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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노병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03 19:11:0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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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각본을 받아들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부 사나이의 종말을 그리는 이 이야기를 두고, 감독만이 아닌 주연까지 겸해야 할 작품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극 중 인물의 연령대로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린 뒤에 영화를 찍었다. 
   
‘라스트 미션’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라스트 미션’(2018)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의 노인 레오 샤프가 멕시코 범죄조직의 마약을 운반하다가 2011년 검거된 실화(원제 ‘The Mule’은 마약 운반책을 가리키는 은어이다)에 주목한 이스트우드는 실제 인물의 체포 당시 나이와 가까운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주인공 얼 스톤을 연기한다. 원예에 조예가 깊어 큰 성공을 거두었던 얼 스톤은 늘그막에 파산하여 집과 농장 부지를 압류당한 남자다. 빼앗긴 집을 되찾고 파탄 난 가족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얼 스톤은 마약 운반책 일을 맡아 운전대를 잡는다.

‘라스트 미션’은 태작이다. 영화의 감정선은 거칠게 비약하고 주변 인물들의 묘사는 평면적이며, 교훈 조의 대사들이 메시지의 설득력을 깎아 먹는다. 다만 이스트우드다운 영화이긴 하다. 이스트우드는 정치적으로 전혀 공정하지 않은 인물, 현대의 가치관에서 보면 문제투성이의 남자를 섣불리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얼 스톤은 자기 일에만 골몰해 가족을 챙기지 않았던 불성실한 남편이고, 노년에도 철없이 색을 밝히며, 인종차별적인 어휘를 쓰고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어떤 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곧 그것의 결점까지 옹호함을 뜻하진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얼 스톤이 뼛속까지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물든 백인 마초임을 인정하며, 그로 표상되는 한 세대가 시대의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 감을 관조할 따름이다.

남자는 가족의 일을 뒷받침하는 한편, 전우회 같은 과거의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라스트 미션’의 면면은 과거 이스트우드의 경력들을 새삼 환기시킨다. ‘황야의 무법자’(1964)의 현상금 사냥꾼은 마약 운반책을 업으로 삼게 되었고, 건초 먹던 말은 기름 먹는 트럭으로 바뀌었으며, 탕아로 인생을 살았던 남자가 과거를 속죄하며 가족을 위한 돈을 구하고자 여정을 떠난다는 플롯은 ‘용서받지 못한 자’를 반복한다. 투박해졌지만 이스트우드는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하려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현대를 배경으로 삼은 변형된 서부극이며,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정육면체 주사위의 한 단면이다.

   
‘라스트 미션’은 존 포드의 ‘수색자’(1956)에 빚을진 서부 사나이 이스트우드의 채무변제와도 같은 영화이다. 존 웨인이 연기한 이든이 끝내 집에 들어서길 망설이다 도로 황야를 향해 걸어 나가듯, 얼 스톤 역시 가족을 위한 마지막 헌신을 마치고 교도소에 들어가며 쓸쓸히 퇴장한다. 고전 서부극의 세계에서 야만의 서부(Wild West)가 끝난 자리에 여성과 철도로 대변되는 문명이 찾아오듯, 구시대의 마초가 떠난 자리에는 딸과 손녀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서와 도덕이 자리 잡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로서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영영 바뀌지 않을 것을 안다. 그것이 자신의 업(業)이자 한계이며, 물러나야 할 때가 왔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새 시대에 섞여 살 순 없다. 다만 다음 세대의 사람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할 뿐. 그것이 어른의 ‘마지막 임무’라고 이스트우드는 말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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