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천 번화가 인근 주택에 운영
- 웬만한 주방기구·식기 갖춰놔
- 음식 해먹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 데이트·파티 장소 활용하기 좋아
- 에어비앤비처럼 예약해 빌려
- 최대 3시간·8명 사용할 수 있어
- 설거지까지 끝내고 퇴실해야
부산도시철도 2호선 숙등역과 덕천역 사이 주택가. 평범해 보이는 2층 주택 1층 점포가 행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통유리를 살짝 가린 반투명 하얀 커튼 뒤로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내부가 비친다. 엔틱한 벽지와 소품, 원형 테이블, 뒤쪽으론 깔끔한 주방이 보인다. 바깥에 붙은 상호는 ‘덕천키친’이다. 워낙 낯선 단어의 조합이다 보니 ‘덕천치킨집’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
| 부산 북구 덕천동에 있는 공유주방 ‘덕천키친’의 내부. 부엌과 테이블이 있는 작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웬만한 조리 기구는 모두 갖추고 있어 재료만 사오면 된다. 박정민 기자
|
덕천키친 임현석(32·사진) 대표는 “동네 분들이 지나가다 ‘치킨집 개업했느냐’고 물어보신다”고 웃었다. 덕천키친은 ‘공유주방’이다. 공유주방은 물건이나 공간·서비스를 소유하지 않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빌려쓰고 나눠 쓰는 경제 모델인 ‘공유경제’의 한 형태다. 주방시설과 식사공간을 일정한 시간 빌려 쓴 뒤 비용을 내는 것이다.
 |
| 임현석 대표 |
공유주방에는 크게 두 가지 모델이 있다. 덕천키친처럼 사적 모임 공간으로의 성격이 강한 유형이 있다. 연인, 친구, 가족 단위 이용객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먹으며 색다른 경험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친구들끼리의 생일 파티, 예비 엄마의 베이비 샤워, 가족들의 색다른 식사 장소 등으로 활용된다. 베이킹 등 쿠킹 클래스 장소로도 쓴다. 서울 ‘후암주방’이 이 같은 유형의 선두 모델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기업형 공유주방도 유행하고 있다. 공유주방 업체가 마련한 소규모 주방에 배달 전문 음식점이 입점해 효율성을 꾀한다. 투자비가 들지 않고 월세보다 사용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에 인기몰이하고 있다. 음식 재료를 공동으로 대량 구매해 단가를 낮추고 전문가에게 위생이나 운영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도 이 같은 기업형 공유주방 ‘노마드 쿡’이 최근 개장했다.
 |
| 덕천키친 외부.
덕천키친 제공 |
덕천키친은 지난달 22일 영업신고를 하고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규모는 약 20㎡로 작은 방 두 개를 합친 정도다. 사용 시간은 한 번에 최소 3시간이다. 하루를 기준으로 오후와 저녁 각각 두 팀이 사용하는 패턴이 보통이다. 식기와 수저는 최대 8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다. 그릇, 접시, 와인잔, 냄비, 오븐, 전자레인지, 인덕션, 에어프라이기, 커피메이커 등 웬만한 주방기구는 다 있다. 기본 양념도 있다. 베이킹도 가능하다.
사용료는 평일엔 1인 시간당 5000원, 주말엔 6000원이다. 1인이 3시간 사용한다면 평일 1만5000원(주말 1만8000원), 2인이 함께 쓰면 3만 원(주말 3만6000원)이다. 무엇을 해 먹는지에 따라 식자재 비용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간단한 파스타와 샐러드 정도를 해먹는다면 한 사람이 세 시간 동안 독특한 시간을 보내는 데 필요한 비용이 3만 원을 넘진 않을 것 같다.
 |
| 이용객이
만든 음식. |
덕천키친 이용법은 간단하다.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예약 서비스를 통해 원하는 시간을 지정하고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공간 사용방법과 현관문 비밀번호는 임 대표가 메일을 통해 알려준다. 임 대표는 덕천키친에 상주하지 않는다. 부산의 모 공유경제 관련 기업의 직원이기도 해 평일에는 나오려야 나올 수도 없다. 에어비앤비(Airbnb)처럼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모든 과정이 진행된다. 이용자는 다음 이용자를 위해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끝내놓고 퇴실해야 한다. 주인이 없어도 이용자들의 양심에 의해 공간은 지속한다.
 |
| 이용객이
요리하는 모습. |
임 대표는 “서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여했다가 ‘후암주방’의 사례를 보고 덕천키친을 기획했다”고 했다. 그는 “노후한 동네가 공유주방을 사용하는 젊은 사람들로 활기를 띠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후암주방 가까이 전통시장이 있는데 이용객들이 전통시장에서 장을 봐 음식을 해 먹으니 시장이 전보다 활성화됐다”고 덧붙였다.
공유주방을 덕천동에 개장한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목적도 있었다. “도시재생이 원도심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북구에는 젊은 사람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유입될 계기가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덕천키친과 멀지 않은 곳에 구포시장이 있다. 향후 구포시장과 연계한 쿠킹 클래스, 셰프를 초빙한 쿠킹 클래스, 외국인을 위한 쿠킹 클래스 등 로컬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