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속·계곡 촬영 신 많아 고생
- 실제 칼싸움·진짜 돌 소품 사용
- 여진구와 호흡 잘 맞아 편안

- '관상' 이후 4년 만에 사극 도전
- 임란 당시 조정 분조 이끈 광해
- 남의 군역 대신 지는 대립군 얘기

나이가 들수록 연기의 깊이를 더해가는 배우 이정재가 '관상' 이후 4년 만에 정통 사극 '대립군'(31일 개봉 )에 출연해 또 한 번 존재감을 발휘했다.

	배우 이정재는 영화 '대립군'에서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는 대립군의 수장 토우 역을 맡았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대립군'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파천(播遷)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광해(여진구)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의 수장 토우(이정재)의 이야기를 다룬 팩션 사극이다.

'관상'에서 왕의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 수양대군을 연기했던 이정재는 '대립군'에서 백성 중 가장 낮은 신분인 대립군의 수장 토우 역을 맡았다. 토우는 대립군 동료들을 위해 광해와 분조 일행을 지키며 험난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 여정에서 광해는 비로소 백성을 진정 사랑하는 왕으로 거듭나고, 토우는 역사를 이끄는 영웅은 이름 없는 민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엘리트나 상류층, 왕족을 맡았던 이전 영화와 달리 가장 낮은 신분을 연기하면서 더욱 뜨거운 눈빛과 진정성으로 찾아온 이정재에게 영화 '대립군'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 출연한 영화를 보면 '관상' '암살' '인천상륙작전' '대립군'까지 주로 시대극이었다. 실제 역사를 다룬 시대극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시대극은 역사 속의 실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을 근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다. 따라서 그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지금 시대의 이야기를 과거 역사적 사건을 통해 반추해서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대립군'을 통해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약하고 어린 광해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는 어떤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와 함께 '나라는 바뀌어도 우리(신분)는 안 바뀐다'라고 할 정도로 목숨을 지키고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던 토우가 변화하는 광해를 보고 '저런 사람이 우리의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희망을 품는 모습도 영화가 주는 메시지의 한 축이다.

	'대립군'은 임진왜란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여진구)와 생존을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대립군과 분조 일행이 왜적을 피해 다니다 보니 산속 장면이 많다. 실제로 전국의 산을 누비며 촬영했다고 들었다.

▶영화 속에서 우리 일행이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가 모두 달라야 했다. 그래서 실제 산꼭대기와 깊은 계곡을 찾아다니며 찍었다. 스태프들은 장비를 매고 이동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산속 촬영을 마치면 금세 해가 지기 때문에 배우와 스태프 모두 다리를 삐는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전투 신에서 투박하지만 실제 같은 칼싸움을 보여준다.

▶외국영화든 한국영화든 칼싸움 장면에서 화려함을 보여주기 위해 칼끼리 부딪치는 액션을 주로 연출한다. 그런데 실제로 장검으로 싸울 때는 칼끼리 부딪친 후 몸으로 힘겨루기하다가 바로 칼을 비틀어서 찌르거나 다른 짧은 칼을 꺼내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가까이 붙어서 칼싸움을 하니까 더 잔인해 보였다.

-산성 장면에서 성벽을 오르는 왜적에게 던진 돌이 진짜 돌이었다고 들었다.

▶맞다. 일부 진짜 돌이 있었다. 그런데 맞는 사람은 컴퓨터그래픽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돌은 무게감이나 속도감이 안 나서 진짜 돌을 썼다. 사람을 때려야 하는 돌은 물론 플라스틱으로 만든 돌이었다.

-광해 역을 맡은 여진구 씨와 대립군의 명사수 곡수 역의 김무열 씨의 연기가 좋았다. 두 배우와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어떤 느낌이었나?

▶여진구는 나이가 어리지만 이전부터 좋은 작품, 좋은 감독님, 좋은 배우들과 작업해서 후배라기보다 동료 같았다. 김무열도 에너지가 넘치는 아주 뛰어난 배우다.

-'대립군'은 나라를 운영하는 진정한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선 직후여서 영화가 지닌 메시지가 잘 맞는 것 같다.

▶지난해 촬영 중에 국정논단 사건이 터졌고, 촬영 말기에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장미대선을 한다고 했다. 당시 '그럼 우리 영화는 언제 개봉해야 하나'라면서 회의를 많이 했다. 과연 지금 이런 정치·사회적 시류에서 우리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정우성 씨와 매니지먼트 회사 '아티스트컴퍼니' 를 세운 지 1년이 됐다. 그간 하정우 염정아 고아라 김의성 남지현 배성우 이솜 등 거물급 배우들이 소속되면서 배우들이 좋아하는 회사가 된 느낌이다.

▶소속 배우를 일부러 늘리려고 함께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락이 온 것이다. 회사를 세운 목적은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 고민하는 것을 꺼내 현명한 해답을 찾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연기를 해왔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은?

▶생활 연기를 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촬영 준비 중인 최동훈 감독님의 '도청'에서 생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자유롭게 말랑말랑한 연기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도청'이 기대된다.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