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행 당한 아픔 안고 살아가다
- 연쇄범죄 휘말린 교사 역할 맡아
-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슬프고 화나
-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미투운동
- 점점 나은 사회로 가고 있단 증거
- 이젠 밝은 캐릭터 도전해보고싶어

겉보기엔 가냘프지만 스크린 속에서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는 배우 이유영이 영화 ‘나를 기억해’(개봉 19일)에서 최근 사회 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 청소년 성범죄와 SNS상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정면 돌파한다.

	영화 ‘나를 기억해’에서 평범해 보이지만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고등학교 교사 서린 역을 맡은 이유영.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나를 기억해’는 의문의 연쇄 범죄에 휘말린 교사 서린(이유영)과 전직 형사 국철(김희원)이 사건의 실체와 정체불명의 범인인 마스터를 추적하는 영화다. 특히 이유영이 연기한 서린은 학창시절 또래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동영상이 유포돼 이름을 바꾸고 전학을 해야만 했던 아픔을 지닌 인물로, 교사가 된 후 마스터라는 인물에게 14년 전과 비슷한 피해를 당하게 된다.

비록 연기이지만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인물을 연기한 이유영은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이를 이겨내는 과정을 진심을 담아 연기했다. 특히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마치 배우 이유영이 단단해지는 것 같아 보기 좋다.

“‘나를 기억해’에서는 특히 책임감을 가지고 인물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싶었다”는 이유영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데뷔작인 ‘봄’에 이어 ‘간신’ ‘그놈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드라마 ‘터널’ 등에서 맡은 역할들은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번 ‘나를 기억해’의 서린 또한 선뜻 출연 결정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평범하지 않은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현실 공감형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힘든 역 말고 밝은 것과 일상적인 것을 연기하고 싶다(웃음).

-영화의 주제나 주인공 서린이 맞는 상황들을 보면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로 완성된 것을 보니까 더 슬프고 힘들더라. 반전 같은 마지막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관객들의 느낌은 ‘허무하다’ 혹은 ‘충격적이다’라는 감정으로 나뉠 것 같다. ‘누가 가해자지?’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기자 시사회 때 아쉬운 점이 많다고 했다.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는가?

	연쇄 범죄에 휘말린 교사 서린과 전직 형사 국철이 정체불명의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영화 ‘나를 기억해’.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전반적으로 내 연기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대사에서 어색한 부분이 느껴졌고, 감정표현에 있어서도 다른 감정이 맞지 않을까 하는 장면도 있었다.

-‘나를 기억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청소년 성폭력과 음란 동영상 유포 문제는 물론, 촉법소년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이에 대한 생각은?

▶촬영할 때는 지금처럼 이슈가 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사회적 이슈가 되더라. 미투운동도 마찬가지다. 저에게 ‘나를 기억해’는 이런 범죄나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나부터 노력하고 주위에 알리고 해서, 내가 낳는 자식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관심과 운동은 좋은 변화고, 점점 나은 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좋다.

-성범죄 피해자를 연기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점은 무엇인가?

▶성범죄 피해자가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았고 심정이 어떤지를 알기 위해 그에 관한 책을 읽어봤다.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 겉으로는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평생 남는 트라우마가 된다. 그런 서린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고, 그 이후에는 상상했다. 저 스스로 확신하고 연기하는 것이 중요했다.

-교사가 된 서린은 과거와 같은 성범죄를 당하자 처음에는 아파하다가 당당히 가해자에게 맞선다. 그 모습이 좋았다.

▶제가 서린과 같은 상황이라면 선뜻 맞서지 못했을 것 같다. 학창시절 성폭력을 당한 뒤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면서 나아지긴 했겠지만, 다시 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고, 누가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린은 강한 사람이고, 가해자를 잡기 위해 직접 맞선다.

-서린의 남자친구는 성폭력 사건 뉴스를 보면서 가해자를 욕하면서도 피해자 여성에 대해 ‘조심성이 없거나 행실 탓’이라는 말을 한다. 공분을 일으키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도 저도 열 받았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 잔인한 이야기이다. 너무 화가 났다. 영화에 그려지진 않지만 서린은 남자를 잘못 만났다고 느꼈을 것이고, 바로 헤어졌을 것이다.

-가해자인 마스터를 쫓기 시작한 서린은 반대로 성폭행 청소년들에게 쫓기기도 한다. 특히 노래방에 있던 그들이 서린이가 감시하는 것을 알고 쫓는 장면에서는 굉장히 많이 뛰어야 했다.

▶서린이 쫓기는 장면은 편집이 많이 된 것이다. 진짜 많이 달렸다. 키높이 운동화를 신고 뛰어서 발목을 삐끗하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편집이 많이 돼서 안타까웠다. 사실 체력이 좋다기보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래달리기, 매달리기를 잘 하는 편이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데뷔 5년차가 됐는데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앞으로도 배우 이유영보다는 제가 했던 역할들이 관객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 그것이 연기를 잘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