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영화 ‘출국’은 오길남 박사의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모티브로 했다. 1986년 베를린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 중이던 유학자 오영민(이범수)이 자신의 학문을 높이 평가해준 북으로 가지만 잘못된 선택임을 깨닫고, 독일 공작원으로 파견되던 중 코펜하겐 공항에서 위험천만한 탈출을 시도하다 가족과 헤어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담았다. 이범수는 헤어진 아내와 자식들을 되찾기 위해 베를린에서 남과 북, 그리고 CIA 독일지부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오영민 역을 맡아 진정성 있는 부성애 연기를 펼친다.

실제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출국’에서 더욱 생생한 연기로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 이범수를 만나 영화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출국’의 출연 제의를 받고 어떤 느낌이었는가?

▶시나리오를 읽고 배우로서 욕심이 났다. 최근 자극적인 영화가 주류고, 저 또한 그런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영원히 그것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배우의 연기력으로 작품을 끌어가는 구조의 시나리오를 만나서 즐거웠다. 배우로서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욕심이 났다. 내용 면에서도 이 시대의 아버지들, 그리고 우리를 길러주신 아버지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고, 저 또한 아버지라서 오영민이 느끼는 부성애가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시대극이고, 해외 촬영이 진행되는 영화인데 신인감독과 작업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겠다.

▶감독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철학적 코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멋진 직업이다. 배우 또한 세상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규엽 감독과 첫 미팅을 하고 준비를 꼼꼼히 했고, 이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즘 신인감독이 데뷔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힘이 돼주고 싶었다.

-준비가 잘 된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 1986년 베를린을 재연한 촬영이 좋았다. 특히 촬영 장소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가 호흡을 맞춘 ‘스파이 브릿지’가 생각날 정도였다.

▶같은 촬영 장소가 맞다. 폴란드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 촬영 전에 스필버그 감독 팀이 와서 ‘스파이 브릿지’를 촬영하고 갔다고 하더라. 2016년 가을 폴란드에서 두 달,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촬영했다. 처음에는 배경이 독일인데 왜 폴란드에서 촬영하나 싶었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는 과거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총탄을 맞은 벽들이 그대로 있었다.

-1986년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설정했나?

▶저한테 1980년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걸쳐 있던 시기여서 무척 친근하다. 그래서 당시를 떠올리며 쉽게 스타일링할 수 있었다. 외적인 것보다는 제가 80년대 학생일 때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봤다. 그 당시 우리들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있는 모습이었다. 제가 연기한 영민 또한 공부밖에 모르고, 교수로 인정받는 것이 자식과 가정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생각하며 영민을 리얼하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딸 혜원을 대하는 오영민의 모습이 무척 애틋하게 다가왔다.

▶자식을 다뤄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아빠가 되니까 알겠더라. 혜원이와 함께 있을 때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영화를 보니 그런 의도가 제대로 묻어났다는 생각이 들더라.

-독일어 연기도 많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언어라 힘들었겠다.

▶아쉬운 것이 독일어 부분의 5분의 4가 편집된 것이다. 특히 CIA 독일지부장 샘과 나누는 대사가 무척 많은데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을 더 보여주는 장면이라 아쉽다. 샘 역을 맡은 분이 저의 독일어 연기를 보고 원래 할 줄 아냐고 묻더라. 문장 이해하고, 억양 습득하고, 그리고는 미친놈처럼 녹음한 것을 들으면서 계속 외웠다.

-‘출국’의 주된 내용은 가족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부성애지만 단순히 국정원, 북한 요원, CIA가 얽힌 스파이 영화로 봐도 재미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촬영하면서 노 감독과 스파이물로 가면 어떨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부성애라는 원래 이야기가 흔들리고,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질 것 같다고 했는데, 노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

-‘출국’은 박근혜 정부에서 지원을 받은 화이트리스트 작품이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오해다. 분명한 건 이득이든 손해든 부당한 혜택이 있어선 안 된다. 배우는 시나리오를 읽고 느낌, 진정성이 영화화 됐을 때 어떤 울림을 줄까를 생각하며 접근한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는 거라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영화가 소중하지만 요즘은 볼거리, 흥미 위주 영화가 많은 것 같다. 그 가운데 ‘출국’은 차별점이 있는 영화다. ‘출국’을 보시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족애, 부성애가 지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