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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가상과 실효,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10 18:37:0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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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2019)은 일종의 메타 시네마(Meta Cinema), 즉 영화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여타 슈퍼히어로 영화보다 흥미롭게 만드는 건 주인공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악당 미스테리오의 설정이다. 아무런 능력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일반인이 영웅 행세를 하며 세상을 기만하는데,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2015)의 도입부에서 아이언맨이 선보였던 실시간 홀로그램 기술과 드론을 응용한다. 미스테리오를 직접 연기하고 시나리오에 따라 상황을 연출한 건 쿠엔틴 벡이었지만, 그의 사기극, 버추얼 테러리즘(Virtual Terrorism)을 뒷받침 한 건 온갖 환영을 실사에 가깝게 구현해낸 기술진 팀원들이었다.
   
영화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 스틸.
엔리멘탈스라는 물, 불, 바람의 초현실적 괴물들이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이나 이들을 상대로 날아다니며 마법으로 싸우는 미스테리오의 모습은 모두 정교하게 그려진 디지털 환영임이 탄로 난다. 여기에 실감 나는 물리적 효과를 덧붙이기 위해 총과 미사일, 충격파 장치 같은 무기들이 동원된다. 이 과정은 공교롭게도 현대 주류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 방식을 그대로 닮아있다. 모션 캡처와 컴퓨터 그래픽 합성을 위해 배우가 특수 분장과 의상을 입고 연기하면, 기술진이 각본상의 내용과 배우의 움직임에 맞추어 적절한 CG 배경과 디지털 애니메이션,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덧입히며, 실제를 압도하는 가상을 만들어낸다.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은 첨단의 영상 기술을 총동원하며 가공의 현실을 빚어내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가 도리어 자신의 메커니즘을 패러디하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용쟁호투’(1973)에서 이소룡이 방의 거울을 깨뜨리고 악당의 실체를 파악하듯, 스파이더맨 또한 미스테리오의 환영을 간파하고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무엇이 허상이고 실제인가를 구분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도리어 주목해야 하는 건 디지털 이미지가 보는 이에게 일으키는 ‘실제적’인 영향력이다. 스파이더맨은 미스테리오가 준비한 환영과 트릭에 농락당하며, 그가 느끼는 혼란은 곧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겪는 혼란과 그대로 겹친다. 영상은 헛것일 수 있지만, 정작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만큼은 분명 ‘실제(Virtual·흔히 가상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역설적이게도 실효력을 뜻한다)’이며, 영화는 이 지점을 명민하게 파악하고 서사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감독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은 은연중 디지털 환경과 영상 기술에 익숙해진 지금의 관객에게 중요한 문화 철학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매트릭스 속에서 진실과 거짓의 전통적인 구분은 힘을 잃는다. 미스테리오의 소동은 진정되지만, 남은 일당이 교묘히 조작해 편집한 영상은 도리어 스파이더맨을 사건의 원흉이자 악당으로 몰아간다. 시각은 곧 ‘힘’(Virtus)이며, 기술의 주체는 대중의 지각을 장악한다. 일찍이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사람들이 벽에 비친 횃불의 그림자만을 보고 현실이라 받아들이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던가? 그리스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서 정치가의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괴리를 경험했던 플라톤은 원시적인 수준의 하이퍼 리얼리티, 이미지의 조작이 인간의 삶에 구체적인 실효성을 미친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리라. 이미지는 힘이 세다. 가상은 없고 ‘실효’만이 있을 따름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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