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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한국미' 기행 <중> 경북 안동 제비원 석불

푸른하늘 '광배(불상의 후광을 상징한 구조물)' 삼아 앉은 석불, 미소와 고뇌의 두 얼굴

  •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  |   입력 : 2015-10-21 19:30:3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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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태화산 기슭에 있는 제비원 석불. 황혼 무렵 광배 구실을 하는 하늘이 연분홍빛 보랏빛 자줏빛 등 총천연색으로 변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불상에는 깨달음의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가 꼭 있어야 할까? 오히려 광배가 없어 더 신비롭고 영험해 보인다면 광배는 사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통념에 신선한 균열을 내는 불상이 있다. 경북 안동시 이천동 태화산 기슭의 '제비원 석불(보물 제115호)'이다.

정확히 말하면, 해가 뜨고 짐에 따라 시시각각 총천연색으로 변하는 하늘과 녹음 등 대자연을 광배로 삼았기에 인위적인 광배가 불필요함을 보여주는 불상이다.

- 광배 둬야 한다는 통념 깬 불상
- 암벽 위에 조각한 머리 얹고
- 해 뜨고 짐에 색 달라지는 하늘을
- 등받이로 두니 자연과 조화미

- 다양한 표정이 겹쳐진 얼굴엔
- 조각가 예술혼과 민초의 삶 투영

◇ 안동 제비원 석불 (보물 제115호)

- 불신 높이 9.95m
- 머리 높이 2.43m

지난 6일 오후, 차를 몰고 5번 국도를 따라 태화산 고개를 넘어가다 공중에 우뚝 솟은 이 석불을 본 순간 짜릿한 전율에 휩싸였다. 높이 9.95m의 자연암벽에 새긴 불신(佛身) 위에 2.43m나 되는 머리를 얹어 만든 12.38m의 거대한 고려시대 불상이었다. 반듯하게 몸을 세운 채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불상 뒤에는 푸른 하늘이 등받이처럼 펼쳐져 있고, 하오의 스러져가는 햇살은 뽀얀 화강암 불신에 내려앉아 은은한 광배를 빚어내고 있었다. 제비원 석불과의 첫 만남은 '자연 광배'의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왔다.

당대 최고의 문화재 감식가,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1916~1984)는 황혼 무렵 이 석불을 찾았다. 그는 '혹은 보라색으로 혹은 연분홍색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너그러운 (석불의) 얼굴'을 보고는 '꿈속에서처럼 아름답고 황홀한 마음의 울렁임'을 느꼈다. 그리고 석불의 아름다움을 '자연과 인공의 미묘한 해화(諧和)'라고 풀이했다.

불상 자체만이 아닌 주변 자연과의 어우러짐이 제비원 석불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출한다는 뜻이다.

■여러 얼굴 겹쳐진 석불

제비원 석불 밑(위)과 옆에서 본 석불.
석불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석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표정에 담겨 있다. 혜곡의 언급처럼 석불의 표정은 '미묘'하고 다양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해 근엄한 듯하면서도 잔잔한 미소가 어려 자비로운 인상을 풍긴다. 그런가 하면 형언할 수 없는 고뇌를 속으로 삭이는 비원도 느껴진다. 여러 얼굴이 겹쳐진 듯한 이 표정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표정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석불에 얽힌 전설이다. 먼저, '조각가 형제' 전설을 보자. 옛날 안동에 조각가 형제가 있었다. 하늘 아래 최고는 둘일 수 없다고 생각한 형제는 미륵불을 조각하는 것으로 실력을 겨루어 지는 쪽이 죽기로 했다. 아우는 약속한 날까지 불상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형은 머리만 조각한 뒤 암벽 위에 얹어 현재의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아우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약속을 지켰다. 이 전설이 암시하는 석불의 아름다움은 자연(암벽)과 인공(불상 머리)의 조화다. 불신을 입체적으로 다듬지 않고 지금처럼 선각만 한 채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것이다. 아름다움을 고통의 인내와 연관시킨 것도 이 전설의 특징이다. 이른바 비장미다. 어린아이를 펄펄 끓는 쇳물에 넣는 인신 시주로 만들었다는 전설을 지닌 경주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과 같은 성격의 미의식이다.

'연이 처녀' 전설도 의미심장하다. 앞의 전설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했다면, 이 전설은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연이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원(院·여관)에서 일하며 먹고 살았는데, 마음이 착하고 성실해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았다. 이웃 마을 부잣집 총각이 죽어서 저승에 가니, 염라대왕이 가득 쌓인 연이의 선행창고에서 공덕을 빌려 인정을 베풀면 다시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승으로 온 총각은 연이에게 재물을 나눠주었고, 연이는 그 재물로 절을 지었다.

건축을 맡은 대목은 법당의 마지막 기와를 지붕에 덮고는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 제비원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했다. 연이가 죽자 바위가 갈라지면서 현재의 돌부처가 생겨났다. 이 전설에는 자비행의 아름다움이 부각돼 있다. 더불어 현실의 빈부 불균등과 가난을 불심(미륵신앙)에 기대 극복해 보려는 민초들의 염원이 녹아 있다.

■착한 마음 불상에 투영

불상의 전형적 광배-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위치한 마애불 입상(보물 제222호). 불신과 광배가 함께 조각돼 있다. 국제신문DB
석불의 표정이 다양한 것은 민초들의 온갖 애환이 투영돼 있어서다. 조각가는 그런 애환을 돌에다 새겼을 것이다. 민초들은 제비원에 석불이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불공을 드리며 애환 어린 신심을 쌓아가고 있다. 기자가 석불을 찾았던 날도 중·노년 여성 2명이 석불 아래 꿇어앉아 두 손 모아 빌고 있었다. 전설들을 종합하면 제비원 석불의 아름다움은 신명을 바친 조각가의 예술혼과 이를 넉넉히 품고 받쳐주는 자연, 서로 도와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가꾸려는 민초들의 착한 마음씨가 삼위일체로 어우러져 생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혜곡의 심미안도 이 지점으로 향한다. "이 여래상이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 부처님의 모습과 살결이 우리 백성들의 마음에 스스럼이 없는 까닭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여래상의) 정다운 모습이 석양 놀에 비칠 때 향수에 젖는 인간들의 선의가 아마 이 부처님의 얼굴에 거울처럼 옮아가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혜곡은 석불을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여래상으로 감식했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까지 드리우고, 왼손은 가슴 위에 들어 중품하생(中品下生·중생이 극락왕생하는 아홉 등급 중 하나)의 인계(印契·부처가 깨달음을 나타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만든 표상)를 보인 점과 서향 정립한 자세'가 그 근거다. 하지만 민초들은 석불을 현실의 고난을 구제할 미래불인 미륵상으로 본다. 아미타여래상이든 미륵상이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민초들의 선의지가 곧 불심이자 아름다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그 마음은 밀도를 더해가고 있다.


# 단아하고 고졸했던 주인 빼닮았네, 혜곡고택

- ㅁ자형 구조에 안뜰·뒤뜰·우물…
- 뛰어난 비례미는 생활미술 진수
- '시민문화유산 1호' 별명도 얻어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최순우옛집' 마당.
좋은 집이란 많은 사람이 즐겨 찾고 싶은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일 것이다. 가족이 사는 독립거처에서 벗어나 지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시민자산으로 활용범위가 확대된 집이 있다면 어떨까. 최고의 집이라고 칭송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시민문화유산 제1호'라는 별칭을 얻은 그런 집이 있다. 혜곡이 1976년부터 1984년 타계할 때까지 살았던 '최순우옛집'이 그곳이다. '최순우 한국미' 기행에서 혜곡고택을 빼놓을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 주택가에 자리한 이 집은 1930년대에 지은 전형적인 경기지방 한옥이다. 대지 395㎡·건물면적 102㎡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 행랑채가 마주 보고 있는 'ㅁ'자형 구조다. 집 가운데에는 네모난 안뜰과 우물이 있고, 본채 뒤에도 동서로 길쭉한 뜰이 있다. 성북동 일대에 한옥을 양옥으로 재개발하는 바람이 불어 철거될 위기에 놓인 이 집을 문화유산 보존 시민운동단체인 (재)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9억8000만 원의 시민성금을 모아 사들여 2003~2004년 복원한 뒤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현재 이 집은 정부 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돼 있다.

'최순우옛집' 화단에 놓인 문신 석상.
집은 집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혜곡고택이 그러하다. 혜곡의 인품처럼 고졸하고 단아하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8월 15일, 이 집을 찾은 기자는 염천에 청량한 기운을 만끽하는 때아닌 호사를 누렸다. 이 집에 들어서면 먼저 우물 곁에 심어 둔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받쳐놨을 정도로 심하게 휘어졌지만, 날렵하게 뻗은 가지와 푸른 바늘잎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행랑채 댓돌 위에 놓인 검정 고무신 한 켤레에선 구수한 정감이 묻어났다. 담벼락이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뒤뜰에는 소나무, 도토리나무, 산수유나무, 키 작은 대나무 등 각종 수목이 어우러진 화단 사이사이로 10여 개의 크고 작은 장독들이 들어찬 장독대와 돌 원탁, 사람과 동물 석상이 보기 좋게 배치돼 있었다.

안채에선 때마침 백자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 손때가 묻어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거무스름한 대청마루 위에 놓인 새하얀 달항아리의 보색대비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앉은뱅이책상, 장식 없는 문갑과 장롱 등 소박한 가구들이 듬성듬성 비치된 방들은 정갈하고 여유로웠다. 혜곡은 안채 앉은뱅이책상에서 명문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한 수많은 글을 썼다. 그러다 피곤하면 낮잠을 즐기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채 처마 밑에 걸린 단원 김홍도(1745~미상)의 '오수당(午睡堂)' 현판 글이 이를 증언하는 듯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랑채 처마 밑에 붙은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란 반듯한 행서체 현판 글이었다. '문을 닫아걸면 이곳이 곧 깊은 산'이란 뜻의 이 글은 혜곡이 직접 쓴 것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압축적으로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정갈하고 조용하고 밝은 서창가에 앉아서 하오의 한나절을 부스럭거리노라면 낙엽소리, 풍경소리에 해쓱한 뒤뜰 산나무들…언뜻 미닫이를 열면 이름 모를 산나무에는 주홍빛 잔 열매들이 꽃보다도 고운 데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혜곡은 평생 이런 가치관으로 일관하며 담박한 생활을 즐겼다. "(혜곡고택) 한옥의 구조는 물론이려니와 축대의 너비와 높이, 축댓돌 하나의 생김새며, 상호 간의 조화와 비례며 놓이는 장소 등이 그리도 편안하면서 적절하여 이것이 바로 우리 생활미술의 진수로구나 하고 흥겨우면서 눈맛이 그리도 시원할 수가 없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혜곡의 유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서문에서 혜곡고택의 아름다움을 이같이 찬양했다. 혜곡의 한국미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일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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