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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스필버그의 언덕, 경계선을 넘어 역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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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1-23 18:51:32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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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1993)의 한 장면에서 오스카 쉰들러는 말을 타고 산책하던 중 언덕 위에서 마을의 전경을 내려다본다. 그 아래에선 지옥이 펼쳐지고 있다. 독일군에 의한 강제 이주와 학살로 유대인 거주 구역은 아수라장이 되고 붉은 옷의 소녀는 광기와 혼란, 죽음을 피해 침대 아래로 몸을 숨긴다. 쉰들러는 이를 기점으로 파렴치한 사업가에서 벗어나 1200명의 목숨을 건져내는 인도주의자로 변모하게 된다. 이 장면에는 스필버그가 평생을 통해 일관해온 모티브가 집약되어 있다. 언덕의 바깥에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릴 죽일 수도,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언덕의 저편으로 넘어가 보이지 않는 저편을 목격할 것인지의 결단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 한 장면.
데뷔작 ‘듀얼’(1971)은 이유 없는 트럭 운전사의 기습에 맞서 도로변에서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초년의 스필버그는 이상하게도 트럭 운전사를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처럼 처리한다. 소품이지만 ‘듀얼’에는 불가해(不可解)한 세계의 공포, 광기와 혼돈의 실체를 탐구하고자 하는 훗날 스필버그 영화의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반면 ‘미지와의 조우’(1977)와 ‘E.T.’(1982)는 미지의 대상에 대한 가장 종교적이고 낙관적인 비전이다. 스필버그는 UFO의 빛을 따스한 노랑과 주황색으로 연출하고 ‘E.T.’를 친근한 대상으로 묘사함으로써 바깥 세계에 대한 긍정과 휴머니즘적 상상을 내비친다.

‘태양의 제국’(1987)은 스필버그 영화 경력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다. 소년 짐은 수용소의 언덕, 철조망 너머에서 출정하는 일본군 비행사들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짐의 상상과는 달리 이들의 실체는 제국주의의 폭력이며, 비행기 조종사의 꿈과 전쟁의 현실 사이에는 깊은 괴리의 골이 파여 있다. 소년은 수용소로 내몰리고 나서야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바깥세상의 실체를 경험하며 그동안 간직해온 일말의 동심마저 잃게 된다. 이 영화는 본격적으로 역사 현실을 다루면서 비로소 세계에 깃든 공포의 정체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된 스필버그의 영화적 성인식이다.

   
‘우주전쟁’(2005)에 이르면 ‘미지와의 조우’의 낙관은 비관으로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외계인의 빛은 초대장이 아닌 죽음의 광선이 되었으며, 언덕 너머에는 구원과 희망이 아닌 절멸과 폐허가 기다리고 있다. ‘워 호스’(2011)에서 군마(軍馬)가 된 조이는 프랑스의 한 농장에서 잠깐의 휴식을 맞지만, 농장과 바깥세상의 경계인 언덕을 넘어서, 총성과 포연으로 가득한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겪는다. ‘경계선으로서의 언덕’이란 모티브는 반복된다. 평온한 농장과 참혹한 전장 사이에 단 하나의 언덕이 자리하고 있고, 그 경계선의 안과 밖으로 질서와 혼돈, 삶과 죽음, 이성과 광기의 세상이 갈라져 있다. 냉전기의 베를린을 다룬 ‘스파이 브릿지’(2015)에서도 스필버그는 베를린 장벽을 통해 이러한 작가적 구도를 관철시킨다. 몽상가 청년은 막연한 불안을 안은 채 역사의 언덕을 넘었고, ‘링컨’(2012)과 ‘더 포스트’(2017)에 이르러 그 어두운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노장이 되어 갔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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