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안 레스토랑 셰프 운영
- 여러 주류 갖춘 '무국적 술집'
- 혼자 차분히 즐기고 마시기 좋아

- 해물 얹은 도미 카르토치오
-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려
- 모로코식 삭슈카, 에일맥주 짝꿍
- 살 부드럽고 촉촉 닭봉 바비큐
- 매콤한 양념에 맥주와 환상궁합

"여름에는 옆 사람이 싫어진다"고 고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가뜩이나 비좁은 감옥에서 옆 사람의 체온은 더위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감옥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누구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을 기피한다.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할 수 있는 조용하고 시원한 술집이 없을까 퇴근길에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규모가 작을수록 더 좋다.

	도미 카르토치오는 담백하면서 고소해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 토마토와 양파를 뭉근히 끓여낸 모로코식 삭슈카는 홉 향이 강한 에일맥주와 찰떡궁합이다.

그런 술집을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공구상가 골목에서 발견했다. 손맛 좋기로 소문난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토'의 김상진 셰프가 다시 연 '행오버'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국적 술집'이란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는 술집이다. 소주 맥주 와인 등 거의 모든 주종을 갖추고 있다. 혼자 책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요리를 즐기려는 분이 오셨으면 한다."

그는 '혼밥'을 넘어 '혼술'족을 겨냥한다고 했다. 후미진 골목 안쪽에 자리잡은 만큼 한적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좋은 음식에 걸맞은 술을 곁들이는 술집이라는 자긍심도 읽힌다. 셰프가 하는 술집인 만큼 요리를 단순히 안주로 보지 말고 질과 양이 담보되는 제대로 된 요리로 봐 달라는 이야기다.

	김상진 셰프가 코라바인이라는 장치로 코르크를 빼지 않고 와인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치를 사용하면 병 속의 남은 와인도 산화가 거의 되지 않아 보관하기에도 좋다.

김 셰프는 "다양한 에일 맥주와 함께 병으로 마시기에는 가격대가 부담스러운 고가의 와인도 많이 구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코라바인이라는 장치로 와인의 맛을 유지하면서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다. 모든 와인은 코르크를 빼내야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치는 코르크를 빼내지 않고 와인을 따를 수 있게 한다. 긴 바늘이 달려 있어 이 바늘로 와인마개인 코르크에 구멍을 내 아르곤 가스를 주입한다. 그러면 가스를 주입한 만큼 와인을 따를 수 있다.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므로 산화도 거의 안 된다. 손님은 테이블 와인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와인들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고, 김 대표는 와인을 많이 팔 수 있으니 서로에게 이득이다.

그가 처음 내놓은 요리는 '도미 카르토치오'다. 생선을 여러 채소와 함께 유산지 안에 넣어 종이로 포장하듯 완전히 감싸 오븐에 익히는 요리다. 오븐에 굽지만 종이 속의 생선과 채소들이 가진 수분만으로 익어 찐 것처럼 촉촉한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식 표현을 쓰자면 '빠삐요트'다. 프랑스어로 빠삐요트는 사탕을 싸는 포장지란 말이다. 요리를 종이로 싼 모양이 이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도미 카르토치오는 맨 밑에 설익은 솥밥을 깐다. 그 위에 한치 새우 등 해물을 올린 뒤 팬에 살짝 구운 도미를 얹고 세이지 등 허브를 넣어 종이로 싼다. 해물 사이에 버터도 넣는다. 종이로 감싸서 다 굽고 난 뒤 종이를 찢으면 세이지 향이 확 다가온다. 세이지는 키친 허브라고 불릴 정도로 요리에 많이 쓰인다. 마치 이탈리아의 작은 식당에 들어선 느낌이다. "맨 아래 깔린 밥에 해물들의 육수와 버터가 다 녹아 있으니 도미를 숟가락으로 으깨서 밥과 함께 비벼 드시라." 그의 조언대로 잘 비벼 입에 넣자 진한 버터향과 고소함, 도미의 담백함, 짭쪼름한 해물의 간이 잘 밴 밥이 입 속에서 녹아들었다. 얇게 썬 레몬 향까지 더해져 호불호가 없을 만한 맛이 난다. 여기에 깔끔한 화이트와인 샤르도네로 입을 씻으면 미소가 절로 따오른다.

모로코식 삭슈카는 맥주와 함께 먹기 좋다. 토마토 양파 등을 넣고 뭉근하게 오래 끓인 스프 같아 바싹 구운 바게트에 얹어 먹어도 좋다. 수란과 페타 치즈가 올라가 있어 먹을 때는 다 같이 비벼서 떠먹으면 된다. 수란과 페타 치즈의 고소함이 시큼한 토마토와 잘 어울린다. 아랍권의 대표적인 향신료인 큐민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토마토 파스타 소스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다. 중간중간 새우도 씹히는 데다 할라피뇨 덕분에 알싸한 매운 맛이 나 맥주와 잘 어울린다. 요리 자체의 향도 강하다 보니 강한 향의 에일맥주가 잘 어울린다.

	태국 핫소스인 스리라차를 발라 4시간 동안 구운 닭봉 바베큐. 버터가 듬뿍 들어간 프랑스식 메쉬드 포테이토인 뽐 무슬린을 곁들이면 맥주 안주로 더할 나위 없다.

하이라이트는 스리라차 소스를 바른 닭봉 바비큐. 4시간 동안 사과나무 칩으로 향기를 더해 구워낸 닭봉에 매운 소스로 유명한 태국의 스리라차 소스를 발라 오븐에 한 번 더 구웠다. 진한 바비큐 향과 부드러운 속살, 매콤한 바깥쪽의 양념이 어우러져 맥주와 찰떡 궁합이다. 마요네즈에 스리라차 소스와 마늘, 레몬즙을 섞은 소스도 놓쳐선 안 된다. 닭봉에 찍어 먹으면 마요네즈의 부드러움에 속살이 더 촉촉하게 다가오고, 스리라차 소스의 매콤함이 가해져 입에 착 붙는다. 곁들여 나온 프랑스식 메쉬드 포테이토 '뽐 무슬린'도 독특하다. 감자를 삶아 곱게 으깨 버터를 섞은 게 메쉬드 포테이토다. 프랑스식은 여기에 버터를 훨씬 더 많이 넣고 프라이팬에서 볶으면서 수분을 날려 마치 흰 앙금 같은 되직함을 갖췄다. 화끈한 닭봉으로 불이 난 입을 진한 버터맛의 뽐 무슬린으로 달래면 된다. 여기에 맥주를 더하면 주당과 미식가 모두 만족시킬 만하다. (051)802-5868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