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만 좇는 현대인이라면
-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 한 인물 심리 따라가면서 연기
- 나름의 카타르시스에 푹 빠져"

영화 '내부자들' '매그니피센트 7' '마스터' 등에 출연하며 국내는 물론 할리우드까지 행보를 넓힌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이병헌이 어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싱글라이더'(22일 개봉)로 관객과 마주한다.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강재훈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여준 이병헌.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싱글라이더'는 증권회사 지점장이자 기러기 아빠인 강재훈(이병헌)이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호주에 있는 가족을 찾아갔으나 다른 삶을 준비하는 아내를 보고 가족 주위를 맴도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그동안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에서 나락에 떨어진 강재훈의 모습을 섬세한 감정 연기로 보여준다. 특히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된 강재훈의 상실감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담담하게 표현하다 마지막에 끝내 울음을 머금는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싱글라이더'는 영화 시작에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의 시를 자막으로 보여주는데, 이병헌의 연기를 통해 시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된다. 영화의 분위기가 아직 남아서일까? 우수에 젖은 듯한 모습의 이병헌을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싱글라이더'로 오랜만에 감성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는가?

▶한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연기하고, 관객이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싱글라이더' '번지점프를 하다', 그리고 장르가 다르긴 하나 '달콤한 인생'은 한 남자의 심리를 쫓아가는 작품들이었는데 연기할 때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고은 시인의 시가 지닌 정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를 보지 못하고 미래만 생각하면서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또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다.

-현재를 못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모두가 작고 큰 목표를 갖고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막상 미래 때문에 현재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고 산다는 것이다.

	영화 '싱글라이더'는 기러기 아빠 강재훈(이병헌)이 모든 것을 잃고 호주에 있는 가족을 찾아갔으나 다른 삶을 준비하는 아내(공효진)와 현지에 체류하는 여자(안소희)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강재훈은 아들이 'K'로 시작되는 단어에 쓴 노트를 몰래 보는 장면에서 자신의 이름 'KANG JAEHOON'을 마지막 단어로 쓴 것을 발견하고 울컥한다. 이를 보는 많은 아버지가 울컥할 것 같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들 또한 아빠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강재훈의 입장에서 가족 앞에 나서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도 생겼을 것 같다.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무척 세련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후반부에 큰 반전이 있다. 감독과 반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가?

▶반전이 큰 영화이지만 반전을 위한 영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반전 이전의 이야기가 반전만을 위한 장치로 활용되지 않았으면 했다.

-아내 역을 공효진 씨가, 호주에 체류 중인 여자 역을 안소희 씨가 맡았다. 두 배우와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느낌은 어땠는가?

▶이전부터 공효진 씨 연기를 좋아했다. 공효진 씨는 연습하듯이 힘을 다 빼고 일상의 연기를 섬세하게 한다. 감정의 강약 조절도 훌륭하게 하는 배우다. 안소희 씨는 연기에 대한 욕심이 정말 많고 의욕이 대단했다. 평상시에는 말도 없고 얼굴에 표정도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데, 촬영현장에서는 자기가 연기한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이번 영화에서 단벌 신사였다. 강재훈이 짐도 없이 무작정 호주로 떠났기 때문에 양복 차림으로 계속 등장했다.

▶실은 진한 청색 정장과 그것보다 밝은 청색 정장, 두 종류를 입고 촬영했다. 진한 청색 정장을 입고 밤 촬영을 하면 검은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밤 촬영 때는 밝은 청색 정장을 입어서 마치 한 벌처럼 보이게 했다.

-'싱글라이더'는 지난해 봄 호주에서 한 달 정도 촬영했다. 촬영시간이 짧아 아쉽지 않았나? 그리고 지난해는 해외 촬영이 유독 많았던 것 같다.

▶40일 정도 촬영했는데, 육체적으로 힘들었어도 연결성이 있어 감정을 유지하기에 좋았다. 그리고 해외 촬영이 힘들다. 솔직히 처음에 이 영화는 '쉬어가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미국의 뜨거운 사막에서 '매그니피센트 7'을 찍느라 체력이 완전히 고갈돼 '마스터' 촬영 전에 날씨 좋은 곳에서 체력을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빠듯한 일정 때문에 더 힘들었다. 이후 바로 '마스터' 촬영을 하러 필리핀에 갔다. 해외 촬영을 하면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너무 오래 해외에 있어 집에 가고 싶었다. 한창 재롱부릴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얼마 전 미국 유력 일간지인 USA 투데이에서 선정한 '할리우드에서 대접받아야 할 아시아 배우 11'에 꼽혔다. 알고 있는가?

▶미국에 사는 이모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다. '미국의 영화업계 사람들이 나를 알고 인정해주는구나' 싶었다. 기분 좋은 측면도 있지만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들었다.

-'싱글라이더'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깊이 있게 주변이나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 가끔은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살자고 다짐했다. 또 현재 느끼는 소소한 삶의 행복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고은 시인이 말했던 '꽃'을 발견하려고 한다. 한편 '싱글라이더'로 잃은 것이라면 한 달간 아이의 재롱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