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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를 찾아서] 부산공정무역연구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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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6-06 18:55:5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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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9월 말, 창업을 했다. 개업하던 날 아침 첫 출근길, 가슴 철렁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차! 거스름돈을 바꿔놓지 않았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인근 빵집으로 무작정 들어가 사정한 끝에 돈 통을 가지런히 채울 정도의 지폐와 동전을 바꿀 수 있었다. 무더위가 유달리 기승을 부렸던 그해 여름을 인테리어 공사로 보내고, 당일 새벽까지 기물과 개업 준비를 했던 초가을의 한 주말 아침 모습이었다.

카페는 대중이 쉴 때 더 바쁘다. 생활 패턴도 엇박자가 되고, 늦은 밤까지 문을 열어야 한다. 다 그렇게 한다. 애썼던 노력이 작동했을까? 첫 달부터 흑자였다. 둘째, 셋째 달도 흑자였다. 그런데, 딱 흑자까지만이었다. 오전부터 심야까지 계속 서서 일하는 탓에 엄지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졌다. 불규칙하고 부실한 식사는 건강의 자신감을 빼앗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보이는 만큼의 흑자 폭이 나는 언감생심의 날이 겨울까지 내내 이어졌다. ‘요즘엔, 3개월 이내에 비전이 보이지 않으면 작심해야 한다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추운 어느 날 밤, 마감을 하고 우두커니 앉았다. 열린 뒷문으로 차갑기 그지없는 12월 말의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 가장 힘들 때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스터디 회원 모집 안내문을 만들었다. 다음 날 매장 마감을 하고 컵라면 하나로 허기를 채운 후, 대학가 곳곳에 안내문을 붙였다. 이날이 8년 전, 부산공정무역연구회가 태동한 날이다.
제각기 서로 다른 직업과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이 모였다. 해가 바뀌었고, 토요일 오전마다 모여 공정무역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을 서로 공부하고 토의했다. 그해 가을이 끝나갈 즈음이 되자 드디어 스터디의 결과물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논의 끝에, 공정무역이 생소했던 그 시절, 세계공정무역협회(당시 Fair trade Labeling Organization, FLO)의 연차보고서를 번역해 공정무역 단체, 시민과 공유했다. 연차보고서에는 공정무역의 의미에서부터 실제 사례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가 포함돼 있었는데, 후에 한국에서 공정무역의 기초 개념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됐다.

또한, 서울지역에 집중돼 있던 공정무역 실천 단체들과 교류하는 계기가 됐으며, 세계공정무역의날 캠페인, 공정무역마을운동, 세계공정무역기구(WFTO) 콘퍼런스 참여 등의 활동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은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연합 동아리를 결성토록 해 순수 학술 연구모임으로 운영하고 있다. 부산공정무역연구회를 거쳐 간 대학생들은 이제 사회로 진출했다. 공정무역단체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에서 꿈을 펼치고 있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정무역과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사회는 그냥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우리 삶의 터전이었다.

박재범 부산공정무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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