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큰아이를 같은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둘 다 7세, 3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당연히 대화는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이들 이야기로 끝났다.
전업주부로, 동네 아줌마들과의 교류가 많은 친구는 워킹맘인 기자에겐 천군만마 같은 존재다. 동네 교육 관련 최고급 정보는 엄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 차량에 태워 보낸 후 10~20분 나누는 대화에는 알짜배기 정보가 가득하다. 하다못해 우리 아파트에 어떤 집이 매물로 나와 있는지, 이 집이 왜 이사를 하는지도 단 1분 만에 알 수 있다. 학원 어린이집 정보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자는 매일 아침 출근 준비와 청소에 쫓기다 보니 아예 참여를 못하거나 5분쯤 귀동냥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친구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하다.

큰애의 유치원 생활로 시작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이어졌다. 친구는 아이가 네 살이 되는 내년에 보낼 생각인데, 집 근처의 한 공립 어린이집이 좋다고 하여 거기에 대기신청을 해두었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기자는 그런 어린이집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인데 좋고 나쁘고는 물론이고 존재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다.

지난해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정보가 없어서 쩔쩔맨 적이 있다. 이사를 오고 나서 큰애 유치원만 찾아다니다 보니 어린이집 정보엔 까막눈이었다. 몇 날 며칠 인터넷 검색을 해 집 주변 어린이집 몇 곳을 골랐다. 그리고 임신육아종합포털사이트에서 평가인증 점수를 확인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95점 이상이라 변별력이 없었다. 각종 보육 관련 카페에서 어린이집 이용 후기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규모가 큰 곳이 아니라 수년 전에 몇 줄 올린 후기 정도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아줌마가 괜찮다고 추천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다.

보건복지부는 수년 전 어린이집 수준 향상 등을 위해 평가인증 제도를 만들어냈다. 쉽게 말해 보육 환경, 먹거리, 교육 커리큘럼, 교사 수준 등으로 구분해 어린이집 점수를 매기는 거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도입 직후부터 큰 우려와 반발을 낳았다. 교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가기간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를 작성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단다. 교사도 사람인데 이 기간만큼은 보육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객이 전도된 거다. 평가를 앞둔 어린이집에서는 사직하는 교사가 속출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평가 기준을 맞추고자 각종 무리수도 동원된다. 우리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중 한 곳은 평가기간 1주일 중 언제 평가 담당자가 들이닥칠지 몰라 날씨가 궂어도 매일 아이들을 바깥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다.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교구가 어린이집에 없어 다른 어린이집에서 빌려 오는 걸 봤다고 양심고백을 한 교사를 본 적도 있다. 개인의 비양심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도가 현장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결과에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대다수 어린이집이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받는 것도 그렇고, 반대로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좋다고 소문난 어린이집이 85점(기자가 찾아본 어린이집 중 최하점이었다)을 받은 것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실제로 지난해 아동 학대가 발생해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던 인천의 한 어린이집은 평가인증에서 95점에 달하는 고득점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더 큰 아이러니는 사실상 어린이집 수준을 평가한 계량화된 지표가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어린이집을 직접 찾아가더라도 시설, 위생 상태 정도나 확인할까 더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보내봤던 엄마들 입소문에 목을 매게 된다.

현실 적용 가능성을 떠나 지자체에 건의하고 싶은 게 있다. 직접 보내 본 엄마들이 해당 어린이집을 1년에 한 번 익명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달라는 거다. 너무 주관적이지 않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두 사람의 의견이라면 왜곡될 수도 있지만 수백 명의 의견이 누적된다면 그건 믿을 수 있는 정보가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평가인증 말고 참고할 만한 어린이집 평가 정보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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