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첫 노조 결성됐던 항구
- 크고 작은 박물관 유기적 연결
- 융복합 네트워크 구축해 명소화
- ‘한 건물 내 유물 전시’ 통념 깨
- 1444년 세워진 最古 크레인
- 최초로 대양을 건넌 선박 솔덱
- 대형 석호 어항 옛 선박장 등에
- 폴란드 해양사 흥망성쇠 담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폴란드 그단스크는 복잡한 지형을 연출한다. 수로와 해안이 발달하여 천혜의 전략적 항구임을 알려준다. 비수아강 하구의 섬에 자리 잡은 중세 건축물은 르네상스 시기에 발트해에서 가장 번창하던 항구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폴란드의 역사가 기구하듯 그단스크의 역사도 혼미를 거듭했다. 1793년 프로이센에 합병되었으며, 1807년 자유시가 되었으나 조국 폴란드와는 지형적으로 분리되었다. 독일과의 오랜 길항관계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슬픈 역사를 지닌 항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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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그단스크 국립해양박물관 본관이 있는 오워비안카섬 항구에 세워진 크레인. 1444년 세워진 유럽 최고의 크레인으로 1962년 복원돼, 국립해양박물관으로 넘겨졌다. |
■‘자유노조’ 조선소가 있는 도시
국립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 in Gdansk)에 들리기 전에 유럽자유연대기념관부터 찼았다. 건물이 삐딱하게 기울었다. 뒤틀린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듯한 역사적 기념관. 그단스크 레닌조선소에서 전기공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Solidarnosc)가 결성됐다.
식품 가격 인상을 계기로 시작된 파업이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정부가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최초로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설립과 실질적인 파업권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탄압이 강화되었고 신고의 고통을 거쳐서 자유노조는 마침내 폴란드 자유화운동을 가능케 한다. 글로벌 뉴스로 세계를 강타하면서 소비에트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한 힘의 저력은 바로 그단스크의 조선소에서 나왔다. 따라서 그단스크에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해양박물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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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단스크의 초기 성곽 그림. |
그단스크 국립해양박물관은 박물관에 관한 기존 통념을 깨트리는 좋은 사례다. 대체로 우리는 박물관을 어떤 거대한 건물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단스크의 사례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터무니없으며 매우 진부한 것임을 알려준다.
그단스크 해양박물관은 각기 떨어진 공간에 자리 잡은 여러 해양박물관이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폴란드 국립해양박물관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융·복합적 해양 인프라의 모범이다.
중세 한자동맹의 거점 건물에 자리 잡은 본관과 앞에 정박시켜 놓은 선박박물관, 건너편의 중세 크레인, 건물을 개조한 해양문화연구소,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군(석호) 박물관, 강박물관, 어업박물관 등 크고 작은 특성 있는 박물관이 그 계열이다.
국립해양박물관 본관이 있는 오워비안카섬은 우리의 여의도 같은 역할을 하는 하중도다. 모트와바강과 1576년에 건설된 스텡프체 운하로 막혀 있는데, 그단스크의 무역 중심지로 부의 원천이었다. 대표적인 건물은 1677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창고다.
중세 건축물로 가득했던 섬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됐다. 전쟁 이후 그나마 벽체라도 남아 있던 건물 세 채는 1985년에 재건축되어 국립해양박물관으로 변모했다.
항구 경관을 압도하는 것은 1444년에 세워진 유럽 최고의 크레인이다. 크레인은 도시의 관문으로 이용됐으며 중세 성곽 시스템의 중요 요소였다. 19세기까지 크레인은 화물을 하역하고 선박의 돛대를 세팅하는 일을 했다. 1962년에 복원되어 해양박물관으로 넘겨졌다.
본관은 중세에서 현재까지 폴란드의 해양사를 잘 기록한 아날로그적 전시가 주를 이룬다. 박물관에서는 조선소 발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볼 수 있고, 폴란드의 선박 디자인과 건조 기술도 엿볼 수 있다. 건물 내에 바다 갤러리가 별도로 마련돼 거장들의 그림을 전시한다. 박물관 앞에는 그단스크에서 최초로 대양을 건넌 선박 솔덱(Soldek)이 독에 묶여 있다. 솔덱은 퇴역한 이후에 선박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여러 해양박물관이 네트워크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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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트해의 명물 요리
청어절임. |
본관 건너편에 ‘해양문화연구소’가 있다. 건물 천장에는 외국의 전통 카누 같은 선박이 매달려 있다. 1층은 ‘배-우리의 열정’ 편으로 꾸며진다. 선박 플랜트 드릴십과 조선 건조 시뮬레이터를 선보인다.
2층은 ‘사람-배-항구’ 편이다. 60개가 넘는 인터렉티브 장치로 선박 건조, 항구, 항해, 해상 구조, 수중고고학 등의 체험이 가능하다. 3층은 ‘세계의 선박’ 편이다. 다양한 환경과 여러 나라의 선박 건조 기술 그리고 그 문화를 상징하는 도구 등이 전시된다.
헬(Hel) 어업박물관이 자리 잡은 헬은 독특한 지형이다. 발트해로 돌출된 긴 모래톱이 만을 막고 있으며 건너편에 거대한 석호가 있다. 유서 깊은 헬 등대가 서 있는 모래톱에는 전통적인 어촌이 자리한다. 어업박물관은 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를 개조하였다.
‘포모르자(Pomorza)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범선박물관이 있다. 포모르자는 3단 돛을 갖춘 흰색 범선으로, 독일 상인이 함부르크에서 건조했다. 1929년 폴란드에 도착해 폴란드 항해가의 훈련에 쓰였으며, 퇴역과 동시에 박물관으로 들어왔다. 관람객은 선박의 엔진실, 선장실, 사무실, 승무원실 등 1909년 건조 당시 그대로의 시설물을 구경할 수 있다.
트체프(Tczew)강 박물관은 폴란드에서 가장 긴 강에 바치는 역사적 헌정물이다. 강가에 위치한 옛 가스 공장 터를 재생하여 활용했다. 강을 이용한 교역의 역사, 16~18세기 황금시기의 기록, 강의 상업적 활용과 강상무역 등을 다룬다.
그단스크만 옆의 초대형 석호의 어항에 석호박물관을 만들었다. 옛 선박 작업장을 변모시켰는데 전통 폴란드 어선을 구경할 수 있다.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던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다양한 연장이 수집되어 있다. 박물관은 석호를 이용한 어민의 수산사와 선박 건조, 수리, 로프, 일과 항해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다.
본관 건물과 해양문화연구소, 선박박물관, 크레인 등이 그단스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면, 나머지 박물관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단스크의 해양박물관은 오랜 해양사의 장기 지속 역사를 간직한 항구도시의 해양력을 잘 함축해서 설명해주는 중이다. 각각의 박물관은 각각의 역사적, 공간적, 기능적 조건을 배합하여 특성화 박물관으로 존재한다. 물론 각각의 박물관은 규모가 작을 뿐더러 건축 재생의 원칙에 따라서 신축 건물이 아닌 옛 창고, 선박수리시설, 교회 등을 개조한 것이다. 도시재생의 문화 공간으로 매우 일찍부터 변신했다.
부산의 영도에 위치한 국립해양박물관을 제1관 영도관, 제2관 북항관 그리고 인근 울산, 진해, 마산, 통영, 경주, 포항 등지로 확산시켜 융·복합 네크워크로 운영한다면? 그단스크는 ‘선배 박물관’으로서 충분히 그 가능성과 미래성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그리하여 부산의 국립해양박물관은 해양수도 부산에 자리 잡은 국립‘중앙’해양박물관으로서 전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국립해양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