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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칼럼] 허리 굽힌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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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6-03-23 18:45:48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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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아들을 둔 친구가 내게 화풀이를 쏟아냈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간 늦은 저녁. 학교의 급식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반찬을 좀 만들어 달라는 아들의 말에 지친 몸을 일깨워 새벽같이 일어나 끓이고 볶고 지지고 바쁜 출근시간에 꼬박 세 시간을 공들여 반찬을 만들었단다. 행여 아들 입맛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싶어 정성에 정성을 들여 만들기를 끝냈더니 등교하며 반찬을 살피던 아들. 한 가지를 빼놓고 반찬을 들고 나가며 하는 말. "이건 필요 없어! 걔가 안 좋아해." 아침잠 설쳐가며 새벽같이 일어나 기껏 만든 반찬은 아들 몫이 아니라 아들의 여자친구가 먹을 반찬이었던 셈.

"아니, 걔네 엄마는 뭐하구?" 볼멘소리로 항의하니 여자친구가 직접 요구한게 아니라 학교급식이 맛이 없다는 여자친구의 푸념에 아들이 알아서 제 엄마를 부려먹었다는 것인데, 유유히 반찬을 들고 나가는 아들을 보니 뒷통수를 한 대 패주고 싶더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킬킬 웃고 말았다. 아들에게 아직 여자친구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맥없이 웃고 있는 내게 그녀는 나중에 경험해 보라며 일침을 놓는다. 아들에게 생긴 여자친구를 인정하는 일이 기분 참 그저 그런 미묘한 경험이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부산역. 아들을 기다리다가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한 잔 하고 있는데 옆좌석에서 어색한 웃음이 오간다. 젊은 남자는 제 어머니께 처음으로 자신의 여자를 소개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자는 첫눈에도 발랄하다. 하고 싶은 말 다 쏟아내며 막힘이 없다. 오히려 앞에 앉은 나이 든 예비 시어머니는 처음 보는 아들의 여자 친구를 살피며 더욱 긴장한 표정이다. 나이 든 어머니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우리 아들 뭐가 맘에 들드노? 이 놈이 성질이 급해서 그렇지 뒤끝은 없다. 확 해버려도 금새 자기가 잘못한 걸 알고 사과할끼다. 우리 아들 이쁘게 봐줘라! 인생이 다 그런 기다. 대박 터지기 바라지 말고 지금처럼 참하게 만나야 한데이. 울 아들, 잘 좀 봐줘야 한데이!" 젊은 여자는 연신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만이다. 시어머니는 젊은 여자를 향해 애써 감정의 날을 눕히고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야채를 다듬고 고기를 썰며 반찬을 만들었을 내 친구와 아들의 여자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아들을 부탁하고 있는 나이 든 어머니의 모습이 겹치니 설핏 웃음이 난다. 시어머님과 처음으로 마주하던 날. 내주신 유자차 한 잔을 마시며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모른다. 한 모금이 나의 목줄기를 타고 기도로 넘어가는 순간, 꼴깍 하는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무안하고 계면쩍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랬었다. 나는.
부산역의 젊은 여자는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하다. 허리 굽힌 시어머니가 늘고 있는 요즘. 관계의 시선 처리. 참, 어렵다.

유정임 FM 90.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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