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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100년 전 우리네 삶 속으로…

경북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여행

  • 국제신문
  • 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  |  입력 : 2018-08-22 19:05:27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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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때 형성된 옛 영주역 일대
- ‘근대역사문화거리’로 등록문화재 등재
- 고풍스러운 기계 가득한 ‘풍국정미소’
- 고딕 양식 일부 적용해 지은 ‘제일교회’
- 80년 된 영광이발관·목조 철도관사 등
- 오랜 세월 지나온 예스러운 멋 풍겨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벽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풍국정미소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높직한 천장까지 닿을 듯한 목재 구조물에 설치된 된 도정기는 낡았지만 관리를 잘해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다.
요즘은 만든 지 오래되지 않은 물건이라도 흔하지 않고 쓰임새가 좋다거나, 지은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건물이라도 건물의 형태나 용도가 남다르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예전에는 특정 건물이나 공간만을 대상으로 하던 것이 건물과 거리 등 일대를 모두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당시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달 초 문화재청은 전북 군산과 전남 목포, 경북 영주 세 곳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등록문화재로 등재했다. 군산과 목포는 19세기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주택과 산업시설 등의 근대유산이 오래전부터 잘 알려졌다. 영주는 철쭉과 눈꽃으로 명성이 높은 소백산이나 최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증받은 부석사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요 철도 교차점으로 일제강점기 형성된 옛 영주역 일대의 철도관사와 정미소 등 생활시설이 가치를 인정받아 이번에 함께 등록됐다. 영주 구도심의 근대역사문화거리와 영주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서천 주변의 불교와 역사 유적을 함께 찾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돌 것 같은 풍국정미소

   
영주시 근대역사문화거리는 도시 중심에서 약간 북쪽인 철탄산의 남서쪽 자락에 형성됐다. 영광중학교를 중심으로 광복로와 두서로 일대에 철도관사를 비롯한 근대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제일교회부터 풍국정미소, 영광이발관 등 세 곳이 있는 광복로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단이 모은 군자금을 만주로 전달하는 거점 역할을 하던 대동상점이 주변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지금 이 건물은 사라졌지만 이처럼 역사적인 거리에서 오랜 세월을 지킨 건물들이 등록문화재가 됐다는 게 뜻깊다.

군산이나 목포와 비교하면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의 문화재 지정 면적이나 근대건축물 숫자는 못 미치는 편이다. 건축물로는 6곳이 등록됐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이 풍국정미소다. 풍국정미소는 건립 연대가 공식적으로는 1966년으로 가장 최근이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풍국정미소 주인장인 우길언(80) 씨가 부친에게서 물려받았는데 20대이던 1960년대부터 이곳에서 일했단다. 영주의 곡창지대인 안정면 안정뜰에서 수확한 벼를 찧던 풍국정미소는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2010년대 초에 기계를 멈췄다. 거리에 면한 허름한 가게는 여전히 문을 열고 우 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가게의 손때 묻은 주판과 책상은 문화재급이다. 마당을 지나면 낡은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의 정미소 건물이 나온다.

   
겉보기엔 곧 쓰러질 듯한 풍국정미소 사무실.
2013년 경상북도 산업유산으로 지정된 풍국정미소는 안쪽 풍경이 뜻밖에 밝고 환하다. 지금은 보기 드문 목재 구조물에 기계를 설치했다. 입구 바로 옆에 벼를 넣어 벨트를 이용해 이동하면 머리 위에서 쌀을 찧는 모든 과정이 진행된다. 고풍스러우면서 우아하기까지 한 기계를 보러 요즘도 견학하러 오는 공학도가 많단다. 화재 위험 때문에 전기를 끊었지만 언제라도 다시 돌릴 수 있는 상태다. 한쪽 벽에는 두 대 중 한 대만 남은 보리 도정기가 있고 구석진 벽에는 밀 도정기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수십 년 세월을 넘어 지금도 가동하는 정미소는 전국에 몇 곳 되지 않는다. 다른 곳처럼 이곳도 카페로 변신할 수 있겠지만 원래의 멋을 잃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활이 곧 역사가 되는 소중한 유산

   
1958년 준공한 제일교회.
풍국정미소뿐만 아니라 광복로에서 두서로로 연결되는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일대는 1941년 옛 영주역이 영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1935년에 만든 관사 두 곳과 그보다 앞서 1920년에 세운 근대한옥, 1950년대 만든 영광이발관, 1958년에 준공한 제일교회 등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친 영주 구도심의 근대생활사를 간직한 건축물이 모여 있다. 1907년 기독교 신도들이 기도 모임을 만든 뒤 1907년에 현재 영주시의회 인근 제일교회 위치의 남서쪽 구성공원 아래에 처음 교회 건물을 세웠다. 신사참배 반대로 목사와 전도사 등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제일교회는 6·25전쟁 때 불탄 뒤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 건립됐다. 고딕 양식을 일부 적용한 건물은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1950년대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한 영광이발소.
이곳에서 광복로를 따라 풍국정미소를 지나면 곧 영광이발관이다. 1930년대 개업해 위치와 이름, 소유주를 바꿔가며 8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발소다. 지금도 영업하는 이발소 건물의 완성도는 낮지만 주민 생활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다. 영광중학교에서 길을 꺾어 두서로로 올라가면 도로 아래에 자그마한 밭을 낀 기와집이 있다. 삼거리 무궁화제분소를 운영하는 주인집이라는 이 개량한옥은 옛 고택의 별채로 지어졌는데 본채는 사라지고 이 집만 남았다.

   
일제강점기 만든 철도관사.
영광중학교 뒤 야트막한 산자락의 관사골 주택가에 붙어 있는 5호 관사와 7호 관사는 전형적인 옛 일본식 목조 관사 주택의 모습이다. 세월을 품은 단층 주택이 작은 텃밭과 잘 어우러진다. 제일교회와 풍국정미소, 영광이발관은 간판 같은 게 있어 쉽게 찾을 수 있고 한옥도 영광중 옆으로 기와지붕이 눈에 띈다. 하지만 두 채의 관사가 있는 관사골 일대는 비슷한 분위기의 주택이 모여 있어 헷갈릴 수 있다. 문화재로 등록은 됐지만 아직 안내시설은 전혀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 제민루·신라 시대 불상 등 서천 인근 볼거리 수두룩

■ 영주 시내 볼 만한 곳

   
구학공원 삼판서고택 위에 있는 제민루.
경북 영주는 부석사와 소수서원, 선비촌, 무섬마을이 대표하듯 불교 문화가 융성하고 유교문화의 뿌리도 깊은 곳이다. 영주 곳곳에 명소가 자리 잡고 있지만 영주 도심의 역사문화거리와 서천 인근에도 볼거리가 많다. 영주역사문화거리가 시작하는 제일교회 인근에는 영주시의회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옛날 영주관아가 있던 자리를 뜯어내고 영주초등학교를 지었는데 중앙의 관리들을 맞던 영훈정이 남아 있다.

영주365시장 맞은편 서천 방향에는 야트막한 언덕인 구성공원이 있고 이곳에서 다시 서쪽의 서천가에는 구학공원이 있다. 구성공원에는 선정비와 반구정, 봉송대 글씨 등이 있다. 반구정은 고려 말 김해부사를 지낸 사복재 권정이 고려 멸망 소식을 듣고 고향 안동에 세웠던 정자를 후손들이 옮겨온 것이다. 영주~풍기 철로 아래를 지나 서천강변으로 가면 구학공원 제민루 아래 정도전 생가인 삼판서 고택이 있다. 원래는 구성공원 동쪽에 있었지만 1961년 사라호 태풍 때 유실돼 이곳에 새로 지었다. 고택 뒤에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로 ‘군사작전 개념으로 수해복구’를 한 것을 기념해 심은 나무와 설명판이 있다. 당시 365시장과 붙은 중앙공원 자리에 있던 영주역도 지금 자리로 옮겨갔다. 옛 서천은 구성공원과 구학공원 사이를 흘렀던 셈이다. 제민루에서는 서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소백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로가 바뀐 서천 옆에는 보물 두 점이 있다. 구학공원 옆 옛 영주도서관 뜰에는 통일신라 시대 중기의 영주동 석불입상(보물 제60호)과 오층석탑이 있고 바로 앞에는 일제강점기 항일의병 233명의 투쟁실적을 수집해 ‘기려수필’을 지은 송상도 추모비가 서 있다. 이곳에서 강변을 따라가다 가흥교를 건너 500m를 내려가면 도로변 화강암벽에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과 경북 유형문화재인 가흥리 암각화가 강을 바라보고 있다.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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