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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조선 속의 일본 <9> 왜관에서 만난 조선 동물-매와 호랑이

日서 최고 선물로 꼽히던 조선 매… 호피는 필수예물로 인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18 19:12:11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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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지배계층에 보내지던 매
- 임란 때 시장 열릴만큼 인기
- 선물해 목숨 구했단 이도 있어
- 성질 급해 운송 중 죽기 일쑤
- 왜관 내 ‘응방’ 만들어 별도관리

- 호랑이 출몰 기록한 ‘관수일기’
- 사냥 무기·역관 반응 등 기록
- 대마도에선 책으로도 만들어져
- 최상급 가죽 요청 끊이질 않아
- 조선, 무역 줄이고 거절하기도

조선과 일본 사이의 교류 물품을 살펴보면 조선 동물도 꽤 나타난다. 꾀꼬리, 두루미, 매, 말, 노루 등 산 채로 가는 동물, 호랑이 가죽, 곰 가죽, 개 가죽 등 가죽으로 가는 동물, 웅담과 호두골 등 특정 부분만 일본으로 가는 동물도 있다. 모두 일본에서 인기가 많아서 해마다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조선도회’ 속 호랑이 포획 장면.(일본 교토대 도서관 소장)
■해동청, 최고의 선물

조선 동물 중에서 최고의 선물로 꼽힌 것 중 하나는 조선의 매였다. 매는 삼국 시대부터 명성이 자자해서 주변국에 선물로 보내졌다. 조선 시대도 예외 없이 일본에서 조선 매의 인기는 여전했다. 임진왜란 중에도 매를 구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함안에 시장을 개설했다거나, 붙잡혔다가 일본인에게 매를 주고 목숨을 구했다는 조선인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특히 일본 고위층들이 조선의 매를 선호했다. 일본 막부장군을 비롯하여 귀족들이 매사냥을 즐기기도 하였지만, 매사냥은 곧 지배계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무(武)를 숭상하는 일본 지배계층에서 매의 인기가 높아지자 조선 매를 구하고 싶다는 요청이 계속되었다. 일반 매에서부터 수리, 해동청, 참매, 송골 등 조선에서도 구하기 힘든 매를 요청하였다. 일본 사절이 파견될 때, 특히 1748년 통신사의 경우 70여 마리를 선물로 가져간 적이 있었다. 사절이 가지고 가는 선물로는 부족하여, 직접 왜관을 통해 사들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대마도는 조선 매를 구해서 막부장군과 막부 유력자들에게 진상품으로 올렸다. 그런데 매의 성질은 급하고 더위에도 약해서 운송 도중에 죽는 경우가 많았다. 함경도, 평안도 등 북쪽 지역에서 매가 많이 났지만, 왜관으로 오는 도중에 죽는 경우가 많아 경상도와 강원도의 매가 많이 충당되었다.

■왜관 안의 응방

‘강호도병풍(江戶圖屛風)’ 속 통신사가 가져간 호피.(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소장)
매는 조선에서 키우는 새가 아니고 그때그때 자연에서 잡아야 하는 것이어서 일본의 요구가 있다고 곧바로 그 수량만큼 채워서 공급하기 어려웠다. 일본과 약속한 수량이 있어도 포획과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길들인 매를 요구한 적도 있었는데, 상업용으로 사육된 매는 그 수가 적어 조달에 어려움이 많았다. 매를 운송하는 문제는 대마도도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사들인 매를 왜관에서 대마도로, 대마도에서 일본 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과 교역을 통해 왜관으로 들어온 매는 대부분 일본 고위층에게 보내지는 것이므로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하였다. 왜관 안에는 ‘응방(鷹房)’이란 기관이 있었고, 응방에는 응장(鷹匠) 3명이 근무하면서 매의 상태를 살피고 매 먹이 등을 검사하였다. 또한 응방에는 치안을 담당하는 하급무사도 4명이나 근무하였다. 그러나 왜관에 들어간 후 죽는 매가 많다는 기록이 자주 나올 정도로 매를 건강하게 기르기가 쉽지 않았다. 왜관을 그린 그림(‘조선도회’)을 보면 왜관 옆쪽의 벌판(현 서구 부평동과 보수천 일대)에서 메추리 사냥에 나선 일본인과 조선인이 보인다. 그림에 ‘메추리 사냥’이라고 써놓았는데, 일본인이 11명이나 그려져 있다. 일본인은 큰 새총 모양의 도구를 가지고 있는데, 비슷한 도구를 가진 조선인 2명도 같이 그려져 있다. 매의 먹이가 되는 메추리 사냥에 조일 협력이 이루어진 것일까?

일본에서는 조선 매를 요청할 때 매의 사육법을 기록한 책인 ‘응골방’, 매를 장식할 방울과 장신구 등도 같이 요청하였다. 아울러 조선 화가가 그린 매 그림(응도, 鷹圖)의 요청도 많았다. 조선 매와 관련한 일련의 물품에도 관심이 높았다.

■용두산에 나타난 호랑이

‘조선도회’ 속 메추리 사냥 장면.
왜관 안에는 용두산이 있고, 용두산은 복병산과 맞닿아 있고, 복병산은 다시 보수산으로 이어지면서 용두산은 부산의 큰 산줄기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왜관 담장을 넘어 온 호랑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이 드물게 있었다.

그런데 1771년 3월 23일, 이날은 호랑이가 대낮에 나타나서 망보는 개들을 잡아먹고 사람까지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에 600건 넘게 나오는 호랑이 피해. 즉 호환(虎患)이 왜관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다. 이날은 왜관 개시가 열렸던 날이라 목격한 사람도 많았다. 이날의 모습은 왜관 관수가 쓴 ‘관수일기’에 자세하게 남아 있다. 일본에 없는 호랑이를 본 일본인의 놀람, 왜관 담장을 넘어 용두산에 나타난 두 마리의 호랑이, 이에 맞선 용감한 일본 무사, 칼과 창에다 도끼와 총까지 동원된 사냥 무기, 왜관에 왔다가 호랑이를 본 조선의 역관들 반응, 사냥을 축하하는 동래부사의 쌀 선물, 잡은 호랑이의 내장은 대마도로 보내고, 고기는 왜관에서 같이 구워 먹었다는 등의 기록이다.

왜관에서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는 널리 회자되어 대마도에서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호랑이 포획 장면은 왜관과 주변 부산을 그린 ‘조선도회’에도 그려져 있다. ‘중산호수(中山虎狩)’란 제목이다. 중산 즉 용두산 호랑이 사냥이란 의미이다. ‘관수일기’의 기록을 옮겨놓은 듯한 그림이다. 용두산에 나타난 호랑이 두 마리, 징을 울려서 사냥을 알리는 사람들, 각종 무기를 들고 호랑이 포획에 나선 일본인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일본인이 살아있는 조선 호랑이를 직접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일본인이 본 조선 호랑이는 대부분 가죽(호피), 뼈와 쓸개 등의 부산물 상태였다.

조선에서는 호랑이 피해가 너무 커서, 겨울철마다 호랑이 사냥이 의무적으로 진행되었다. 3인 1조가 되어 호랑이 사냥에 나서야 했고 그 성과는 각 지역에 공물로 할당된 호피로 확인되었다. 어렵게 호랑이를 포획한 후, 사냥에 나선 사람이라고 해도 호피 1장을 가질 수 없었다. 전부 나라에 바치고 호랑이 고기 등 부산물만을 겨우 가졌다. 귀한 호피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아서 예단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호피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경로는 우선 통신사와 문위행 등 사절이 일본으로 파견되었을 때였다. 일본사절이 가져가는 필수 예물 중 하나였다. 통신사가 가져간 가죽 제품에는 호피뿐만 아니라 표범 가죽인 표피, 날다람쥐 가죽인 청서피, 어피(魚皮)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피는 통신사 파견 때 막부장군 15장을 비롯하여 고위층에게 주는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대개 30~40장이 사용되었는데, 1748년 통신사 때는 호피 79장이 예물로 충당되었다.

다음은 일본인들의 무역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왜관에서 값을 치르고 사갈 것이니 조선 측에서 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대마도주는 사절을 보내 한꺼번에 호피 70장을 주문한 적도 있었다. 일본 내 유력자에게 선물할 용도였다. 그것도 ‘체구가 큰 호랑이, 그중에서 꼬리가 길고 털이 좋은 것’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같이 제시되었다. 호피는 국내에서도 귀한 것인데 최상품을 요구하므로, 조선에서는 수를 줄여서 무역을 허락해주거나, 아예 무역을 거절한 적도 있었다.

이 외에도 호랑이는 그림으로 그려져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하였다. 통신사 사절단 속 화가들이 일본에 갔을 때 남긴 호랑이 그림이 다수 있다. 그런데 왜관을 통한 호랑이 그림 주문도 계속되었다. 호랑이는 벽사(闢邪·나쁜 것을 물리침), 무사의 위용과 최고 권력의 권위를 상징하므로 가죽과 함께 그림 또한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다.

양흥숙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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