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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를 찾아서] 그 놈의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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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2-14 18:53:49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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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박24일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직무교육이 서울에서 계속 이어졌다. 누이 집이 있던 석수역에서 서울시청역까지 출퇴근했던 새파란 사회초년생, 바로 나였다. 도시철도의 넓은 폭이며, 미어터지는 출퇴근 시간의 인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월요일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열차 도착시각을 스마트하게 확인할 수 없던 시절, 내가 타야 할 열차가 저 멀리 승강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각을 면하려면 달려야 했다. 개찰구를 허겁지겁 통과하여 승강장으로 내려가자니, 전철을 내린 승객들이 벌써 계단을 오른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에 맨 뒤쪽 칸으로 몸을 던져 넣을 수 있었다. 휴. 그렇게 탔다. 그 칸에.

출발 시의 가속 구간이 끝나, 편안하게 달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뭐지? 이 느낌은?’ 실내는 덜 붐볐고, 몇몇 여성은 좌석에 앉아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못다 한 화장을 손보고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화장품 향기. 결정적으로, 그 큰 객차 안에 남자라고는 나와 저만치 서서 얼굴과 귓가가 이미 빨갛게 된 홍당무, 단둘뿐이었다. 뉴스에서 얼핏 들었던 낱말. 그래, 난생처음 여성 전용칸에 탄 것이었다. 서울에서 객차 양쪽 끝 칸을 여성 전용칸으로 지정하여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 시절이었다. ‘다음 역에서 내려 옆 칸으로 가야지’. 그러나, 구로역에서 밀려들어 오는 여성들에 밀려 실패했고, 설상가상으로 다음 역인 신도림역에서는 더욱 안쪽으로 떠밀려 아예 옴짝달싹 못하게 갇혀버렸다. 아, 이런! 여성들로부터 겹겹으로 포위된 채, 레이저빔 같은 비난 시선을 따갑게 받고 있었다. 뒤이어 일어난 작은 사건은 나 혼자만 알고 있던 일화에 불과하나,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가방을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을 때조차, 다음 순간 실행에 옮길 것이 무엇인지 나도 몰랐다. 그리고는 신입사원의 왼쪽 양복 깃에 달려 있던 회사 배지를 눈치껏 떼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욕을 먹어도, 회사까지 욕되게 할 수 없었던 알량한 신입사원의 무언의 절규. 그런데 아뿔싸, 전철이 덜컹! 콩나물시루 같던 실내 바닥으로 배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도 같이 배지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 이런! 사장 면담이 있어 배지 꼭 달고 오라고 했는데.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된 부산 촌놈이 서울 도시철도를 타고 가고 있었다.
지금 부산 도시철도에도 여성 전용칸이 있다. 과거처럼 엄격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아니, 내가 뻔뻔해졌다. 그러나 아주 가끔, 과연 무엇이 그때 나로 하여금 배지를 떼어내도록 이끌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지키려는 소중한 가치, 바쁜 일상에 우선순위를 늘 내어주고 있나? 그러나 안심하자. 생각은 잊었으되, 본질이 스며든 몸이 그때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이번 설은 마음마저 소중함으로 가득 채우자.

박재범 부산공정무역연구회 고문·대동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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