방 후 일본으로부터 다시 돌려받은 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원형이 아직도 남아 있다. 교회와 놀이터가 있는 곳에 도착하면 감포항과 동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오른쪽 길로 조금 내려가면 커다란 해국이 그려진 계단이 나오는데 해국길을 대표하는 장소다. 사진을 막 찍어도 예쁘게 나온다는 해국 계단에서 인생 최고의 장면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
‘옛골 설렁탕’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은 ‘다물은집’으로도 불린다.

◆함께 가볼 만한 곳

- 해파랑길 드라이브 … 주상절리 부딪치는 파도 소리, 천 년의 숨결 감은사지도

기장일광IC 교차로에서 출발한 31번 국도는 울산 시내에서 7번 국도와 합쳐진다. 울산 동천에서 다시 갈라지더니 동해안 해안 도로로 이어진다. 경주시로 들어서자 해안절경이 펼쳐지는데 경주 여행의 백미라고 일컫는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만날 수 있다. 문무대왕릉 이견대 등 볼거리도 많아 역사와 여행,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힐링 여행 코스로 손색이 없다.
경주 최고의 자연 조각품인 양남 주상절리.
이름부터 설레는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에 이르는 구간으로 해파랑길 경주 구간에 속한다.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덱길 등 해안 경관을 따라 이어지는 테마로 편안하게 해안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부채꼴 주상절리 부근에는 4층 규모의 전망대를 비롯해 관람객의 편의시설을 갖춘 조망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이곳 최고의 자연 조각품인 양남 주상절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급격히 식으면서 수축된 기둥 모양의 절리는 탄성을 자아낸다.

경주의 바다는 문무대왕과 관련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봉길해수욕장 앞 바닷가에는 문무대왕이 잠든 문무대왕릉이 있다.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바위 섬에 동서남북 십자로 물길을 내어 그 안에 커다란 돌을 놓았는데 바로 아래에 유골을 모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무대왕의 유골을 화장해 이곳에 장사를 지냈으므로 이 바위를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로 부른다.

대왕릉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이견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문무대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왜구로부터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었다고 여긴 아버지를 참배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이견대에서 ‘만파식적’의 의미를 되새겨본 후 인근에 통일신라 시대 절터인 감은사지에 들러 신라 천 년의 숨결을 느껴본다.

글·사진=이지원 기자 leejw@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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