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일곱 살 첫째가 유치원에서 울면서 돌아온 적이 있다. 바지 오른쪽 무릎 부분이 찢어지고 피도 흐르고 있었다. 퇴근 후 아이에게 물어보니 친구와 축구를 하다가 시비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아마도 무방비 상태로 서 있다가 갑자기 넘어지는 바람에 제법 다친 것 같았다. 괜찮다며 다독거리긴 했지만, 그날 저녁 속이 상해 잠을 설쳤다. 아이들끼리 생활하다 보면 투닥거릴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그러니 무릎을 다친 건 사실 별 거 아니었다. 하지만 서럽게 운 거로 봐선 혹여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 걱정됐던 거다.

사실 세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큰애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서 잘 말하지 않는다. 요리조리 질문을 바꿔가며 던져봐도 '아, 몰라' 또는 '재밌었어'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큰 문제 없이 잘 생활하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네 살이 지나갈 때쯤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아이가 어린이집 생활을 슬그머니 털어놓았는데, 지난 1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자기보다 덩치가 큰 친구가 자꾸 몸으로 부딪쳐와 힘들었다는 거였다. 그러곤 "아, 드디어 엄마한테 말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제 겨우 네 살 된 아이가 이걸 참고 있었다니. 미안한 마음, 화나는 마음이 이리저리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때 이후부터 아이에게 유치원 생활을 좀 더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한 게 사실이다. 누구랑 놀았느냐, 놀잇감은 무엇을 가지고 놀았느냐, 마음 상한 것 없었느냐 등등. 나름 평화주의자인 아들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몸으로 부딪히는 것보다는 말이 앞서 또래 남자아이들과의 생활을 힘들어 했다. 누군가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면(물건을 달라거나 나눠 먹자는 등) 거절을 못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와 다퉜다. 그런데 아이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친구가 계속 화를 내서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단다. 아니, 잘못한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사과를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똑 부러지지 못한 아이 성격 때문에 몇 날 며칠 열불이 터졌다.

한동안 고민 끝에 아이를 상담센터에 데려가 보기로 했다.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그런 건 아닌지, 그래서 학교에 가면 더욱 힘들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이틀에 걸쳐 부모·아이 상담을 한 후 선생님께 결과를 들었다. 걱정돼서 센터까지 가긴 했지만, 진짜 그렇다고 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이 한마디 할 때마다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셨다. 아이는 너무나 잘 생활하고 있다는 거다. 처음에 힘들어한 건 맞지만 지난 1년 동안 나름대로 사회생활 방법을 터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사과를 한 에피소드를 꺼냈다. 누가 봐도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스스로 잘못했다고 여기고 사과를 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사과를 한 건 당시의 어색한 상황을 나름의 방법을 동원해 풀고 넘긴 것이니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아이는 1개 주고 1개 받아올 수 있는 기질이 아니니 똑같이 못 받아온다고 아이를 들볶지 말고 친구 사이에선 그래도 조금은 서로 주고받는 거라는 정도만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도 했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참 내가 얼마나 모자란 엄마였나. 아이는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던 것인데, 괜히 내가 못 미더워 캐묻고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몰아붙였던 거였다.

무릎이 깨진 다음 날. 솔직히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 다툰 아이와 놀기 싫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아이는 쿨하고 씩씩하게 유치원에 갔다. 그리고 그날 돌아와선 다툰 친구와 화해했다며 다시 축구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아이가 어른보다 낫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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