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화엄사 4사자3층석탑의 아랫기단과 윗기단 사이에 있는 승상과 사자상. 승상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
- 지리산 각황전 뒤 108계단 오르면
- 극락정토처럼 드러나는 언덕 '孝臺'
- 네 사자기둥 가운데 합장하는 비구니상
- 찻잔 든 채 무릎 꿇은 석등 내 승려상
- 화엄사 창건한 연기조사, 노모 모셔와
- 매일 아침 차 공양 효행 기려 탑·등 세워
승(僧)과 속(俗)은 유별한 것인가? 물론 머무는 곳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으로 엄연히 나뉜다. 하지만 승속은 '둘이 아니(不二·불이)'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세간의 휴머니즘과 진리를 깨치려는 출세간의 구도행은 '지극함'이란 근본에서 하나로 만난다. 전남 구례 화엄사 '4사자3층석탑(국보 제35호)'은 묵언의 설법으로 이런 진리를 일깨운다.
승속만이 아니다. 이 석탑은 '자연과 인공이 하나 되는' 조화의 아름다움도 선사한다. 당대 최고의 문화재 감식가,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1916~1984)는 이를 "한국의 자연 속에 점지된 조형작품의 고요와 청순미"라고 해석했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함께 우리나라 이형석탑의 쌍벽을 이루는 4사자3층석탑. 그 아름다움의 비밀을 캐러 지난 20일 가을이 깊어 가는 화엄사를 찾았다.
■효심과 불심은 하나
 |
| 4사자3층석탑과 석등 |
4사자3층석탑은 화엄사가 몸을 맡긴 지리산 노고단 황둔골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각황전(覺皇殿·국보 제67호) 왼쪽에 만들어진 108개의 계단을 오르면 아름드리 노송과 대나무, 활엽수들이 우거져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는 평평한 언덕이 나온다. 효대(孝臺)다. 이 별칭은 화엄사 창건주인 인도 승려 연기조사(緣起祖師·생몰연도 미상)의 효행 전설에서 기인한다. 석탑은 효대 위에 세워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연기조사는 '화엄경'을 가지고 비구니인 모친과 함께 황둔골에 들어왔다. 조사는 마을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고 불법을 가르치는 한편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이에 감동해 신도가 된 마을 사람들은 합심해 조사가 신라 진흥왕 5년(544년) 화엄사를 짓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석탑도 그 때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 6.7m의 석탑은 마주 보고 있는 높이 2.8m짜리 석등과 한 쌍이다.
두 석조물에는 조사의 효심과 불심이 혼연일체가 되어 스며 있다.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양식이다. 아랫기단의 벽면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12명의 천인상(天人像)이 돋을새김돼 있다. 그 표현이 자못 섬세하고 부드러워 부조상이 딱딱한 돌을 빠져나와 너울너울 날아오를 것만 같다.
아랫기단 위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사각의 모서리에서 윗기단의 덮개돌을 떠받치고 있다. 사자기둥을 세운 것은 화엄사 4사자3층석탑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사자기둥들의 가운데에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는 승상이 있다. 이 승상이 조사의 어머니라고 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사자들은 승상의 수호상이다. 윗기단 위 1층 탑신의 네 벽면에는 문과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 등 수문장들이 조각돼 있다. 탑신 안에는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가 중국에서 들여온 73과의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寂滅寶宮)의 축소판인 셈이다.
 |
| 연기조사를 상징하는 석등 내 승상. |
석탑의 맞은편에는 배례석을 사이에 두고 세 개의 기둥이 덮개돌을 떠받치는 석등이 서 있다.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서 오른쪽 무릎은 꿇고 왼쪽 무릎을 세운 채 왼손으로 찻잔을 들고 있는 승상이 있다. 이 승상은 연기조사라고 한다. 석등의 승상(연기조사)이 석탑의 승상(연기조사의 어머니)에게 차를 공양하는 효심을 형상화한 것이다. 조사는 절을 짓고 난 뒤 어머니를 모셔와 아침마다 따뜻한 차를 공양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각가는 두 승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 생명은 묵언의 대화로 표출되고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경지에서 나누는 이심전심의 대화다. 이는 육성의 대화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이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온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럴 때 묵언은 사자후 이상의 사자후로 다가온다. 혜곡은 "공양상(석등 승상)의 경건한 자태는 부처님에의 간절하고도 영원한 숭앙을 찬가하는 한국미의 한 모습"이라고 했다.
■효대에서 열린 극락정토
하지만 초발심이 흐트러질 것을 우려해 세속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게 출가 승려의 상례임을 고려할 때 이는 계율을 깨는 파격이다. 이를 모르지 않을 조사와 불제자, 신도들은 왜 효심을 담은 석조물을 절집에 세웠을까. 여기에는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는 효심은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 이 땅을 극락정토로 만들려는 불심과 상통한다는 '불이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철학은 '하나는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一卽一切 一切卽一·일즉일체 일체즉일)'라는 만물의 연관성을 설파하는 화엄(華嚴)사상이다. 따라서 두 석조물의 조성은 화엄사상의 구현이며, 파격은 이를 위한 고뇌의 결단인 셈이다.
석등에는 검푸른 돌이끼가 피어 있다. 돌이끼는 지극한 효심과 불심의 표징인 듯하다. "부슬비 내리는 늦은 가을날이면 이 석등 위에 돋아난 해묵은 돌이끼가 파아랗게 하나하나 살아나서 이 석탑의 언덕은 마치 삼층석탑에 새겨진 비천상들이 보여준 주악과 율동을 일깨우는 듯한 신비로움과 정적의 아름다움이 뼈에 시리도록 고마워진다." 혜곡의 감상평은, 그가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고 '사무치게 고마운 아름다움'이라고 했던 것(본지 지난 15일 자 19면 보도)과 같은 맥락에서 우러나온 심미안으로 받아들여진다.
무량수전과 비슷한 점은 또 있다. 두 석조물의 배치다. 무량수전처럼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데다 숲에 둘러싸여 108계단을 오르기 전까지 석조물은 보이지 않지만, 효대에 서면 전망이 탁 트여 무량수전이 극락정토 같은 소백산맥을 맞아들이듯 넉넉하고 포근한 구례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주문에서 각황전을 거쳐 효대에 이르기까지는 지난한 구도의 과정이지만, 효대에 올라서 승(불심)과 속(효심)이 상통한다는 화엄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일망무제의 극락정토가 펼쳐진다. 화엄의 진리는 바다처럼 넓고 맑다.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화엄사의 가을은 참 아름답다.
# 묵묵히 불국사 문화재 지탱하는 대석단, 나라의 근본인 백성 같다
- 대웅전·극락전 비롯한 크고 작은 법당·범영루의 석축
- 원형 그대로의 자연석을 맞물리게 차곡차곡 울퉁불퉁 멋지게 쌓아
 |
| 불국사 범영루. 자연석 그대로의 석단이 참 아름답다. |
청운교·백운교(국보 제23호), 칠보교·연화교(국보 제22호), 석가탑(국보 제21호), 다보탑(국보 제20호)…. 문화재의 보고, 경주 불국사에는 하늘에서 다듬어 내려보낸 듯 아름다운 예술품이 즐비하다. 불국사에 가면 대개 눈에 쉽게 띄는 이런 문화재들에 매료돼 정신을 팔다 오곤 한다. 하지만 사찰을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면 이들 문화재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다른 문화재의 명성을 지탱하는 '음지의 수호자'가 있다. 대석단(大石壇·보물 제1745호)이다.
대석단은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법당, 범영루를 중심으로 네모나게 조성된 보랑(步廊) 등 불국사 전체 가람을 떠받치는 기초다. 대석단이 없이는 가람의 건축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라로 치면 백성에 해당한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시행 여부와 관계없이 백성이 나라의 근본임은 상식이지만, 전문가를 제외하곤 정작 건축물을 보면서 석축에 눈길을 주는 이는 드물다.
혜곡은 살아생전 석축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글을 썼다. 영주 부석사의 대석단과 춘천 청평사의 석단을 보며 쾌재를 불렀고, 불국사 대석단에 대해선 별도의 단편을 써서 한국미학의 한 자락을 풀어내기도 했다. 이런 글들을 보면 혜곡미학의 가치 지향점을 알 수 있다. 석단에 대한 그의 찬가는 가히 '석단송(石壇頌)'이라 칭할 만하다. 지난 19일 불국사를 찾아 대석단 앞에서 그의 석단송을 반추했다.
 |
| 안양문 옆 보랑의 석단. |
가을은 불국사 대석단을 위한 특별한 시간적 무대였다. 기척도 없이 사뿐히 내려앉은 단풍의 그늘은 대석단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요란하지 않은 스포트라이트였다. 민초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그랭이기법(자연석을 가공없이 맞물리게 구축한 것)'으로 차곡차곡 쌓은 울퉁불퉁 투박한 돌들에는 신라 장인의 선량한 마음씨가 검푸른 이끼 꽃으로 피어 있었다.
혜곡은 불국사 대석단 중에서 안양문과 자하문 사이에 있는 범영루 아래의 자연석 돌각담을 가장 좋아했다. "우람스럽게 큰 기둥이 의좋게 짜여서 이 세상 태초의 숨소리들과 하모니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이 세계에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누가 원형 그대로의 지지리도 못생긴(잘생긴) 돌들을 이렇게도 멋지게 다루고 쌓을 수 있었을 것인가."
 |
| 자하문 아래 석단 |
안양문과 자하문 아래의 석단은 지세의 높낮이에 따라 길고 짧게 가공한 돌들을 쌓아 인공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범영루 아래의 돌각담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 그대로여서 혜곡에게 태초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는 대석단 앞뜰을 거닐며 범영루 너머로 석가탑을 바라봤다. 그리고 "새벽이면 새벽대로 달밤이면 달밤대로 희망처럼 은은하게, 멀게 혹은 가깝게 눈과 마음을 적셔주는" 석가탑에 가슴 설레했다. 그는 아마 석가탑을 만든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도 떠올렸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품은 위대한 안목에서 태어난다. "돌각담을 쌓을 수 있는 돌장이의 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돌각담의 아름다움을 대견히 아는 좋은 눈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아마도 그러한 손을 길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혜곡은 대석단을 비롯해 불국사 내 절세의 예술품들을 창조한 공을 눈 밝은 신라인들에게 돌렸다. 신라인들은 천년 세월을 건너와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