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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유혹에 얼굴 붉힌 매화 꽃망울 톡…톡…톡…

탐매를 빙자한 산청 여행

  • 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  |   입력 : 2018-03-07 19:15:1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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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난 매화 원정매·정당매·남명매
- 유달리 혹독했던 겨울 추위 탓에
- 예년보다 개화 일주일 이상 늦어져

- 흐드러지게 활짝 핀 매화 꽃 대신
- 가지가 인상적인 450살 회화나무
- 소박한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 사계절 풍광 아름다운 산천재 등
- 다른 산천 명소로 아쉬운 마음 달래

봄을 알리는 꽃을 하나만 고를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하나를 꼽는다면 매화가 우선 떠오를 것이다. 꽃의 크기나 색이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은 게 매화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의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앞에 있는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 탓에 예년보다 늦기는 하지만 어김없이 매화는 꽃을 피운다.
매화라면 흔히 경남 양산시 원동이나 전남 광양시 다압의 매화 축제가 잘 알려졌다. 이처럼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으로 봄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한두 그루 매화나무만으로도 매화의 아름다움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양산 통도사에 활짝 핀 매화 소식을 듣고 이맘때면 개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지난 4일 산청 삼매를 찾았다. 예년보다 혹독했던 겨울 추위 탓인지 이곳의 매화는 아직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봄바람을 불러온다는 꽃은 피지 않았지만 나무 가득 맺힌 꽃망울만으로도 봄을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오는 주말부터는 꽃망울을 활짝 터트린 산청 삼매를 볼 수 있을 듯하다.

■원정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회화나무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IC에서 내려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 방향으로 접어들면 원정매가 있는 남사마을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돌담길이 잘 알려져 남사예담촌으로 불리는 이 마을은 유래가 오래된 만큼 노거수들이 눈길을 끈다.

산청의 이름난 매화로 남명매, 정당매와 함께 산청삼매로 꼽히는 게 하씨고가의 원정매다. 사직공파 하즙의 시호를 따 원정매란 이름이 붙은 홍매화 원정매는 심은 지 670년을 넘겼는데 2007년에 고사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서 있는 시커먼 고사목 주변에 후계목이 자라나 있다. 꽃망울은 맺혀 있지만 주인장의 말대로라면 한두 주 지나야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예년보다 개화 시기가 한참이나 늦어진 듯하단다.

보물 제 72, 73호인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앞쪽이 동탑이다.
20번 국도에 인접한 남사마을의 고가를 찾아 들어가려면 여러 차례 들어갔다 나오기를 거듭해야 한다.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고가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주차장 서쪽 이씨고가의 회화나무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골목 초입의 수령 300년을 넘긴 부부 회화나무뿐만 아니라 대문 안의 수령 450년 회화나무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방문자센터 뒤쪽의 최씨고가에도 수령 400년 매화나무가 고사한 뒤 심었다는 수령 150년의 후계목이 마당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단속사지 석탑에 정당매는 뒷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남사마을의 1920년에 지은 사양정사.
원정매에 이어 정당매를 보러 간다. 정당매는 이곳에서 공부했던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강회백의 벼슬에서 이름을 따왔다. 남사마을에서 청계 방향으로 좁은 도로를 돌고 돌아 15분 정도 가면 단속사지 안내판이 서 있고 바로 옆에 보물 제72호, 73호인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은 가늠하기조차 어렵겠지만 예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단속사 경내였으리라고 본다. 남쪽으로 100m쯤 떨어진 소나무 숲 앞에는 단속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남사마을 이씨고가로 들어가는 골목의 부부 회화나무.
마을 어귀의 보물 석탑은 너무 크지 않아 위압적이지도 않고 너무 유명하지 않아 번잡스럽지도 않다. 다만 사방을 둘러싼 전깃줄이 어지럽다. 경계를 따라서 오고 가며 석탑을 바라보다가 문득 절터 옆 때 이르게 꽃망울을 터트린 한 그루 매화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로에서 절터로 올라서는 입구에는 작은 시비가 있다. 단속사지에서 멀지 않은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에서 기거하던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을 찾은 사명당에게 준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정당매 푸른 열매 맺었을 때’로 끝나는 시를 새겨두었다. 사실 남명 선생은 강회백의 처사를 마땅찮아 했다. 그가 정당매를 두고 지은 또 다른 시는 ‘어제도 꽃피고 오늘도 꽃을 피웠구나’로 끝을 맺어 고려와 조선에 걸쳐 벼슬살이한 강회백의 처신을 꼬집었다. 그런데 이날 정작 정당매의 자취는 보지를 못 했다. 석탑과 그 앞에 핀 한두 개 매화꽃에 빠져 애초의 목적을 잊고 차를 돌려버린 것이다. 정당매와 정당비각은 석탑을 돌아 시멘트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올라가면 금방 볼 수 있다. 이곳도 정당매는 고사하고 후계목이 있다.

■산천재와 따로 또 같이 보는 남명매

남명 조식 선생이 지은 산천재와 그가 심은 남명매.
애초 원정매와 정당매가 꽃을 피우지 않았더라도 남명매만큼은 이른 꽃망울을 터트렸으리라 기대했지만 지난겨울의 추위가 유달리 매서웠나 보다. 덕천강을 바라보는 양지바른 곳이건만 남명매도 꽃망울만 맺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에는 2월이 가기 전 하얀 꽃으로 산천재 앞마당을 밝혔는데 올봄에는 지난해보다 일주일 이상 개화가 늦어지는 듯하다. 남명매는 피지 않았지만 산천재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계절을 탓하지 않는다. 정자 앞으로는 오랜 가뭄으로 수량이 줄었지만 그래도 경쾌한 소리를 내며 덕천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구름을 머리에 인 구곡산이 그 너머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 산천재 들어가는 길옆의 산수유가 먼저 노란색으로 변신하고 있다. 도로 건너 남명기념관에도 매화나무가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기왕 산천재가 있는 덕산까지 왔다면 내원사도 찾아가 보자. 원리삼거리에서 대원사 방향으로 가다가 삼장면사무소 가기 전 삼장천을 따라 올라가면 내원사로 들어선다.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내원사에는 국보인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삼층석탑이 있다.


# 산청 단성면 맛집

- 구경 전엔 맑은 추어탕 한 그릇, 돌아올 땐 시원한 수제 맥주 한잔

비록 제대로 핀 매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꽃놀이도 식후경이다. 산청 삼매를 찾는 길의 출발점이 되는 산청군 단성면 소재지 농협 앞에 있는 목화추어탕(사진)은 맑게 끓여내는 추어탕과 정갈한 반찬으로 유명한 곳이다. 문익점이 처음 목화를 재배했던 목면시배유지가 있는 곳이라 상호에 목화가 들어가 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면 목화시배유지 인근의 산청맥주도 들러볼 만하다. 문을 연 지 오래되지 않은 이곳은 수제맥주를 생산, 판매하는 곳으로 제조장과 매장이 붙어 있다. 매장에서는 산청맥주에서 만든 다섯 종류의 맥주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운전하는 이에게는 미안하겠지만 일행이 여럿이라면 찾을 만하다. 캔에 넣어 테이크아웃으로도 판매한다.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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