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한국영화, 페미니즘·동성애에 더 용감해져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13 18:44:56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82년생 김지영’(2019)과 ‘윤희에게’(2019)를 보면서 두 영화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 대한 호오의 차원에서도 아니다. 서로 다른 감독의 각기 다른 연출이지만, 두 영화는 썩 잘 만들어졌으며, 저마다 목적의식 또한 분명하다. 문제는 영화가 취하는 자세와 태도에 있다. 페미니즘과 동성애, 두 영화가 각기 다루고 있는 소재와 주제 의식은 현재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지평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일 것이다. 그러나 논쟁적인 발화가 가능한 소재를 다룸에 있어 두 영화에는 미묘한 머뭇거림이 엿보인다. 아니 정확하게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기에 앞서 창작자들이 품었을 두려움의 흔적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스틸.
소설을 영화화함에 있어 빠지기 쉬운 함정을 ‘82년생 김지영’은 영리하게 회피한다. 유년기로부터 쭉 이어져 오는 선형적인 시간 순서를 플래시백으로 재배치하면서 자칫 평이해지기 쉬운 극의 흐름에 점층적으로 진실에 접근해가는 스릴러의 긴장을 불어넣었고, 상황의 분위기와 인물의 감정선에 따라 화면의 색감과 조명의 톤을 조절하는 등 연출의 측면에서 상당한 세공력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배우 정유미의 연기에 밀착하면서 아내, 며느리 그리고 맘충 등 한 사람을 호명하는 다양한 목소리들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담아내는가 하면, 때때로 주변 인물의 눈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점을 취하고 거기에 관객을 끌어들인다. 편리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균형감은 영화가 원작을 넘어서는 지점이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에는 영리한 만큼이나 논쟁적 발화 또한 피해가려는 모종의 머뭇거림 또한 보인다. 대현이 보다 이해심 있고 협조적인 남편으로 바뀐 점을 비롯해 다양한 남성군상의 문제적인 모습들이 대거 삭제되었고, 대신 지영을 둘러싼 여성 간의 연대와 가족 드라마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각색되었으며, 직업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현실의 무거움은 언제든지 열려있는 복직의 가능성과 문예지 투고라는 다분히 ‘영화적’인 결말에 의해 희석되고 만다.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과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그린 소설의 날이 선 부분을 일부러 무디게 함으로써 영화판 ‘82년생 김지영’은 상업영화 기획으로서의 안전함, 그리고 ‘대중적으로 수용가능한’ 안에서의 여성주의적 발화라는 한계에 가두어지고 만다.

‘윤희에게’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어머니이자 급식 조리원으로 살아가는 윤희(김희애)와 일본에서 수의사 일을 하며 고모와 함께 사는 쥰(나카무라 유코) 둘의 일상을 번갈아 보여주던 영화는 차츰 말미에 가까워지면서 두 사람이 동성애 관계였음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는 감정의 북받침을 가라앉힌 채 차분히 긴 호흡을 유지하는 유장한 멜로드라마의 흐름이 있다. 이상한 건 중년이 된 둘이 해후하는 홋카이도에서의 장면이다. 정작 감독은 두 사람의 해후에 방점을 찍지 않고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가 버린다. 때문에 이 한순간을 위해서 달려온 영화의 감정적 밀도가 일순간 휘발되어버린다. ‘윤희에게’는 동성애 또한 보통의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전하려 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 절제라기보다는 동성애를 터부시하는 목소리를 피해 무난한 지점에 안착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 두 영화의 누그러짐은 현재 한국 사회와 영화가 감당해낼 수 있는 모럴의 임계점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척도와도 같다. 한국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한국 영화는 좀 더 용감해져야 한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3. 3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4. 4‘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5. 5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6. 6‘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7. 7[사설] 외국인 400만 시대, 부산은 이제 체류형 관광이다
  8. 8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9. 9매표소 오픈런…레드카펫 ★ 보려 외국인 새벽부터 달려왔다
  10. 10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1. 1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2. 2조희대 “국회·대통령의 제청 간섭은 위헌”(종합)
  3. 3송곳검증 벼르더니…교통·시설公도 싱거웠던 시의회 청문회
  4. 4여야, 국감서 알래스카 LNG 사업 집중 추궁
  5. 5[뭐라노] 조희대 “국회·대통령, 대법원장 제청 간섭 위헌”
  6. 6[속보] 여야, 문체위 국감서 ‘암살자(들)’ 공방…국힘 “감독 나와야” vs 민주 “창작 자유 억압”
  7. 7[2026 국감 브리핑] 백종헌 “인력 확보 없이 출발한 통합돌봄 담당자 82%가 겸직, 전담인력 ‘0명’ 시군구는 전체의 66.4%”
  8. 8‘홈플러스 사태’ MBK 김병주, 국감 불출석 “회사 경영 관여 안 해”
  9. 9강신철 “병역특례 점진적 축소, 궁극적 폐지가 국방부 목표”
  10. 10김정호 “부산·경남 맑은 물 공급을 위해 낙동강 수질개선·취수 다변화 해야”
  1. 1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2. 2‘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3. 3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4. 4롯데백화점, 업계 첫 외국인 매출 1조 ‘포문’
  5. 5금감원 “AI 해킹 시도 IP 28개 확인”
  6. 6부산 극지해양 전문강사 “현장 능력 키워요”
  7. 7부산 청년기업 ‘DPP(디지털제품여권)’ 국내 첫 상용화
  8. 8SMR 골든타임 놓치나…"원안위 심사기준 2032년에야 마련"
  9. 9주가지수- 2026년 10월 6일
  10. 10보스턴다이내믹스, 글로벌 AI 전문가 CEO로 영입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3. 3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4. 4기장군수실 1층 이전 ‘없던 일로’
  5. 5전기車 높아진 인기에 예산 동나…부산시, 하반기 1520대 더 지원
  6. 6부산중수청장 “정치 중립성·수사 독립성 엄격히 지키겠다”
  7. 7양산시보건소 일반진료 줄인다
  8. 8박완수 경남도지사 “행정통합 위해 부울 시장 설득”
  9. 9전재수 시장, 소통 행보…사흘 연속 생중계 회의(종합)
  10. 10“침묵하는 대주주, 대화 자리 나서라”
  1. 1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2. 2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3. 3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4. 4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5. 5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6. 6“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7. 7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8. 8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9. 9‘손흥민 A매치 한국인 최다 골’ 우즈베키스탄에 2-0 완승
  10. 10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