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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왜관 일본인(대마도인) 거주 뒷받침할 도자기 파편 첫 발견

  • 국제신문
  •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  입력 : 2018-08-29 19:12:2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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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 발견 의미는

- 日 마비 교수·부산박물관 합동
- 동광동 공사현장서 우연히 찾아
- 대마도 지명 ‘시카’ 새겨진 조각
- 현지서 만들어 가져온 것 추정
- 일본 수출 도자기 ‘부산요’까지
- 한일 무역교류 증거로 가치 높아

# 묻혀진 문화재 보존방법은

- 옛 초량왜관터 일대 재개발 한창
- 지하 매장 유물발견 가능성 높아
- 중구, 사유지·민원 이유로 외면
-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지정 등
- 국가·시 차원서 방안 마련해야

초량왜관에 대마도 출신 일본인이 거주하며 한일 교역을 펼쳤다는 문헌기록을 증명할 구체적인 유물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도자기 파편일 뿐이지만, 초량왜관과 관련한 유물·유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초량왜관 터나 유적 인근 건물 건축 공사 때 문화재 조사가 전혀 이루지지 않아 귀한 매장문화재가 파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중구 동광동 초량왜관 터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편 4점. 왼쪽 도자기 파편(1사진)에 ‘志賀’(일본어 발음 ‘시카’)가 새겨져 있어 대마도 ‘시카요’에서 생산됐음을 알 수 있다. 2번과 3번은 초량왜관 ‘부산요’에서 생산된 도자기의 파편, 4번은 청화백자 파편으로 대마도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박물관 제공
■대마도 도자기 발견 의미는

일본 도쿄예술대 미술학부 카타야마 마비 교수와 부산박물관(부산 남구) 문화재조사팀은 지난 22일 오후 부산 중구 동광동 부산데파트 뒤 건물 신축 공사현장에서 초량왜관 유물로 추정되는 도자기 파편 여러 점을 발견했다고 30일 밝혔다.

   
초량왜관 터에서 나온 도자기 파편의 의미를 설명하는 도쿄예술대 카타야마 마비 교수.
유물이 발견된 장소는 주차장과 기존 건물을 허물고 지하 1층, 지상 8층 상가 건물을 짓는 공사현장(동광동 1가 6-1, 6-2, 6-6번지 ,총면적 456.3㎡)이다. 이 주차장 뒤편에 있던 돌벽은 초량왜관 선창(부두) 석축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어 지난해 11월 중구청이 내준 건축허가의 적절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마비 교수는 “왜관에서 생산한 도자기를 연구하는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부산박물관팀과 초량왜관 주요 장소를 둘러보던 중 우연히 공사현장 흙더미에 노출돼 있는 도자기를 발견해 수습했다”고 전했다. 마비 교수는 도자사 전공자로 특히 왜관 무역과 관련된 도자 역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부산요 출토편에 대한 고찰’ 논문을 발표해 잊힌 초량왜관 부산요에 생명을 불어넣은 학자다.
이번에 발견된 도자기 파편 중 마비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4점이다. 가장 중요한 파편은 밝은 황토색 사발(완) 아랫 부분이다. 사발을 뒤집으면 밑바닥에 ‘志 賀’(일본어 발음 ‘시카’)라는 한자가 검은 색으로 새겨져 있다. 글자 옆에는 같은 글씨가 새겨진 도장을 찍었는지 한자 모양대로 패여있다. 마비 교수는 “‘시카’는 대마도의 한 지명으로, 이곳에는 1726년부터 도자기를 생산한 ‘시카요’가 있었다. 발견된 도자기는 시카요에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초량왜관에 대마도 남자 400~500명이 상주했다는 문헌기록은 있지만, 기록을 입증할 생활 흔적이 발견된 건 처음이다. 마비 교수는 청화백자 파편 1점도 형태와 유약 등으로 미뤄 대마도에서 생산한 도자기로 추정했으나 ‘시카’ 글자 같은 정확한 근거가 남아 있진 않다. 마비 교수는 대마도인이 직접 사용할 목적으로 대마도에서 도자기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2점은 “초량왜관에 있던 ‘부산요’에서 생산한 도자기 파편”이라고 마비 교수는 추정했다. 부산요는 조선의 ‘다완’을 선호하던 일본의 주문을 받아 경상도 흙으로 조선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어 수출하던 가마였다. 현 중구 로열관광호텔 자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부산요 부지에 방공호를 팔 때 나온 도자기 파편이 동아대박물관에 보관돼 있는데, 한국에 남은 유일한 부산요의 흔적이다. 부산박물관도 동아대박물관에서 부산요 도자기 파편을 대여받아 전시하는 실정이라, 비록 파편이지만 학술적 가치가 높다.

마비 교수는 “4점 모두 부산요 터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고 사용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창고에 보관 중이던 도자기 아닌가 싶다. 생산이 아닌 한일 무역의 증거가 되기에 더욱 의미 있다”고 했다. 발견된 도자기 파편은 모두 부산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향후 연구, 전시에 활용될 예정이다.

■매장문화재 조사 방법 없나

   
도자기 파편이 수습된 중구 동광동 공사현장. 돌담을 허물고 난 뒤 나타난 옛 토층에서 발견됐다. 부산박물관 제공
초량왜관은 조선 후기(1678~1870) 중구 신창동,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 대청동 일대 약 11만 평에 형성돼 일본인이 거주하며 한·일 교역을 펼친 곳이다. 부산시는 경성대 산학협력단에 초량왜관 관광자원화 방안 연구 용역’(국제신문 지난달 20일 자 18면 보도)을 발주하는 등 초량왜관 관광자원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초량왜관 관련 건물이나 유물 등 고고학적 증거 찾기는 진행되지 않아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이 있다. 과거 초량왜관 우두머리가 살았던 관수가의 축대와 우물터가 발견된 바 있으나 보존되지 않고 공사가 그대로 진행됐다.

아직 기회를 놓친 건 아니다. 지하를 깊이 파지 않은 곳은 지하에 유구·유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발견된 도자기 파편도 한 번도 헤집지 않은 듯한 과거 흙층에서 나왔다. 학계에서는 초량왜관 터에 건축 공사를 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가 입회해 문화재 존재 유무를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중구는 “초량왜관 터가 문화재보호구역이나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문화재 존재 유무를 조사할 강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도자기 파편이 발견된 공사현장도 전문가 조사가 선행되지 않았다. 초량왜관처럼 역사서, 고증된 기록, 학계 연구 결과에 따라 문화재 매장 가능성이 높을 경우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에 따라 지자체장이 ‘지표조사’(건설공사에 앞서 지표에 노출된 유물이나 유적 분포를 조사하는 것)를 명할 수 있지만 해당 자치구는 사유재산권과 민원 탓에 법 적용에 소극적이다.

중구 관계자는 “중구 대부분이 초량왜관 터인데 법적 강제력도 없이 건물 공사 때마다 지표조사를 하면 구민의 사유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초량왜관의 역사적 가치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아 구민 설득도 힘든 실정”이라며 “초량왜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자치구로서는 한계가 있다. 시나 국가차원에서 초량왜관을 보존·복원할 큰 계획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중구는 또 “발견된 도자기파편은 그 가치를 면밀히 검토해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마비 교수는 “건축공사를 할 때 초량왜관 유적, 유물이 나올 텐데 일반인이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한·일 교류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흔적인데 안타깝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관광개발을 하더라도 조그마한 역사 증거물이라도 남아 있어야 더 관심을 가질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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