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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목조건축물 박물관 온 듯 오래된 화려함 가득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경북 안동 봉정사 나들이

  • 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  |   입력 : 2018-07-11 19:06:4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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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문무왕 때 능인대사가 창건
- 고려·조선 건축의 진수 간직한
- 극락전·대웅전 등 20여 동 건물
- 부석사와 함께 오랜 역사 자랑
- ‘작은 봉정사’로 불리는 영산암
- ‘달마가 동쪽…’ 영화 배경으로 유명

- 봉정사 가는 길에 있는 ‘학봉종택’
- 규모 크고 잘 정돈돼 기품 느껴져

지난달 30일 바레인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가까운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비롯해 7곳의 사찰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1차에서는 규모가 작다는 지적으로 등재 권고를 받지 못했다가 최종적으로 세계유산에 포함된 곳이 경북 안동의 봉정사다. 봉정사는 이번에 함께 등재된 통도사나 선암사 법주사와 비교하면 확실히 규모에서는 크게 차이 난다. 그러나 봉정사를 직접 보면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품은 사찰임을 체감할 수 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 첫 주말을 맞은 봉정사와 그 주변을 찾았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만세루 누하를 지난 뒤 왼쪽으로 꺾어 화엄강당 아래 통로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화엄강당과 만세루, 대웅전, 무량해회 건물의 처마와 지붕이 겹친 듯 비켜가는 모습이 올려다보인다.
■보면 느껴지는 ‘세계유산’ 봉정사의 가치

이번에 등재된 7곳의 사찰은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한다고 평가받았다. 신라 문무왕 때인 672년 능인 대사가 창건한 봉정사도 1300년을 넘는 동안 이어져 온 역사의 깊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서안동IC를 벗어나 924번 지방도를 가다가 봉정사 입구 삼거리에서 천등산 자락 봉정사 가는 길에 접어든다. 한국에서 고르고 고른 7개의 사찰 중 한 곳에 오르는 도로치고는 좁고 한적하고 여유롭다.

여느 산사보다 짧은 길을 지나 일주문을 지나면 금방 봉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돌계단이 만세루 아래로 통하는데 ‘경축 봉정사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 펼침막이 걸려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정면에 대웅전이 맞이한다. 봉정사는 오랜 역사만큼 옛 사찰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꼽히는 국보 제15호 극락전을 비롯해 국보 제311호 대웅전, 보물 제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등 2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봉정사와 함께 안동 고은사의 말사인 개목사에도 보물 242호인 원통전이 있다. 이 두 곳을 보면 우리나라 목구조 건축물의 박물관이라고 할 만하다. 고려 중기(극락전), 고려 말 조선 초기(대웅전), 조선 초기(개목사 원통전), 조선 중기(화엄강당과 고금당), 조선 후기(만세루) 건물의 시대적 특성을 볼 수 있다. 봉정사의 네 건물은 대웅전을 기준으로 왼쪽에 치우쳐 한곳에 모여 있다. 따로도 아름다운 건물들이지만 함께 자리를 잡고 배치된 모습이 더욱 조화롭게 보인다.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 부처의 몸을 새기고 따로 조각한 불두를 얹은 이천동 석불상.
봉정사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작은 봉정사로 불리는 영산암이 나온다. 봉정사를 거닐 때도 답사객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걸음걸이를 조심스럽게 하는데 영산암에 오르면 숨을 고른 뒤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할 것 같은 고요함을 느낀다. 법당 툇마루에 얹은 ‘쉿!’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작은 목판이 괜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화루 아래를 통해 들어서면 바위를 쪼개고 자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뜰을 건물이 둘러싼다. 그래서 이곳의 주인은 법당과 요사채가 아니라 바로 이 뜰이라는 느낌이 든다. 영산암은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등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세간에 알려졌다. 영화에서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는 노승 혜곡이 낡은 요사채의 작은 방에 앉아 바라보던 그 뜰이다. 영산암은 원래 봉정사와는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격리돼 작은 계단이 있는 오솔길로 올랐다는데 영화 수상 이후 답사객이 늘자 계곡을 메우고 넓은 다리와 계단을 만들었다.

■학봉종택, 집과 뜰에 벤 기품

단청도, 나뭇결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봉정사 일주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봉정사로 가다 보면 서후면사무소에 닿기 전 도로변 야트막한 야산 아래 의성 김씨 학봉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고택이 많은 안동이지만 학봉종택은 규모도 크고 안내판도 잘 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봉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직계 제자로 그의 학통을 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진주성 전투에서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기개로 명성이 드높기 때문이다. 학봉선생구택이라는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잔디가 단정한 마당과 학봉 선생의 시호를 딴 문충고가, 풍뢰헌과 고택스테이를 하는 안채 등이 보인다. 마당 오른쪽 나무 뒤에는 순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든다. ‘온순하나 개인지라 놀라거나 하면 물 수 있습니다’라며 객의 주의를 당부한다.

잘 단장돼 기품이 느껴지는 학봉종택.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사당으로 들어서는 문 옆 담장에는 예전 양반집에만 심었다는 능소화가 딱 있을 곳에 피어 있다는 느낌이다. 종손이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원장인 김종길 선생이 손님을 맞는다. 애써 열쇠를 챙겨와 학봉 선생의 친필 원고와 전적, 고문서 등 지정문화재 보물이 소장된 운장각으로 안내한다. 고가 바깥의 학봉기념관에는 학봉 선생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전시물과 함께 운장각 보관 문화재의 복제품을 전시한다. 학봉종택에서는 고택체험으로 숙박할 수도 있다.


# 함께 가볼 만한 곳

- 고택스테이 가능한 경당종택, 안동호 가로지르는 월영교 등
- 발걸음 떼기 어려운 곳 즐비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보물 제242호 개목사 원통전.
봉정사만 하더라도 한나절을 보내기는 충분하지만 그 주변에도 가볼 만한 곳이 많다. 학봉종택에서 봉정사로 가다가 서후면 소재지에서 잠깐 들어가면 안동 장씨 경당종택이 있다. 학봉종택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학봉종택과 마찬가지로 고택 스테이를 하는 이곳 마당에는 다양한 수목과 함께 포도 넝쿨이 눈길을 끈다. 멀지 않은 곳에 간재종택과 단계종택, 송암종택이 있다.

보물 242호 원통전이 있는 개목사도 따로 찾아가 볼만한 곳이다. 봉정사에서 등산로로 연결되지만 천등산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면 걸어가기는 버거운 높이와 거리다. 차로 가더라도 제법 애를 써야 한다. 좁고 가파른 콘크리트 길을 한참 올라야 한다. 봉정사 북동쪽 해발 400m가 넘는 높은 곳에 있는 개목사는 한적한 절이다. 원통전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해도 발에 밟히는 잔돌 소리만 들린다. 높이가 높이인 만큼 절 입구에서 바라보는 안동 시내 조망이 그만이다. 개목사에서 내려가 안동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이천동 석불상을 보고 가자. 연미사에 있는 이천동 석불상은 보물 제115호로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 부처의 몸을 새기고 그 위에 불두를 얹은 특이한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 인도교인 월영교.
안동호 아래의 월영교는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다. 물론 전체가 나무는 아니고 상부 구조물이 목재로 만들어졌다. 다리 가운데 월영정을 지나 강 건너편으로 가서 언덕 위에 안동댐 수몰로 옮겨온 석빙고(보물 제305호)와 월영대, 산성현 객사를 둘러보고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안동다례원 등 기와집과 초가집이 있는 안동민속촌이 나온다. 월영교는 야경이 아름답지만 부산에 되돌아오기가 바빠 해가 긴 요즘은 안동서 하루를 묵지 않으면 보기 어렵다.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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