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항에서 출발한 페리를 타고 가며 바라본 사쿠라지마 화산. 바다 건너 직선거리로 4 ㎞ 떨어진 이 화산은 시내에서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1월 말 이상 한파와 폭설로 산이 하얗게 물들었다. 정상 부근 구름은 솜사탕처럼 내려앉았다.

- 가고시마 시내 대형수족관 관람 뒤
- 흑돼지 만찬에 고구마 소주 한 잔

- 2만6000살 활화산 사쿠라지마까지
- 바다 건너 4㎞, 페리로 15분이면 닿아
- 해안선 따라 화산지대 이색 풍광
- 곳곳에 여행객 위한 온천 족욕탕도

- 야쿠시마엔 수천 년 삼나무 원시림
- 이부스키 모래찜질 특별한 체험도

가고시마라고? 롯데 자이언츠 전지훈련 하는 곳 아냐? 지인들에게 가고시마를 아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변 대부분이 이랬다. 기자 본인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고작 일본의 남쪽 어디쯤 포근한 곳이라는 정도?

부산 사람에게 가고시마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다. 전훈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돼 있어 다른 키워드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뭐 볼 게 있겠나. 이런 생각으로 가고시마를 찾았던 게 사실.

아차차. 가고시마의 드넓고 푸른 자연을 본 순간 뇌리에 깊이 박혀 있던 오해들은 여지없이 산산조각난다. 기자의 짧은 지식과 무관심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감사할 일 아닌가. 가고시마의 진짜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됐으니.

열도의 아래쪽 규슈. 그중 최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 상당수 국내 여행객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베일 속 자연을 찾아 떠나보자.

■가고 싶다, 가고시마

인구 180만 명(가고시마 시 60만 명) 면적 9200㎢의 가고시마 현. 연평균 기온이 18.9도로 따뜻하고 비가 잦다. 연간 강수량이 3000㎜에 육박한다. 물론 온종일 비가 쏟아지는 건 아니다. 한번 흩뿌리면 금세 개고 또 구름이 몰려오는 식이다. 야쿠시마는 일 년 365일 중 300일이 비가 온다 하니 보통 변덕스러운 날씨가 아닌 듯싶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가고시마국제공항에 내린다. 그다음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고시마 시로 간다. 가장 번화가여서 묵을 곳을 찾기도, 여행 동선을 짜기도 쉽다. 인구 60만 명의 가고시마시는 여느 일본의 도시가 그렇듯 저층 건물이 많고 아담하다. 가로수는 온통 야자수다.

시내 곳곳엔 아직도 노면전차가 누빈다. 요금은 성인 160엔이다. 하루 한 번 달리는 관광용 노면전차를 이용한다면 자원봉사자의 가이드는 덤이다. 요금은 성인 340엔. 도심 명소 15곳을 순회하는 시티뷰 버스도 있는데 하루 600엔으로 몇 번이라도 갈아탈 수 있다.

자 이제 동선을 짜볼까.

가고시마 시로 왔으니 일단 시내부터 둘러보자. 북쪽 부두 인근에 '이오월드'라는 수족관이 있다. 꽤 크고 구성이 알차다. 입구에 들어서면 대형 고래상어와 가오리가 헤엄치는 1500t 규모의 대수조가 기다리고 있다. 걸어 이동하며 가고시마 연안에서 잡히는 어류부터 아마존 어류까지 다양한 수중생물을 섹션별로 관찰할 수 있다. 관람의 대미는 돌고래쇼다. 5마리 돌고래가 펼치는 깜찍한 점핑쇼에 어린이들이 넋을 놓는다. 가족동반 방문객이라면 '강추'하는 곳. 요금은 성인 1500엔, 어린이 750엔이다.

수족관 밖이 바로 해안가다. 바다 건너 저편 사쿠라지마 화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사쿠라지마는 일본에 몇 안되는 활화산. 가끔 분화구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운이 좋으면 밤하늘 화산 불꽃쇼도 본다.

눈이 즐거웠으니 이젠 입이 호강할 차례. 이 지역 최고의 별미는 흑돼지. 여기 가고시마가 일본 최대의 산지다. 그런 덕에 샤브샤브, 돈가스, 돈코츠 라멘 등 흑돼지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가 시중에 널렸다. 그중 으뜸이라면 샤부샤부. 돼지고기 잡내 걱정은 버려두시라. 얇게 저민 고기 한 점을 육수에 살짝 데친 후 입에 물면 어금니에 닿기도 전에 녹는다. 고소한 지방이 입속에 스며드는데 느끼하지가 않다. '샤부샤부=소고기'라는 편견이 금세 지워지리라.

■살아 움직이는 화산 사쿠라지마

사쿠라지마 여행자센터 인근에 위치한 용암해안공원 내 온천 족욕탕. 길이가 100m로 일본 최대이다.

가고시마 시를 둘러봤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천혜의 자연을 영접할 차례.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명소라면 가고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쿠라지마다. 연 방문객이 180만 명에 이른다. 가고시마 부두에서 직선거리로 4㎞.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면 15분이면 닿는다. 페리는 15분 간격으로 하루 24시간 뜬다. 성인요금 160엔. 사쿠라지마 화산은 2만6000년 전 첫 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최근의 분화는 1914년. 사쿠라지마는 원래 섬이었지만 이때 용암의 분출로 육지와 붙어버렸다. 지금도 연평균 900번, 하루 세 번꼴로 분화구 안에서 크든 작든 폭발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화산재만 날리는 수준이니까.

기자가 다녀간 뒤인 이달 5일엔 용암이 솟아오르는 대폭발이 있어 일본 전역이 잠시 시끄럽기도 했다. 현재 주민 5000명이 살고 있고 경작 면적은 10% 정도. 주로 귤이나 무를 재배하고 있다.

사쿠라지마 관광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해안선을 돌며 화산 풍광을 만끽하는 것이다. 해안에서 삽으로 직접 모래를 파내 즉석 온천을 체험하고, 카약도 즐길 수 있다. 여행자 센터에선 화산분화의 역사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발이 지쳐갈 때쯤 용암해안공원을 찾으면 온천 족욕으로 여독을 풀 수 있다. 여기 족욕탕은 길이가 무려 100m로 일본에서 가장 크다. 화산 온천수라 꽤 뜨겁고 유황성분으로 인해 색이 탁하다.

온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온천 원천 숫자로 따지면 가고시마가 2784곳으로 일본에서 두 번째로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사방팔방 온천이다. 도로변 휴게소에도 무료 족욕탕이 있고 온천대중탕이 영업한다. 온천에 껌뻑 죽는 지인들에게 빨리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야쿠시마와 이부스키

야쿠시마의 '조몬스기(삼나무)'. 수령이 7200년이라고 한다.

가고시마 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녹색으로 빚은 세상이다. 북쪽으로는 일본 첫 국립공원인 기리시마가 있고, 남쪽으로는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섬 야쿠시마가 있다. 특히 삼나무 원시림으로 유명한 야쿠시마에서는 수령 1000년 미만의 삼나무는 '어린 아이' 취급될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그중 '조몬스기'라는 삼나무는 야쿠시마의 상징으로 수령이 7200년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이 일대 원시림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작품 '원령공주'의 배경이기도 하다. 대자연의 푸름이 주변의 모든 잡음을 흡수해버리는 세상. 숲이 내뱉는 피톤치드 향과 인간의 발소리만 느껴진다.

야쿠시마는 가고시마 시에서 대략 200㎞ 떨어진 섬으로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 이동해야 하므로 1박 스케줄로 따로 잡는 게 편하다.

이부스키에서 즐기는 천연 모래찜질.

가고시마 남단 이부스키에서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천연 모래찜질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이곳 모래는 인근 화산지대 마그마의 영향으로 항상 뜨끈하게 데워져 있다. 모래에 몸을 묻고 10분쯤 누워 있으면 송골송골 땀이 맺히며 피로가 싹 달아난다.

마쿠라자키에 위치한 사쓰마 주조(일본소주 공장)도 또 다른 볼거리. 가고시마 특산물인 고구마 소주를 100년 이상 빚고 있는 곳이다. 술 제조 공정부터 다양한 주류 시음까지 특별한 체험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대표적인 고구마 소주가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진 '시라나미(白波)'이다. 가고시마 전역에 고구마 소주를 빚는 양조장이 110여 곳에 이르는데 제품 종류만 150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가고시마는 흑초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사쿠라지마 인근 '가쿠이다 체험관'에 들리면 흑초를 숙성 중인 2 만여 개의 항아리를 구경할 수 있고 다양한 흑초 요리도 맛볼 수 있다.


# 가고시마 제대로 즐기려면 이 영화 보고 떠나시라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일본 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011년에 만든 작품이다. 장르는 가족 드라마. 수많은 여성팬을 거느린 오다기리 죠가 출연한다.

하지만 주연은 그의 천진난만한 두 아들 녀석이다. 간단한 내용은 이렇다. 가정불화로 부부가 멀리 떨어져 별거를 하는데 아빠(오다기리 죠)와 막내아들은 후쿠오카에, 엄마와 장남은 가고시마에 산다. 부모가 다시 합쳐 가족이 함께 살기를 바라는 장남은 엉뚱한 상상을 한다.

집 창밖으로 보이는 사쿠라지마 화산이 폭발하면 어쩔 수 없이 아빠와 동생이 사는 후쿠오카로 이사를 가게 될 거라고.

이런 스토리 속에 가고시마의 속살이 그대로 담겼다. 수시로 날리는 화산재를 청소하는 주민의 삶이 있고, 놓쳐선 안 될 랜드마크도 띄엄띄엄 엿보인다. 지역 특산품인 가루칸(백설기와 비슷한 일본떡)과 소주가 등장하고 최근 개통한 신칸센 얘기도 나온다. 이 영화 한 편이 훌륭한 여행가이드가 될 수도 있다.


# 교통편

부산~후쿠오카 : 김해 출발 비행기를 타거나 국제여객터미널서 비틀·코비호 등 배편 이용

후쿠오카~가고시마 중앙역 : 신칸센으로 1시간30분가량 소요


※취재협조=부산시관광협회·가고시마현 관광연맹·가고시마시 관광교류국

가고시마=글·사진 신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