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TV를 봤다. 마침 육아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한 연예인의 여섯 살 된 딸이 시골 체험을 하러 갔다가 외국인 친구를 만나 어울리는 장면이 나왔다. 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또래 외국인과 어울리며 뛰어놀았다. 대화가 통했기 때문이었다. 화면에 비치는 아이들의 표정은 내내 해맑았지만, 나는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니, 불안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우리 애는 우짜노" 싶어서였다.

사실 일곱 살 큰애는 영어엔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알파벳도 가끔 헷갈린다. 너덧 살 때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생님은 입을 맞춘 듯 아이가 영어시간엔 어김없이 졸고 있다고 했다. 당시 기자는 모국어가 우선이라 생각했고, 굳이 저 나이에 하기 싫다는 거 할 필요 있겠나 싶어 앉아서 졸고 있다면 차라리 책상에 엎드려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올해 들어 '이제는 시켜야 하지 않을까' '늦은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중에 저 방송을 보게 된 거였다.

아이가 여섯 살을 넘어가면서부터 풀지 못한 숙제처럼 안고 있는 것이 바로 교육 문제다. 어릴 땐 공부보다 노는 게 우선인 것을 누가 모르랴.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 아이에게 맞춰서 하겠다는 다짐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누구는 무얼 배운다더라'는 말을 듣거나 학원 등에서 '지금 해도 늦다'는 상업성 짙은 멘트를 들으면 어지간한 뚝심이 아니고서야 마음 한쪽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안이하게 생각해서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이번에 작정하고 배울 만한 과목과 다닐 만한 학원을 물색해 보기로 했다. 예체능만 꼽아봤는데도 미술 피아노 태권도 축구 수영 종이접기 등 천지다. 학습 분야로 넘어가니 더하다. 국·영·수는 기본이고 가베나 블록 놀이, 로봇 제작, 과학 실험 등 종류가 상상초월이다. 과목만큼 교육기관도 엄청나게 많다. 동네에서 지나가다가 본 태권도 학원만 해도 대여섯 개는 족히 되는데,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는 또 무슨 수로 알아봐야 할지 머리가 아파졌다. 유치원생이 다닐 만한 학원이 이 정도인데 학년이 올라가면 아마 몇 배는 많아질 거다.

며칠 고민하다가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자녀로 둔 동네 아줌마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초등학교 가기 전엔 무엇보다 미술이 필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선 동네에서 인기 있는 미술 교습소를 수소문해 대기 명단에(지금 신청해도 10월은 돼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름을 올려뒀는데, 솔직히 잘한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더 큰 고민거리는 비용이다. 영어는 방문 수업을 하든 센터에서 수업을 받든 간에 한 달에 20만 원은 족히 투자해야 하고, 예체능 역시 과목당 10만 원은 기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아이 유치원·어린이집만 보내도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이 30만 원은 넘는데, 아무리 맞벌이라지만 이 비용은 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다른 지출을 줄이고 아이 학원에 투입하는 게 맞는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몇 날 며칠 퇴근 후 이러고 있는 기자를 본 친정엄마는 손자를 붙잡고 "느그 엄마 하는 거 보니 니 인자 윽수로 바쁘겠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한동안 폭풍 검색을 한 지금 사실 반쯤 자포자기 상태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과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 주변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다 달라 결정장애가 왔기 때문이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생각하니 벌써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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