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 5지구라 부르는 마을은 대추나무 골이다. 대추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가보면 대추나무가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실 떠난 것이 아니라 밀려났다. 이 사람들이 밀려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길게는 세 번째, 짧게는 두 번째 밀려났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되어 동구와 영도구의 산복도로로 밀려난 것이 처음이고, 유신독재 시대에 다시 밀려나 이곳, 만덕으로 들어왔다. 만들어진 집으로 온 것이 아니라 손바닥만 한 땅 위에 내쳐졌다. 집은 고사하고 세찬 바람을 막을 문도 없는 곳에서 지내야 했다. 주민들은 식솔을 위해 집을 손수 지어 올렸고, 억척스럽게 생을 이어갔다. 그 억척스러운 사람들이 지금,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만덕을 재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2년 전 초가을에 처음 들렀다. 그곳은 여느 재개발예정지구들과 사뭇 달랐다. 백양산 능선이 치맛자락처럼 떨어지는 평원에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마을 뒤쪽에는 금정산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었다. 집들은 언덕 경사면에 다랭이 논처럼 층층이 올려져 있었다. 그 집들은 모두 공평한 햇볕을 받고, 옥상마다 의자와 평상이 있어 아늑한 노을을 감상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이미 빈집들이 즐비하였으나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살펴보았더니 하수관거시설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위험한 집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만 손보면 살기에 적당했다. 생활을 엿보느라 틈틈이 다닌 여느 산복도로, 다른 재개발예정지구와는 판이하였다. 이 마을을 쓸어버린다니 아까웠다. 문화마을로 만든다면 감천의 문화마을보다 훨씬 입지가 좋았다. 불편한 마음으로 걸으며 남은 마을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질문이 달라져 있었다.

왜 이곳을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으려 할까? 답은 단순했다. 지하철 5분 거리에 양지바르고 전망좋은 곳을 토건세력이 놓칠 리가 없다. 삶을 일구는 것보다 건물을 짓는 것이 더 많은 이문이 남는다는 것이 시장의 논리이니. 부산의 정치가나 관료들은 부산을 역동적인 도시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일제강점기에 개항한 이후 한국전쟁을 겪어온 부산의 근본적인 성격은 '유동성'이며 아직 진행 중이다.

역동적인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탱할 터전이 있어야 하지만, 부산은 그렇지 못하다. 역사성을 무시한 난개발은 개항 초기부터 진행된 이래로 멈추지 않았다. 부산의 시민들은 부초처럼 떠다니던 사람들이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돈과 잘못된 정책의 흐름에 따라 밀려다닌다.

어떤 이가 가난을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오면, 내 답은 "주거를 해결하면 된다"라고 간단히 말한다. 안전한 주택, 걷기 좋은 거리, 교감할 수 있는 동네주민 그리고 최소한의 보건사회시설이 있다면 이미 가난의 절반은 해결되었다. 이 해법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간단히 마을과 삶을 쓸어버리는 것보다 유용하다.

윤성호·동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