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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숲을 거닐다 <10> 경북 성주 성밖숲

500년 자리지킨 왕버들 초록그늘, 잠시 쉬어가라 손짓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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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왕버들 55그루
- 울퉁불퉁 거대한 줄기 굴곡 사이
- 연둣빛 이파리 싱싱한 기운 듬뿍
- 평균 키 12.7m 둘레 3m 달해

- 여름이면 보랏빛 변신 맥문동
- 화창한 버드나무와 조화 이뤄
- 짧은 1㎞ 둘레길 산책코스 좋아

숲에는 여러 수목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흔한 소나무를 비롯해 단풍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 온갖 나무를 만난다. 이번엔 버드나무다. 물가나 산기슭 어디서든 잘 자란다. 청춘과 생명을 상징하는 잎은 청명한 녹음을 한껏 방출하면서 우리 곁을 지켜왔다.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경북 성주군 성밖숲. 지금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기지 공사로 인해 전국적으로 달갑지 않은 주목을 받는 경북 성주의 상징 중 하나다. 이름도 정겹고 친근한 성 바깥의 숲을 만나러 별고을 성주를 찾았다.
   
경북 성주군 성밖숲 왕버들 55형제의 맏형인 1번 왕버들. 왕버들이 만든 그늘 아래에 자전거를 타고 온 노신사가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연기념물 55형제와 맥문동

성주군의 한복판에 있는 성밖숲은 성주참외만큼이나 유명하다. 천연기념물 왕버들의 위세가 멀리서부터 느껴진다. 성밖숲을 끼고 흐르는 이천의 건너편에서부터 이 숲의 왕버들이 내뿜는 기세가 상당하다. 왕버들을 만나기 전 이천에 내려앉은 백로 세 마리가 손님을 반기듯 각각 독무를 펼치며 비상했다. 도착 전부터 흡족한 광경이다. 왕버들을 만나러 숲으로 들어갔다. 전부 천연기념물인 줄 알고 왔지만 밑동에 그루마다 고유번호가 새겨진 게 눈길을 끈다. 입구를 잘못 찾았는지 처음 만난 왕버들이 ‘막내’ 55-55번이다. 허리가 꺾였는지 휘었는지 분간하기 힘들지만 삼발이 모양이 지지대에 몸을 맡긴 왕버들의 연둣빛 이파리는 팔팔하고 싱싱한 기운을 듬뿍 내뿜고 있다. 한쪽 가지가 통째로 날아간 55-53번 왕버들은 애처롭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한쪽 가지의 이파리는 여느 왕버들 못지않게 짙다. 실제 왕버들의 줄기는 울퉁불퉁하면서 아주 못생겼다. 그래서 혹자는 왕버들의 매력이 친근함이라고 했던가. 매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줄기의 굴곡 사이로 이끼가 자리를 잡았는데, 옷처럼 줄기를 뒤덮은 형상도 예사롭지 않다. 30번대 왕버들에서는 이끼와 잡풀을 제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깔끔하게 닦은 성밖숲 둘레길. 55그루의 왕버들을 순서대로 찾아 걷는 재미가 있다.
300~500살이 된 왕버들 앞에서 실익도 없는 맏이와 막내를 운운하기가 민망했지만 숲길을 걷는 재미는 ‘55형제’를 순서대로 찾아가는 데 있었다. 번호판을 보면서 55-1, 이 숲의 대장을 찾아갔다. 왕버들 아래로 싱싱하다 못해 빳빳하게 서 있는 풀이 보인다. 뿌리에 달린 것이 보리와 비슷하고 겨울에도 죽지 않는다는 바로 맥문동(麥門冬)이다. 신록의 왕버들과 보랏빛의 맥문동은 성밖숲을 전국에 알리는 환상의 조합이다. 그런데 울창하고 싱싱한 왕버들 사이로 옷이 벗겨진 채 한쪽 가지를 잃은 힘 없는 왕버들도 제법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아래 맥문동의 기운은 힘이 넘치는 듯했다. 맥문동이 왕버들이 흡수할 영양분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객전도는 곤란하다. 이곳은 맥문동이 만개하는 7~8월이면 전국 제일의 보랏빛 색감을 자랑하는 출사지로 꼽히지만 왕버들이 없다면 맥문동도, 숲도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500살 왕버들과 이천

   
왕버들 아래 빳빳하게 선 맥문동.
55번부터 역순으로 3번 왕버들까지는 찾았는데 1, 2번이 보이지 않는다. 잔가지 정리를 하던 어르신에게 물었더니 “1, 2번이라 특별히 따로 있다”고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켰다. 숲에서는 떨어진, 그렇다고 먼 것은 아니었지만 숲에서 거리를 둔 곳에 1번 왕버들이 있었다. 탄성이 나올 만큼 멋졌다.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굵은 줄기에 가지마다 솜사탕처럼 잎이 만개해 ‘초록우산’을 펼친 형상. 어린이들이 사생대회 때 그리는 나무였다. 물감이 됐든 색연필이나 크레파스가 됐든 우리가 그렸던 그 나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왕버들 55형제는 모두 천연기념물 제403호다.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은 키가 평균 12.7m, 가슴 높이 둘레가 평균 3.11m에 달한다. 성밖숲은 왕버들 55그루만 있는 단순림이다. 지난해 성밖숲은 산림청이 주관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았다. 성밖숲 둘레길은 약 1㎞다. 숲 바로 옆 성주군보건소의 입간판을 보니 둘레길 한 바퀴를 보통 속도로 걸으면 8분이 걸리고 열량 62㎉가 소모된다고 한다.

성밖숲 옆으로는 숲의 장신구와 같은 이천(伊川)이 흐른다. 부산으로 치면 온천천과 같은 도심 하천인데, 낙동강의 지류다. 하천변을 따라 조깅 및 자전거 코스가 잘 정비돼 있다. 성밖숲 옆 하천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다. 멀찍이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돌다리에 오르니 하천의 유속이 상당히 빠르다. 위험할 수 있었지만 건너는 재미도 쏠쏠하다. 돌다리를 건너니 성밖숲의 측면 전경이 주변 건물과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을 보니 이곳이 성주군민 수백 명이 삭발하며 저항했던 사드 배치 반대 집회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숲과 왕버들의 자태에 넋을 놓았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윗동이 잘려나간 성밖숲의 왕버들은 가지를 뻗어 한쪽 팔로 무언가를 보듬는 형상이었다. 굴곡진 500년 역사를 목도했던 왕버들이 이번에도 성주와 군민을 보듬어 위로해주길 기원한다. 글·사진=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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