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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칼럼] 아버지와 딸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09-09 18:49:44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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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이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를 위해 몇이 모여 조문을 갔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 나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부모님의 건강 문제로 화제가 옮겨갔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어느새 우리 모두가 한 부모 가정의 자녀들이 되고 말았다는 현실이었다. 양쪽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개는 홀어머니나 홀아버지처럼 한 부모만 남아 있는 형편이었다. 심지어 오래전에 두 분을 모두 여읜 '고아'도 있었다. 부모님이 안 계실 날이 오리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뒤. 음반이 담긴 봉투 하나를 소포로 받았다. 아버지를 보내 드린 그녀가 조문객들에게 보내 준 선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여행길에서 들었던 음악이라며 그 여행이 아버지 생전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 몰랐다는 회한의 몇 줄을 봉투 안에 담아 보냈다. 다 큰딸과의 우연한 여행. 내년에도 이 좋은 여행을 함께 오자며 굳게 약속했건만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그녀는 음악을 들을 때 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을 그립게 기억하게 되었다며 멀리 가신 아버지가 하늘에서라도 행복하시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들어 달라고 담담히 적어 내려갔다. 행간에서 느껴지는 그리움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아버지를 추억하는 딸의 가슴 시린 몇 줄의 고백에 나는 눈물이 났다.

그러나 추억할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한 딸이다. 아버지를 잃었다는 아픈 사실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공유할 아무런 추억조차 없이 그렇게 무심히 부모님을 떠나 보내는 이들도 무수히 많을 테니 말이다.

조문해주셔서 고맙다는 형식적인 몇 줄의 글이 쓰인 서한은 종종 받아보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선물을 받아 들기는 처음이었다. 선물은 매우 새롭게 느껴졌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마음이 참으로 예쁘게 다가왔다.

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잃는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아버지를 잃고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던 것은 더는 '아버지!'라고 부를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당연하다고 믿었던 일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한동안 중절모를 쓴 노인들을 자신 있게 바라보지 못했다. 중절모를 쓴 노인들의 모습 앞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먼저 가슴을 치고 불쑥불쑥 올라왔기 때문이다.

딸은 아버지와의 짧은 여행에서 오랜만에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아 보았을 것이다. 주름 사이로 펼쳐진 담백한 아버지의 웃음을 포장 없이 마주했을 것이다. 태산처럼 당당했던 아버지는 어느새 허리가 굽은 은백의 노인으로 돌아왔다. 작아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딸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추석이 코 앞이다. 평소 전화 한통으로 할 일을 다 했노라 여기며 살다가도 명절에 마주하는 부모님을 뵈면 이제 몇 번이나 더 그 건강함을 마주할까 조바심이 앞선다. 명절에 받게 될 은밀한 용돈을 떠올리며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던 코흘리개 철부지가 이제는 달라진 이유로 그 명절을 담담히 기다리고 있다.

유정임 FM 90.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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