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주어진 것에 최선 다하는 모습 비슷해"
- 누아르멜로지만 폭력적이지 않아 매력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전도연이 색다른 멜로 영화 '무뢰한'에서 다시 한 번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지난 24일(현지 시각) 폐막한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무뢰한'(27일 개봉)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정재곤(김남길)과 범인 박준길(박성웅)을 쫓을 유일한 실마리이자 범인의 애인인 김혜경(전도연)의 외로운 사랑을 그린 누아르풍 멜로 영화다.

전도연은 과거에는 텐프로의 에이스였지만 지금은 나이도 먹고 빚도 있어 변두리 주점 마담인 혜경 역을 맡았다. 혜경은 저녁이면 술집을 돌며 주점 명함을 돌리고, 밤이면 웃음을 팔며 하류 인생을 산다. 피폐해진 삶 속에서 만난 새로운 남자 재곤과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감정 소통의 장애라는 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이 더욱 스산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것은 마치 자신이 혜경인 듯 연기한 전도연 때문이다.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전도연과 만나 '무뢰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칸국제영화제에서 '무뢰한'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칸국제영화제는 네 번째로 다녀왔다. '무뢰한'의 첫 상영 때 과연 외국 사람들이 영화가 지닌 의미를 다 이해했을까 싶었는데, 다음 날 리뷰 기사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편집, 연출 의도 등을 세세하게 다뤄줬다.

-오승욱 감독은 '킬리만자로' 이후 무려 15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연출했다. 의욕이 대단했을 것 같다.

▶첫 촬영에서 "도연 씨, 현장에서 바로바로 편집해서 볼 수 있대요"라고 했다. 현장 편집은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이어서 내가 당황스러웠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뭔가 새로운 무언가를 찍고 싶었던 것 같다.

-'무뢰한'은 사이사이의 여백이 많은 영화다. 그만큼 인물의 감정이나 대사 등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게 한다.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 누아르이면서도 멜로가 폭력적이지 않아 매력적이다. 혜경을 통해 어떤 의미를 주어 대상화하기보다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개봉에 앞서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소통의 방식에 대한 것이다. 재곤과 혜경은 누가 봐도 분명한 사랑을 하는 관계지만 그들은 온전히 사랑이라는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재곤만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혜경도 남자를 모르고 소통이 모자란 커플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재곤이 혜경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모호하다.

▶혜경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 사람을 보고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 사랑으로 발전한 것 같다. 혜경 입장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전까지는 남자한테 선택당해 살아온 인물이다. 처음으로 선택하고 싶은 남자가 재곤이었다. 항상 옆에 있는 재곤을 보면서 진정성을 느꼈을 것이다.

-혜경은 그 인물에 공감하지 않으면 연기하기 힘든 역할이다. 어떤 면을 공감했는가?

▶그게 무엇이든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에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면이 나와 닮았다.

-일상을 살면서 무뢰한이라고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무뢰한'을 찍으면서 사소한 일로도 무례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의도치 않게 무례할 수 있고, 그들이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전도연이 직접 준비한 영화 속 의상

- 너무 천박하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게…"제 옷장 열어 찾아냈죠"

전도연이 '무뢰한'에서 김혜경의 의상을 직접 스타일링했다. 오승욱 감독은 '무뢰한'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 김혜경의 의상을 꼽기도 했는데, 전도연은 직접 의상에 대한 자기 생각,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그만큼 김혜경이라는 인물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였다.

전도연은 "혜경이 삼류로 전락했지만 의상은 화려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정도의 느낌이 날 정도로 화려해야 했다. 이 여자의 무기는 외모가 아닐까 싶었고, 의상은 전투복 같은 느낌"이라고 의상 콘센트를 설명했다. 그녀는 예산에 맞지 않거나 구하기 어려운 의상이 있을 땐 본인의 옷장을 열어 평소 즐겨 입던 옷부터 결혼식에 참석해 민폐 하객으로 꼽히기도 했던 빨간 원피스까지 최대한 '김혜경다운' 옷을 찾아냈다.

이에 대해 오 감독은 "너무 천박하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딱 김혜경만큼의 적당함으로 잘 표현된 것 같다. 김혜경이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을 살리는 데 대단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전도연을 향한 고마운 마음과 만족을 표했다. 전도연의 열정 덕분에 '무뢰한'은 김혜경의 의상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