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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조선 속의 일본 <14> 조선 사람들의 왜관 나들이

역관 한마디가 무역 좌우… 왜관측 요리상까지 내오며 극진 대접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27 19:11:51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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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때 부산만 있던 일본마을
- 전국 각지서 구경하려 찾아와
- 조정은 밀매 성행 이유로 통제
- 종사자 외 허가 있어야 출입
- 관리 친인척들 방문 기록 많아

- 조선인 통역사들 역할 상당해
- 왜인들 친분 쌓으려 많은 노력
- 세습 많아 그 아들에게도 응대

‘조선도회’ 중 왜관에 꽃이 필 무렵 두 나라 사람들이 어울리는 장면. 일본 교토대도서관 소장
■서울 양반, 왜관 구경가기

1763년 10월 6일, 조엄을 정사로 하는 통신사가 부산에 머물다가 일본으로 떠났다. 이 사절단에는 시와 문장에 뛰어난 남옥이란 양반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옥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부산에 45일을 머물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하루는 일행들이 남옥에게 왜관 구경을 가자고 제안했다. 부산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일본인 마을인 왜관이 그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 외에는 일본인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옥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우리는 앞으로 번성한 도시 오사카와 도쿄를 볼 예정인데 고작 왜관을 볼 필요가 있겠냐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왜관 구경 때문에 사절단을 벗어나 자리를 비우는 것은 성실하지도 않다, 왜관으로 몰려가서 구경을 일삼는 모습이 자칫 일본인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때는 초량왜관이 조성된 지 100년 가까운 시점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왜관을 부산에 온 기회에 구경하고 싶었다.

심지어 김해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학규란 시인도 초량왜관을 보았다. 1811년 김해 사람 김철준이 통신사 수행원으로 가게 되자 배웅차 부산에 왔다가 초량왜관을 구경하고 ‘초량왜관사’란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왜관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곳

그러나 왜관은 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두모포 왜관 시절인 1653년, 밀거래하는 상인들이 증가하자 이것을 금지하는 약조를 체결하였다. 약조 조항 중에는 ‘왜관 문밖에 동래부사가 보낸 군관 1명과 부산첨사가 보낸 군관 1명을 정해 두고 날마다 돌아가면서 지킨다.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 일을 맡은 아전과 백성, 그리고 동래 부에서 발급하는 증서를 받은 자 외에 마음대로 출입하는 사람이 있으면 발각되는 대로 중죄로 다스린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미 일이 정해져 있는 사람 외에 왜관을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동래 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또 무역 시장이 열리는 날은 감시 인력을 왜관 안으로 더 투입해서 두 나라 사람들의 접촉을 살폈다. 특히 왜관 일본인들이 왜관 문밖을 나올 경우, 나와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정해놓았다.

이렇게 두 나라 사람들의 왜관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초량왜관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량왜관을 새로 지은 직후 두 나라 사람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왜관 구역을 측정해서 이를 알리는 푯말을 세웠다. 그리고 두모포 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왜관 주변 곳곳에 감시 초소를 두었다.

그런데 외교와 무역이 활발해지고 왜관의 일들이 증가하자 그만큼 두 나라 사람들이 만나는 일도 많아졌다. 밀거래를 포함하여 각종 사건사고들이 잇달았다. 그러므로 왜관과 그 주변 지역을 날마다 오가며 일을 하는 통역관들도 조사대상에 올랐으며, 왜관 주변에서 논밭을 일구는 농부들도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지역 양반들, 왜관을 찾다

이학규의 ‘초량왜관사’일부
그런데도 왜관 구경이란 목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오는 양반들이 있었고, 이들은 때때로 일본인과 시를 짓고 여흥을 즐기기도 하였다. 1729년 왜관에 업무차 와있던 아메노모리 호슈가 쓴 업무일지를 보면 4월 4일에 영일의 지방관, 4월 9일에는 동래부사의 친척들이 구경을 목적으로 왜관을 찾았다. 6월에는 왜관 인근에 있는 두모포진(수정동 일대)의 수장인 만호(종4품)가 지인들을 데리고, 10월에는 동래부사의 동생과 지인들이, 12월에는 대구 경상도 감영의 비장이 구경차 왜관을 찾았다. 이듬해 봄에는 부산진첨사의 가족들도 왜관 구경을 했다. 왜관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관리들의 친인척들이 왜관을 찾는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훈도(부산에 있는 일본어 통역관 중 가장 높은 지위의 통역관)가 이들의 응접을 왜관에 특별히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왜관에 가면 왜관에서는 조선어를 통역하는 일본인 통역관을 배석시키고 일본 술과 음료수, 과자 등으로 대접하였다. 이들 양반은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 마을 구경은 물론 색다른 일본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지위가 있는 양반들이었기 때문에, 왜관 출입에 대해 동래 부의 허가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리라.

■예비 통역관들, 일본인과 친분 쌓기

1682년 통신사 수행원 중에는 중국어 통역관인 김지남이 있었다. 김지남은 중국어를 통역하였기 때문에 왜관 근무를 하지 않았다. 통신사로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에, 부산에서 훈도로 일하고 있는 변이표를 따라서 왜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6월 8일! 가는 날이 장날! 무역 시장이 열리고 있어 두 나라 사람들이 거래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훈도와 함께 무역을 담당하는 일본 측 관리가 거주하는 곳에 갔다. 정갈한 음식에 술이 곁들여진 점심을 대접받았다.

왜관 업무 때문에 부산에 온 일본어 역관들이 왜관을 출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훈도와 별차(훈도 다음의 통역관으로, 훈도를 보좌하면서 왜관 업무를 수행함) 외에도 왜관 수리공사 건으로 파견되는 통역관이 있었고, 왜관에 온 일본 사절에 대한 예단 지급과 응접을 목적으로 별도로 파견되는 통역관도 있었다.

이렇게 왜관을 찾은 사람 중에는 예비 통역관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당시 왜관 업무를 맡고 있던 훈도와 별차의 아들들이었다. 조선 시대 통역관은 일종의 기술직으로서, 대대로 세습되어 유명한 역관 가문이 형성될 정도였다.

훈도와 별차의 아들 또한 일본어 통역관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 통역관이 될 사람들이 많았다. 아메노모리 호슈의 일지에는 훈도의 아들이 훈도와 함께 들어왔는데 친분을 쌓을 목적이었다고 적었다. 이틀 뒤에는 훈도와 별차, 훈도와 별차의 아들들, 여러 통역관이 모두 왜관에 갔다. 일본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손님들이었다. 이들의 역할에 따라 왜관의 일들이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내놓은 것은 술과 간단한 음식이 아니라 ‘요리’였다. 5개월 후 별차의 아들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다른 통역관과 같이 왜관에 다시 들어갔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본 왜관

1800년대 중반쯤 일본에 표류한 조선인이 있었는데 그는 전라도 사람이었다. 그가 조선에 있을 때 바닷길로 울산에 갇가다가 부산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왜관 구경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왜관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4월 15일 꽃이 만발하여 보기 좋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표민대화’라는 책 속에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은 표류한 조선인이 도착한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 조선인에게 이것저것 묻고 대답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대화는 계속되는데, 표류한 조선인들이 말하기를 ‘왜관에 매일 들어가서 일본인들에 떡과 엿을 파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하고 이 아이들은 왜관 근처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라고 여겼다. 아이들에게 들은 말을 전하기를 왜관은 동관과 서관으로 나누어져 있고 서관은 일본 사절이 사용하는 숙소라서 사람들이 많지 않고, 동관은 집이 많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왜관에 거주하는 일본인 수에 대해 말을 하는데, 500명 내외라고 알고 있고 이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왜관은 조선과 일본의 외교와 무역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 관리와 아전, 통역관과 보좌인, 심부름꾼,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일반 백성까지 왜관을 드나들었다. 왜관은 전국에서 부산에만 유일하게 있었던 터라 업무를 맡은 사람 외에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두 나라 문학을 즐기려는 지식인들,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 그 외 다양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이었다.

양흥숙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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