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려가 쓴 첫 어류도감 '우해이어보'
- 배경은 지금의 마산합포구 일대

- 유배 3년 간 관찰한 어패류 등 72종
- 어촌의 일상과 함께 견문기 남겨
- 기이한 어류엔 한시 곁들여…총 39수

- 김려가 살던 민가 옆엔 진해현 관아
- 율티리 가면 詩 속 '고저암' 나와
- 여기서 감성돔 낚시 관찰 삼매경 빠져

사물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가치를 알기 어렵듯이 시 또한 마찬가지다. 시 아닌 다른 것과 비교하거나 한데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본지가 한시와 여행을 결합한 '한시 기행'을 하는 이유다. 그러면 시와 생물과의 만남은 어떨까? 그것도 어패류나 갑각류 같은 바다생물이라면? 생물은 시인의 입을 빌려 바다의 신비를 노래하고, 시는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음절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지 않을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 선두마을 포구. 김려는 유배 기간 매일 같이 바다에 나가 기이한 물고기들을 관찰했다. 그는 3년간의 견문기록을 책으로 묶어냈다.

지금으로부터 210여 년 전 조선의 남동쪽에 자리한 진해 앞바다를 무대로 이런 시도를 한 빼어난 시인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바다생물 조사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쓴 담정(藫庭) 김려(金鑪·1766~1822)다. 그는 진해 유배생활 3년간 보고 들은 바다생물의 생태와 그것을 잡고 거래하거나 요리해 먹는 어민들의 일상을 주옥같은 시와 실증적인 산문에 담았다.

담정의 시선에는 백성을 신분이 아닌 천부인권을 지닌 평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근대적 인간관이 스며 있다. 시와 생물,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조화롭게 소통하는 선구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담정의 시선을 좇아 우해이어보가 탄생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기행문을 두 차례 연재한다.

■기이한 물고기 탐닉

	진해현 관아의 동헌.

먼저 우해이어보의 뜻과 진해의 정확한 소재지부터 확인하자. 담정이 말하는 진해와 현재 진해의 위치가 달라 헷갈릴 수 있어서다. 진해의 옛 이름은 우산(牛山)이다. 담정은 우해이어보에 실은 39수의 시에 '우산잡곡'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를 근거로 우해이어보의 의미를 풀이하면 '우산 앞바다(우해)에 사는 기이한 물고기(이어)들의 족보'가 된다. 여기서 진해(우산)는 2010년 창원시에 통합된 진해구가 아니다. 원래 진해는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일대였다. 담정이 1801년 천주교도를 탄압한 신유박해(辛酉迫害)에 연루돼 귀양 온 곳이다. 진해구는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건설한 계획도시다.

우해이어보는 어떤 책일까? 책에는 어류 53종, 패류 11종, 갑각류 8종 등 모두 72종의 바다생물에 대한 견문기가 실려 있다. 종마다 기술 분량이 다 다르다. 그 잣대는 기이성이다. "매일 아침 짧은 대바구니와 낚싯대 하나를 가지고 바다로 나갔다. 가깝게는 몇 리, 멀리는 수십, 수백 리로 나가서 며칠 밤을 새우고 돌아왔다. 고기 잡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것으로 기쁨을 삼았다. 기이하고 괴상하며 놀라운 물고기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우해이어보 서문) 담정은 유배생활의 고달픔을 지칠 줄 모르는 학구열로 달랬던 듯하다.

	진동면 율티리 고저암. 김려는 여기서 행해진 감성돔 낚시에 관한 시를 썼다.

그는 기이성이 크다고 판단한 종들에는 많은 분량의 산문에다 시를 덧붙여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 산문은 생물에 대한 견문기인 만큼 사실적이다. 그러나 문체는 건조하지 않고 경쾌하다. 시는 단칼에 환부를 드러내듯이 대상의 특성을 포착하는 시선이 예리한 데다 메시지도 선명하다. 시와 산문은 호흡을 맞추듯 적절히 밀고 당기면서 화음을 이룬다. 둘 중에서 하나가 빠지면 대상에 대한 이해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유기적 긴밀도를 보여준다.

그 사례를 보자. '운무 걷힌 맑고 밝은 아침 바닷가(嵐鎖雲斂瀞潮暾·남쇄운렴정조돈)/느릿느릿 걸어 위태로운 수문가로 갔더니(嬾步欹危訪海亹·난보기위방해문)/벼락 치듯 해변에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驀地沙干流霹靂·맥지사간류벽력)/어부들이 자주복 두들겨 잡는 소리(漁兒撇破石河魨·어아별파석하돈)'. 자주복(석하돈) 항목의 시다. 자주복의 요란한 울음소리는 아직 덜 깬 담정의 잠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어부들의 근면성과 어촌의 활기찬 아침을 자주복 울음소리 하나로 낚았다.

이 시는 자주복의 생태를 설명하는 산문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자주복은 성질이 매우 사납고 표독하다. 처음에 잡혀 나오면 화가 나서 배가 부풀어오르고 늙은 개구리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낸다. 커다란 돌로 배를 꽉 누르면 이빨이 깨지고 눈알이 부서지지만, 부풀어오른 배는 줄어들지 않는다. 배가 최고로 부풀어 올랐을 때 돌덩이로 세게 때리면 땅이 무너지는 것 같은 벼락소리가 난다." 시 없이 산문만 있어도 허전하다. 둘은 이와 입술의 관계다.

추석 연휴 이틀 전인 지난 12일, 우해이어보의 현장을 찾아 나선 길에서 담정의 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여행은 진동면 진동리에 있는 진해현 관아와 객사터에서 시작했다. 지금의 관아는 담정이 유배에서 풀려난 1806년보다 26년 후인 1832년에 건립된 것이다. 현감이 업무를 보던 동헌과 군관청, 사령청 등 부속건물이 남아 있고,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객사는 1983년 화재로 소실돼 기단과 주춧돌만 볼 수 있었다. 선정을 펼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관아 앞에 세워진 16기의 역대 현감 공덕비들이 진해현의 역사를 증언했다.

■민초 향한 따뜻한 시선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의 일부분

관아는 해안과 가까웠다. 이격거리가 100m도 안 돼 보였다. "섬들과 가까이 살았고 대문이 바다와 닿아 있어, 뱃사람들이나 어부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담정은 해안에 바짝 붙여 지은 한 민가에 세 들어 살았다. 자신의 방을 '우조헌(雨篠軒)'이라 명명했다. 대문만 열면 검푸른 바다가 일렁거렸을 터이니, 학자이자 시인으로서 바다에 관한 시문을 쓰고 책을 엮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관아 다음 행선지를 관아 오른쪽에 위치한 해안인 고현리와 율티리로 잡았다. 율티리에 담정이 지은 시에 등장하는 장소가 있어서다.

구불구불 좁은 해안길을 따라 7㎞가량 가니 고현리 선두마을이 나왔다. 담정의 서문 글귀처럼 몇 채 안 되는 민가들이 바다를 코앞에 두고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포장한 포구에는 어부들이 모여 자주복을 두들겨 잡을 정도의 공간은 충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산 앞에 세워진 남근석이었다. 이날 날씨가 궂었던 탓일까. 어부들이 바다로 나갈 때마다 이곳에 들러 풍어를 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일었다. 선두마을에서 2㎞가량 더 들어간 해안에 있는 율티리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오지였다.

'푸른 단풍잎 붉어지고 이슬은 짙어가니(靑楓葉赤露華濃·청풍엽적로화농)/고저암 어귀에는 물결이 일렁이네(高翥巖頭水正春·고저암두수정춘)/지는 해 파도에 비추면 고기가 잘 물리지(斜日照波魚善食·사일조파어선식)/대나무 낚시 던져 감성돔 잡아보세(彩竿飛上 ·채간비상나감송)'. 고저암은 고현리와 인접한 율티리 가장자리에 있다. 높이가 20m 남짓한 낮은 바위인데, 해안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 바다의 고깃배들이 위치를 가늠하는 잣대로 삼았을 법하다. 가을은 감성돔(감송)의 계절이다. 요즘 조황 기사의 최대 관심사는 감성돔이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고기 잡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서문 글귀를 미루어, 담정은 가을날 저물녘에 고저암 앞바다에서 감성돔 관찰 삼매경에 빠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감성돔을 잡으면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내장은 버린 뒤 깨끗이 씻어 배를 가른다. 감성돔 200조각과 멥쌀 한 되로 한 밥, 소금 두 국자, 곱게 간 누룩과 엿기름 각 한 국자를 고르게 섞는다. 작은 항아리에 밥을 먼저 깐 뒤 감성돔 조각을 까는 방식으로 겹겹이 채워 넣고 대나무 잎으로 덮어 봉해 둔다. 잘 익기를 기다렸다가 꺼내 먹으면 생선 식혜 중에서 으뜸이다." 감성돔 항목의 산문에는 친절하게도 요리법까지 소개해 놓았다. 시문을 읽는 동안 어느새 입안에 흥건히 침이 고인다.

우해이어보의 시들은 내용상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로작업 현장의 표정, 어촌 풍경과 수산물 거래, 남도 여인들의 모습이다. 이런 진해의 속살을 시에 옮기는 담정의 시선은 따뜻하다. 평등 세상을 지향하는 휴머니즘이다. 담정은 진해 유배에 앞서 천주교도인 친구 강이천(姜彛天·1768∼1801)과 관련한 유언비어 사건에 휘말려 1797년 함경도 부령으로 귀양을 갔다. 신유박해로 사건이 확대되면서 배소가 진해로 옮겨진 것이다. 담정은 그 세월 동안 인간의 자유와 평등한 사회관계를 가로막는 봉건적 신분제의 폐단을 절감했다. 그는 비록 몸은 봉건의 족쇄에 묶여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봉건의 울타리를 넘어선 근대인이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여행에서 기약한다.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