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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의 유해진 “구수한 말맛에 반한 감독님, 날 위해 만든 작품이래요”

한글 깨우치는 까막눈 김판수 역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19-01-09 19:04:45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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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운전사 집필 엄유나 감독이
- 나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
- 사투리 잘 쓰는 것도 큰 자산
- 윤계상 세월 갈수록 연기 깊어져”

의미 있는 현대사를 영화화한 ‘택시운전사’, ‘1987’에 출연해 시대의 아픔을 겪는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 유해진이 또 한 번 소시민을 연기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대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다.

   
영화 ‘말모이’에서 조선어학회 사환 김판수 역을 맡은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택시운전사’ 각본을 맡았던 엄유나 감독의 데뷔작인 ‘말모이’(9일 개봉)는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우리말을 모아 조선말 사전을 만들려고 했던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유해진은 지식인 사이에서 까막눈이지만 조선어학회 사람들과 전국의 말을 모으면서 한글을 배우고 우리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조선어학회 사환 김판수 역을 맡았다. 그는 윤계상, 류정환, 김홍파, 김태훈, 김선영과 아역 조현도, 박예나 등과 호흡을 맞추며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웃음과 감동을 준다.

온 가족의 새해 첫 관람 영화로 더없이 좋은 ‘말모이’로 찾아온 유해진과 영화와 우리말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9년이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모이’는 새해를 여는 영화로 안성맞춤이다.

▶까막눈 김판수라는 한 인물의 변화를 통해 한글과 우리말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영화라 새해를 의미 있게 출발하는 것 같아서 좋다. ‘말모이’는 새해니까 떡국 같은 영화이자 연탄불에 구워서 조청 찍어 먹는 가래떡 같은 영화다.

-‘말모이’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아무래도 ‘택시운전사’를 집필한 엄유나 감독과의 인연이 있었을 것 같다.

▶‘택시운전사’ 촬영 때 엄 감독님이 저를 염두에 두고 쓰는 시나리오가 있다고 해서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고 “네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나중에 “진짜로 말맛을 잘 살릴 것 같아서 선배님을 두고 썼다”고 하더라. 누군가가 저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또 읽었던 시나리오 중 좋은 의미도 담고 있고, 한 사람의 성장기이기도 해서 출연했다.

-유해진 씨의 연기를 보면 말맛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후려치다’와 ‘휘갈기다’를 설명할 때처럼 말이다.

   
▶시조 운율이 듣기 편하고, 말하기 편해서 우리에게 익숙하다고 하더라. 평소 말을 그렇게 하는 편이고, 걸쭉하고 구수하게 표현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역을 맡은 윤계상 씨가 자신의 출연 이유로 유해진 씨를 꼽았다. 이전에 ‘소수의견’에서 같이 출연했는데.

▶윤계상 씨가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자주 해서 제가 좀 오그라들 때가 있다. 사실이든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말이든 고맙다. 윤계상 씨의 배우생활을 보면 세월을 잘 묻히고 가는 느낌이 든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 깊이감이 생겼다.

-조선어학회의 어른이자 정신적 지주 같은 조갑윤 선생 역의 김홍파 씨는 ‘마약왕’에서 마약을 조제하는 기술자였다. 선과 악을 오가는 연기가 빛난다.

▶‘마약왕’의 연기는 못 봤는데, 형님이 실제로 술 좋아하시고, 사람 좋은 분이다. 연극을 할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홍파 형님은 너무 좋다. 독한 악역을 많이 하셨는데 실제로는 순한 모습이 많은 분이다.

-자식 역할로 출연한 아역 조현도와 박예나의 연기가 좋았다.

▶딸 순희 역의 예나는 너무 귀엽고 예쁘다. 예나를 목화솜, 솜사탕 같다고 했는데, 오늘은 백설기 같기도 하다. 아들 덕진이 역의 현도도 예의 바르고 착해서 너무 좋았다. 촬영 현장에서 아들이 아버지 닮았다고 하면 현도가 좀 싫어해서 웃었다.

-‘말모이’를 촬영하면서 우리말 사용에 더 신경이 쓰였겠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촬영현장에서 외래어를 덜 쓰려고 했다. 특히 일본어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촬영을 마치고 국어사전 큰 것을 샀다. 학생 때 국어사전, 영어사전을 좋아했는데, 집에 국어사전 하나 없더라. 요즘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찾아 쓰기 때문에 몇 번 볼지 모르지만 양심상 하나 샀다. 오늘 집에 들어가서 ‘말모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려 한다.

-후반부에 김판수가 남긴 편지는 직접 왼손으로 썼다고 들었다. 직접 쓴 이유가 있는가.

▶미술팀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서 직접 왼손으로 썼다. 띄어쓰기 못 하고, 잘못 쓰면 침으로 지우고 하는 것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것 쓸 때 이상하게 마음이 짠하더라.

-‘말모이’에는 같은 뜻의 지방 사투리를 다 모아서 지방 대표들이 표준어를 정하는 장면이 있다. 사투리가 참 감칠맛이 있더라.

▶‘태백산맥’ 같은 소설을 보면 사투리가 그대로 나오는데, 그렇게라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소설은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연기자가 표준어만 써야 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사투리를 잘 쓰는 것이 큰 자산이다. 사투리 쓰는 것이 캐스팅에 영향을 안 미치는 것은 말의 개성이 있어 좋다. 겨울이면 다 롱패딩을 입어야 하듯 획일화되는 시대에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유해진 씨는 관객에게 편안한 웃음을 준다. 그 웃음이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서 좋다.

▶‘럭키’나 ‘완벽한 타인’을 코미디가 아니라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코미디는 서울에서 부산을 가면서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나 호두과자를 먹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픽 하고 웃는 웃음을 좋아하는데, 그런 웃음을 주면서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여운이 남고 자기 시간을 갖게 하는 영화가 좋다.

-앞서 윤계상 씨에게 ‘세월을 잘 묻히고 간다’고 했는데, 유해진 씨 또한 그런 것 같다.

▶개인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제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 연기에 대한 것은 세월을 잘 묻히고 가는 것 같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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