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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찾아서 <24> 남해 용문사

임진왜란 승병 근거지 … 왕실 위패 모신 호국사찰로 명성

  • 국제신문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18-04-25 18:50:2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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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귀 깔려있는 타 사찰과 달리
- 부패관리 밟고 있는 사천왕상
- 백성 곁에 있고자한 정신 담아
- 왜구에 희생 원혼 천도재 거행
- 힐링·휴식형 템플스테이 운영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호구산(虎丘山·해발 650m) 용문사(龍門寺)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장 도량 가운데 하나다. 지장 도량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교화해 극락세계로 이끌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을 모신 사찰이다. 그래서 용문사는 돌아가신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위로하는 천도재를 자주 갖는다. 바다에 나가 파도와 싸우거나 왜구의 노략질로 희생된 원혼들을 달래던 해안가 주민들의 간절함이 종교와 접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손수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시대 때 원효대사가 창건해 지금의 호구산 자락으로 옮겨진 용문사. 대웅전(정면)과 적묵당(오른쪽)이 천년고찰의 느낌이 들 정도로 고즈넉한 분위기다. 이완용 기자
■원효가 창건한 호국사찰

용문사는 신라 문무왕 3년(서기 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금산 보광사를 전신으로 한다. 원효대사가 금산에 첨성각을 건립하고 선교의 문을 열었다가 조선 현종(1660년) 때 백월당 학섬대사가 현재의 터로 절을 옮겼다고 한다. 스님들은 절을 옮겨 첨성각과 탐진당, 적묵당 등을 세웠다가 현종 7년(1666년)에 비로소 대웅전을 짓고 절의 이름도 용문사로 불렀다. 산 아래에 용연(龍淵)이 있어 지은 이름이다. 숙종 34년(1708년)에는 부속 암자인 염불암이 중창되고 백련암도 신축됐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호국사찰로도 이름이 높다. 임진왜란 때 승병 활동의 근거지여서 여러 차례 불에 타기도 했으나 숙종(1675~1720) 때 수국사(守國寺)로 지정하고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해 위패를 모셨다. 이때 왕실에서는 연옥등과 촛대, 번(幡·궁중에서 사용하던 매듭의 일종), 수국사금패(守國寺禁牌) 등을 하사했다. 그러나 연옥등과 촛대 등은 일본 강점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번과 수국사금패만 보존돼 있다. 왜란 때 사용했던 삼혈포와 승병· 의병들의 끼니를 담았던 대형 목조 구시통은 남아 있다.
   
신라시대 때 원효대사가 창건해 지금의 호구산 자락으로 옮겨진 용문사 전경.
■권력에 초연했던 용문사 정신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의 호구산은 계곡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깊은 계곡과 울창한 원시림은 한여름에도 서늘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산허리쯤에 자리한 용문사는 일주문에서 사천왕상까지 200m가 여름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던 중생이 절에 들어오면서 숨을 고르고, 옷깃을 여미며, 부처님을 만날 준비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전각이 천왕각이다. 용문사 관문인 이 건물은 조선 숙종 28년(1702년)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잡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사천왕상은 동쪽의 지국천왕과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이 비파와 칼, 용, 창을 들고 가람을 수호하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나 다른 사찰의 사천왕은 마귀를 밟고 있지만, 용문사의 사천왕은 부패한 관리나 부정한 양반을 밟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백성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천왕각에서 돌다리를 지나면 정문인 봉서루다. 대웅전과 마주 보는 형태의 이 건물은 전면 7칸에 측면 4칸이다. 대웅전(경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은 팔작지붕의 목조 와가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법당 건축양식인 대웅전은 겹처마에 덧댄 서까래가 길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지붕이 활처럼 휘어져 보인다. 네 귀퉁이는 추녀를 받치는 기둥인 활주가 있고 처마 아래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머리가 상서로운 기운을 더한다.

대웅전 우측의 명부전(문화재자료 제151호)은 원효대사가 직접 조성하고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영산전과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신 칠성각, 보물 1446호인 괘불탱화 등이 있다.

용문사 뒤쪽 산기슭에는 잘 조성된 차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 남해 바다도 보인다. 차밭 아래에는 치자·비자·유자 등 남해를 대표하는 나무와 구절초·도라지 등 20여 종의 화초가 심어진 자생식물단지도 있다.

■남해 유일 템플스테이

   
승병과 의병에게 줄 밥을 퍼 담았다는 나무로 만든 구시.
용문사에는 염불암과 백련암 두 말사가 있다. 염불암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용성스님과 조계종 종정 석우 스님, 혜암 스님이 정진했고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과 청화 스님이 수행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지낸 혜암 스님 문화진흥회와 문도회가 ‘혜암 큰스님 수행처 순례단 출범식 및 기념 법회’를 봉행했다.

용문사는 템플스테이도 활성화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선열당은 명상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관이다. 남해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템플스테이는 힐링명상 (1박 2일 7만 원)과 휴식형 템플스테이(1박 2일 4만 원)로 나뉘는데, 긍정명상·치유명상·108배 등의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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