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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교린 조선통신사가 제 첫 장편소설도 낳았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주역 강남주 씨, 소설 ‘유마도’ 펴내

  • 국제신문
  • 신귀영 기자 kyshin@kookje.co.kr
  •  |  입력 : 2017-11-15 18:45:0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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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호넨지 보관 ‘유마도’ 파헤쳐
- 화가 변박 사행길 되살린 작품
- 4년 간의 자료조사 거쳐 완성

- 허구와 사실 넘나드는 액자식
- “그림 보고싶어 잠 못 이루던
- 소설 속 부산의 학자는 나”
- ‘유하마도’ 제목 오류도 확인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은 조선통신사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오늘에 되살리고 관련 연구 활성화를 진두지휘해 온, 거칠게 말해 이 분야의 ‘대부’와 같은 학자다. “중요한 건 알지만 그게 되겠느냐”는 세간의 회의를 불식하며,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이 마침내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자 그 명성은 더 높아졌다. 강남주라는 이름은 조선통신사를 언급할 때마다 부연될 영구 기록이 된 것이다.

   
장편소설 ‘유마도’를 펴낸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 그가 연구해 온 조선통신사에 관한 모든 학문적 업적이 소설의 배경지식으로 녹아 있다. 국제신문 DB
그가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조선 시대 화가 변박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분야 권위자의 ‘학술적 업적’ 같은 느낌이 들어 문학적 신비감이 덜했던 게 사실이다. 소설이기보다는 건조한 기록물에 가까울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첫 장을 펼친 후, 마지막까지 내닫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30분. 독특하고 알찬,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로서 힘을 지닌 한 권의 장편소설을 앉은 자리에서 독파했다. 조선통신사와 임란 전후 역사에 관한 크고 작은 지식이 머릿속에 이야기 형태로 저장돼 개인적으로는 뭔가 성취한 기분도 드는 독서였다. 책에 관해 더 많은 것이 궁금해져 작가에게 만남을 청했다.

-왜 변박입니까. 애초에 조선통신사 얘기를 하려고 적당한 인물을 고른 건가요?

▶아닙니다. 변박이 내게 견딜 수 없는 궁금증을 던지지 않았다면, 소설도 나오지 않았겠죠. 상민을 겨우 면한 동래부 무인 변박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렸다 해도 정식 화원의 자격으로 통신사 일원이 될 순 없었겠죠. 그의 탁월한 재주를 눈여겨본 통신사 수장 조엄(1719~1777)이 그를 배 모는 선장으로라도 따라나서게 한 것입니다. 재능이 아까운 사람입니다. 1763~64년 통신사 사절단에 관한 기록은 세세하게 남아 있어요. 변박이 어디서 글씨를 썼으며, 언제 그림을 그려 누구에게 줬나 하는 것까지도 기록돼 있죠. 그런데 그 기록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유마도’라는 그림이 통신사가 지나가지도 않은 일본 시코쿠 섬의 호넨지라는 절에서 발견된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라는 의문에서 소설이 시작된 거죠.

-소설은 액자식 구성입니다. 유마도를 찾아 나서는 부산의 학자 ‘김’은 작가 자신입니까.

▶나 맞아요. 하하. 유마도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그 그림을 보고싶어서 잠 못 이룬 것 하며, 그림을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호넨지의 주지를 졸라댄 것 하며, 그림을 보려고 일본을 옆 동네 가듯 건너간 것도 다 접니다.

   
조선시대 화가 변박의 그림 ‘유마도’. 일본 시코쿠에 있는 절 호넨지가 소장하고 있다. 산지니 제공
-변박의 그림 제목은 ‘유하마도(柳下馬圖)’라고 알려졌었죠. 김이라는 학자가 일본에 가서 확인한 진짜 이름은 유마도(柳馬圖)였다고 나오는데 이건 실제입니까.

▶그럼요. 내가 직접, 처음으로 발견했어요. 그림이 보관돼 있던 통의 뚜껑에 선명하게 적혀 있었죠. 조선통신사 연구자든 누구든 한 번이라도 제대로 확인했다면 그런 오류는 없었겠죠. 어쨌든 소설이 학술 연구를 바꾸게 한 셈입니다. 문학이 때에 따라 현실을 수정하듯이.

-조선통신사 사행선을 건조하는 과정, 행렬에 관한 묘사, 부산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통신사의 행적 등 모든 것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고 세밀합니다. 무엇이 허구이고 실제입니까.
▶팩트는 다 옛 기록에 있어요. 조선 시대 배 건조술에 관한 기록도 찾아내 따로 공부했고, 조선통신사의 행적에 관한 자세한 기록도 ‘해행총재’ 등 문헌에 다 있어요. 문제는 일일이 해석하고 수집해서 자료로 정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정확하게 조사해서 써먹지 않으면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되니까 조심스러웠죠.

-조사에 걸린 시간은?

▶4년. A4 용지 640매 분량의 조사 자료를 한꺼번에 날린 적이 있어요. 젊은 사람이라면 안 그럴 텐데, 컴퓨터 다루는 게 미숙해서.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 했습니다. 정리해뒀으니 됐다 하며 팽개쳐둔 자료를 다시 뒤졌어요. 재추적해야 했던 자료도 많았고. 그래서 더 오래 걸렸죠.

▶첫번째 장편소설인 것으로 압니다.

-소설 쓰기를 시도한 적은 몇 번 있어요. 그때 새삼스럽게 느낀 건데, 한국에서는 신춘문예든 문예지든 이름을 올려 소설가라는 명찰을 못 붙이면 소설가가 될 수 없어요. 의아한 등단 문화인데…. ‘뿔따구’ 났지만 살기 바빠 시들해졌다가 정년퇴직 후 75세 구로다 나스코라는 일본 여성 소설가가 아쿠타카와 상 받는 걸 봤어요. 중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밥 먹을 정도만 벌며 글을 썼다는데, 시간도 많은 나는 뭔가 싶어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가 명찰 달아 소설도 쓰고 시도 썼어요.

-조선통신사 수장인 조엄의 고뇌가 기억에 남습니다. ‘왜인들은 환영 일색이었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환호작약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것이겠는가. 그래도 이 길은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길이다’라고. 이것이 당시 조선통신사의 정세적 의미였을까요.

▶일단은 소설의 캐릭터죠. 책임이 막중한 조엄은 그런 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조선통신사의 의미라…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참혹한 전쟁 후 정권을 잡았지만, 여기서 전쟁이 더해지면 민심을 수습할 수도, 정권을 지탱할 수도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겁니다. 조선 역시 청을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일본과 전쟁을 할 순 없었겠죠.

   
통신사 교류를 통해 두 나라가 평화를 도모하고 ‘윈윈’한 것으로 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인이 통신사를 환영하는 수위는 정말 대단했어요. 그 행렬을 보려고 새벽부터 자리다툼을 벌일 정도였으니까. 전쟁이 나서 사람 죽는 게 일상이었던 일본에서 그 행렬은 하나의 축제이기도 했던 거죠.

인터뷰 직전 강 전 총장은 소설 ‘유마도’의 2쇄를 찍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책이 발간된 지 겨우 2주 만이다. 지역 출판사가 펴낸 지역의 소설로서는 상당히 귀한 일이다.

신귀영 기자 kysh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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