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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칼럼] 고무줄 잣대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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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5-08-19 19:12:0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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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서는 안 될 뉴스들이 나오고 있다. 학교 내에서 교사에 의해 벌어졌다는 학생들에 대한 성추행이라니…. 귀를 의심해야 하는 이런 뉴스를 현실 속에 전해 들으면서 참으로 암울한 기분을 떨쳐내기 힘들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홍보실에서 잠시 일을 했다. 업무상 알게 된 타 회사의 중견간부 한 사람. 넉넉한 인상과 깍듯한 매너로 우리 회사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있었다. 악수할 때면 꼭 검지로 상대의 손바닥을 간질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황당하기는 했지만 장난삼아 그러려니 이해했다. 악수할 때마다 전해져오는 그 불쾌한 감정을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여성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모두가 그 불쾌함을 경험했다고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사실이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항의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딱히 다른 것은 흠잡을 데 없는 나이도 한참 많은 그분께 누가 어떻게 이야기를 건넬까 고민이 앞섰던 것이다. 괜하게 기분이라도 상하게 하면 앞으로 일하기 불편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만 난무하다가 결국 말을 했는지 말았는지 기억이 선명치 않다.
지금 와 생각하면 참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다 싶기도 하지만 다시 또 20대의 젊은 여성으로 돌아가 그분과 마주하게 된다면 또다시 고민이 시작될 것 같다. 사람살이는 관계다. 몸짓도 손짓도 생각나눔도 관계다. 솔직히 성추행에 관계된 이야기의 판단은 '고무줄 잣대'가 결국 '상식적인 정답'이다. 어디까지가 불쾌함이고 어디까지가 친근함인지 사람마다 사안마다 이해하는 관점과 관계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는 것이다.

실험실에 근무하는 한 남자동창은 요즘 같은 세상 속에서 실험을 함께하는 여자 연구원들이나 가르쳐야 하는 여학생들과 마주할 때마다 난처한 고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속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실험도구를 옮기고 시약을 나누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몸도 부딪히고 손도 부딪혀야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행여 이상한 이야기에 휘말릴까 싶어서 사소한 행동도 조심 한다는 것이다. 그 고민속에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볼펜. 앞을 막아선 사람에게 좀 비켜달라고 손으로 가벼이 터치할 때도 볼펜을 사용해 건드린다거나 한다는데 나는 그게 더 기분 나쁜 일이라고 항변했고 그 친구는 그럼 어쩌란 말이냐고 억울해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스킨십 중에 가장 찐하고 가슴 떨리는 행위는 무엇일까? 내게는 키스도 아니고 그 이상도 아니다. 연애시절 처음 잡힌 손의 느낌은 지금까지도 가장 떨리고 긴장된 스킨십으로 기억된다. 누구에게나 영원하지 않은 잠깐의 인생, 서로 부비고 손잡고 표현하며 살아도 부족할 시간 속에 상상만으로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음흉한 생각들이 고개를 들면서 우리의 순수한 표현까지도 갉아먹고 있다. 절로 억울해진다.

유정임 FM 90.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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