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여성의전화는 지난해 미디어 모니터링으로 조사한 결과,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던 여성이 최소 185명에 달한다고 28일 밝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데이트 폭력은 연인간의 사랑 싸움 정도로 여겨졌다. 남성이 여성을 폭력으로 제약하는 행동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되레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며 용인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날마다 만나기를 요구하고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집이나 학교, 회사 앞에서 막무가내로 기다리는 것도 문제다. 이런 행위가 심해지면 스토킹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상대방이 나에게 가지는 깊은 애정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애정은 상대방을 편하게 해줌으로써 서로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지 한쪽에만 정서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만날 때마다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요구하는 사람도 데이트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을 때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둘만 있을 때는 험한 말을 하거나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더없이 다정하고 예의가 바르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데이트 폭력 예방의 일환으로 부산여성의전화는 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강좌를 다음 달 8, 10일 마련한다. 데이트 폭력뿐 아니라 사랑과 결혼 등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를 다룬다. 오는 8일 '성적 자기결정권,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이기적 섹스'라는 주제로 강의하는 은하선 작가에게 데이트 폭력의 유형 중 하나인 강압적 성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남성들이 여성의 '노'라는 의사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여전히 여성의 거부를 튕김 정도로만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열 번 찍어 안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아직도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한심하다"며 "여성들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대다수의 여성은 20대가 되면 준비되지 않은 섹스를 경험한다"며 "섹스를 나이가 차면 하는 행위로 몰아가는 사회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상대가 원하니까, 성적으로 개방적인 쿨한 여성이 되고 싶어서, 20대라면 경험해봐야 하니까 등의 자신의 욕구와 관계없이 외부적 요인 때문에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나이에도 성 경험이 없다면 매력없는 여성으로 보는 시선도 압박으로 작용한다. 은 작가는 "누구나 섹스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성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시간이나 기회가 적다"고 아쉬워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 남성과의 데이트에서도 내가 원할 때, 상대와 합의 하에 이뤄져야 연애이지 강압적이라면 폭력일 뿐이다. 이는 상담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이므로 신고해야 하는게 맞다. 부산여성의전화는 사이버 상담실(www.pwhl.or.kr)과 유선전화(051-817-4321)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0일에는 '관계의 미학 : 연애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가 동주대학교에서 강연한다.  최영지 기자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