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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기행 <상> 남명의 제자들- 망우당 곽재우 (郭再祐·1552~1617)

모두들 줄행랑칠 때, 망우당은 이 나무에 북을 내걸었다

  • 이경식 기자
  •  |   입력 : 2016-01-20 19:19:3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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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 있는 현고수. 망우당이 임진왜란 때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며 의병을 모집했던 나무다.
사람사태(沙汰)가 났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너도나도 '선량(選良) 적임자'를 자처하고 나서면서다. 그럴수록 의문은 깊어진다. 우리 사회에 인물이 이토록 많은데 왜 인물난은 여전한지? 원인이 어떻게 진단되든 결국 최종 책임은 유권자에게 돌아온다. 대안은 간명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 지도층의 위상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인사를 가려 뽑는 거다. 이 과제의 중요성을 환기하고자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행'을 떠난다.

먼저, 우리 사상사에서 실천적 지성으로 우뚝한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제자들부터 찾아간다. 망국의 위기였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남명의 제자들이 앞장서 의병을 일으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까닭이다.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1535~1623),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1537~1597) 등 양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남명의 제자는 50여 명에 이른다. 그들이 목숨 걸고 펼쳐낸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념은 무엇일까?


- 백성을 지켜야 할 수령과 장수들이
-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망가버렸다

- 스승의 실천적 삶 이어받은 망우당은
- 북소리로 사람을 모아 전장에 나섰다

- 망국의 위기서 목숨바쳐 지켜낸 나라
- 그에겐 출세보다 가치있는 일이었기에

■현고수에 서린 기개

현고수 앞에 있는 현고정.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22일, 망우당은 불혹의 나이에 생가가 있는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기병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9일 만이자 전국 최초였다. 부산포에 상륙한 왜적이 김해와 창원을 함락한 뒤 칠원을 거쳐 영산·창녕·현풍으로 물밀듯 쳐들어오던 무렵이었다. 하지만 고을 수령과 장수들은 대부분 제 살기에 급급해 병기고와 군량미를 내팽개친 채 달아나 전 국토가 왜적의 총칼에 유린되기 직전이었다. 이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기록들은 전한다.

"경상감사 김수는 진주에서 왜적의 침입 소식을 듣고 동래부로 달려가다가 도중에 적이 이미 가까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더 나가지 않고 경상우도로 돌아와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단지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백성들로 하여금 왜적을 피하라 했다. 이로부터 도내가 텅 비게 되어 적침에 아무런 대책도 마련할 수 없었다."(유성룡 징비록) "경상좌수사 박홍은 화살 한 개 쏘지 않고 성을 버리고 도망쳤고, 경상좌병사 이각은 수성의 계를 세우지 않고 달아났으며, 김해부사 서예원 역시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수영을 불사르고 바다로 도주해 바다 가운데 있던 각 고을 사람들은 왜선을 쳐다만 보고 일시에 무너져 육지로 나왔다. 장수들은 도망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았으며, 수령들은 성을 죽는 곳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선조실록)

세간리 생가의 사랑채. 망우당의 체취가 스며 있는 듯 고졸하다.
망우당이 긴급히 기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난 12일 찾은 망우당의 생가 마을에서 그 사정을 되새겨 봤다. 마을 어귀에는 수령이 600여 년 된 높이 15m, 둘레 7m가량의 우람한 느티나무가 영기를 내뿜고 있다. 기병 당시 망우당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훈련시키기 위해 북을 매달아 놓고 쳤다는 '현고수(懸鼓樹·천연기념물 제493호)'다. 나무 앞뒤에는 북을 비치한 정자(현고정)와 나무의 내력을 적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망우당은 이 나무 아래서 주민들에게 기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적은 이미 박두해 왔다. 우리 부모처자들은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을에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수백 명은 될 것이니 마음을 한가지로 먹고 정암진(鼎巖津·의령과 함안 사이 남강의 나루)에 진을 치고 지키기만 한다면 가히 시골구석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것인가."(이긍익 연려실기술) 망우당은 이렇게 해서 10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병사 수는 전승을 거듭하면서 수십~수백 명으로, 나중에는 2000여 명으로까지 불어났다. 망우당은 의병 유지에 가산을 모두 털어 쏟아부었다.

'세월이 오래되자 고목이 되었으나 한 가지 푸른 기운이 봄이 되면 어린나무보다 거성하다'. 비석의 글귀는 망우당의 애민정신을 대변한다. 지금은 한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허공으로 뻗고 있지만, 지구 중심에까지 뿌리를 내린 듯 널따랗게 대지와 한 몸을 이룬 밑동과 남의 말에 귀 기울이듯 허리를 굽힌 나무에서 봄이 오면 푸르게 울려 퍼질 망우당의 의기가 느껴졌다. 세간리의 나무들은 망우당을 닮은 것일까. 마을 어귀에서 500m가량 떨어진 생가 앞에서도 현고수와 비슷한 수령의 높이 24.5m, 둘레 10.1m짜리 은행나무를 만났다. 이 나무는 망우당의 생가는 물론 마을 전체를 통제하는 중추 같았다. 조선 중기 남부지방 사대부의 전형적인 가옥 양식으로 지어진 생가의 사랑채는 망우당의 체취를 간직한 듯 정갈하고 고졸했다.

■"나라와 생사 같이해야"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강사의 현판 '망우정'(위)과 '여현정'.
백성과 나라의 위기를 좌시하지 않는 망우당의 실천적 삶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왜적을 피해 일신의 안녕을 꾀한 김수를 성토한 격문에서 그 원천이 드러난다. "그대(김수)의 선조는 10대에 걸쳐서 붉은 인끈을 찼고, 7대로 은장(銀章)을 부쳤으니 국록이 이미 두터웠고 고임 또한 융성했는지라, 의로 보면 마땅히 나라와 더불어 흥망을 함께하고 생사도 같이해야 옳으며 진실로 충성과 절개를 떨쳐야 하고 강개의 뜻을 발하여 몸소 사졸에 앞서 죽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무릇 200년 동안 선비를 길러온 우리 영남 선비들이 누가 몸을 바쳐서 죽을힘을 다해 나라의 수치를 씻으려 하지 않겠는가." 나라의 은혜를 입은 만큼 합당한 보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전범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망우당은 이런 정신으로 왜적과의 전투에 임했다. 그는 임란 초기 세간리와 정암진을 의병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의령에서 동쪽으로 16㎞가량 떨어진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 지역인 기강(岐江)에서 망우당이 진지를 설치한 세간리와 정암진은 삼각관계를 이룬다. 두 곳에 근거지를 두면 적의 도강을 저지하고, 강을 오르내리며 적의 군수물자 운반을 차단할 수 있다. 임진년 5월 하순, 망우당은 정암진 도하작전을 기도한 왜군과 일전을 벌인다. 전법은 치밀한 정보 수집과 장애물 설치, 매복과 교란 등을 통한 유격전이었다. "왜군이 정암진에 이르렀으나 진창 때문에 행군할 수가 없었다. 높고 건조한 곳에 기를 세우고 다음 날 아침에 건너려 했다. 재우는 이를 염탐한 뒤 한밤중에 기를 뽑아 진창 속에 꽂은 다음 매복하고 있으니 과연 적이 진창 속에 빠졌다. 이때 복병이 나와서 적을 거의 전멸시켰다."(조경남 난중잡록)

전투 결과는 대승이었다. 이 덕분에 경상우도를 보존해 농민들이 평소처럼 경작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을 수 있었다. 강 가운데 불쑥 솟은 정암(솥바위)의 겹겹이 포개진 바위층은 망우당의 지략과 의병들의 용맹이 다져진 것처럼 보인다. 망우당의 활약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도 이어졌다. 밀양·영산·창녕·현풍의 군사를 이끌고 화왕산성에 들어가 왜장 가토오 기요마사의 대군을 맞아 무사히 수성한 것이다. 해발 757m의 험준한 바위산을 등진 너른 안부의 둘레에 쌓은 화왕산성은 오늘도 망우당의 수성 쾌거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유학자 망우당의 뛰어난 용병술은 폭넓은 독서와 스승 남명의 실용적 가르침에서 기인한다. 그는 "주역 춘추 성리 등 책을 일찍이 익혔고, 천문 지리 음양 의약 제가에 두루 통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활쏘기 등 기예도 닦았다"고 자신의 문집에 썼다. 남명은 69세 되던 1569년 남해안에 왜적의 침입이 잦은 것을 우려해 제자들에게 이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글을 짓게 한다. 제자들의 국방 식견을 알아보고 국방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다. 망우당은 남명이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뇌룡정(雷龍亭)을 짓고 강학하던 시절 직접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된다. 남명의 실천철학이 망우당에게 고스란히 전수된 셈이다. 남명은 그런 망우당을 눈여겨보고 외손녀의 배필로 삼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

남명 조식 선생
망우당은 명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 별시의 정시에 2등으로 급제했지만, 선조가 망우당의 글이 거슬린다고 합격을 취소하자 과거를 포기했다.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기강 둔치에 강사(江舍)를 지어 은거에 들어간 그는 임란 발발로 3년 만에 뜻하지 않은 벼슬길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임금이 내리는 벼슬을 고사하거나 받아들이더라도 이내 사직하기 일쑤였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결곡한 성품 때문이었다.

망우당은 임진년 7월 유곡찰방을 시작으로 1616년까지 의병 활동의 공로로 29차례 다양한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그중 15차례만 출사했다. 1594년 경상우도 방어사에 제수됐으나 상중임을 이유로 사양했고, 같은 해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됐지만 왜적의 재침에 대비한 도산성 수축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을 핑계로 낙향했다. 이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전남 영암에서 2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1610년(광해군 2)에는 함경도 관찰사를 제수받은 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역관과 원접사의 비행을 나무라다 임금이 죄를 거론하지 않자 부당하다고 여겨 낙향하기도 했다. 그 후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의 기강가에 단칸 강사를 짓고 여생을 보낸다.

세간리 생가에서 하류로 20㎞가량 내려와 들른 이 강사에는 자호를 딴 '망우정'과 '여현정(與賢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근심을 잊고 현인들과 더불어 지내겠다'는 뜻이다. 이날 하오의 스러지는 햇살은 강물 위에 긴 빛그물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몽학의 난에 연루돼 억울하게 숨진 의병장 김덕령(金德齡·1567~1596), 망우당 자신도 이 사건으로 무고당해 죽을 뻔한 충격, 경상감사 김수가 자신을 역적으로 무함했던 일…. 망우당은 20여 년의 의병 생활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인생무상을 절감했을지도 모른다.

솔잎에 맺힌 자연의 정기로 이를 씻어내려 했을까. 그는 66세로 타계할 때까지 곡물을 끊고 솔잎만 먹으며 지냈다. '아래는 긴 강, 위에는 높은 산/망우정은 그 사이에 있네/망우선자 근심 잊고 누워/밝은 달 맑은 바람 한가로이 대하네(下有長江上有山·하유장강상유산/忘憂亭舍在其間망우정사재기간/忘憂仙子忘憂臥망우선자망우와/明月淸風相對閑·명월청풍상대한)'. 망우당에게 의병이 정의의 실천이라면, 은거는 내면을 닦는 수양이다. 남명과 포개진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이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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