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용어 중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라는 독일어가 있다. 링(ring)은 말 그대로 '고리 혹은 둥근 원'을 말하는 것이고 반데룽(wanderung)은 '걷는 것 혹은 방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용어를 조합한 링반데롱은 야간에 산을 오르거나 악천후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목표가 불명료한 경우에 목표를 향하여 똑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원을 그리며 계속해서 같은 곳을 돌고 있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화이트 아웃(whiteout)이라는 말도 있다. 이는 극지방 혹은 겨울철에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면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져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사회의 일면을 장식하는 기사들을 보면 '아마도 우리사회는 지금 링반데롱 혹은 화이트 아웃을 만난 것은 아닐까'한다. 이는 평범한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빈번히 부딪칠 수 있는 현상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다 보면 시야가 툭트여 아무런 애로사항 없이 나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야말로 안개가 자욱하거나 화이트 아웃이 발생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맴돌며 고군분투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전문가들은 시야가 회복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거나 즉시 행동을 중지하고 방향과 위치를 확인한 후 조난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많은 분도 아마도 그들 스스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물을 향해 똑바로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사회가 비바람을 만나고, 태풍을 만나고, 주위가 흐려지고, 시야가 안 보이는 링반데룽 혹은 화이트 아웃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에 안보인다고 하여 그 목표가 없어진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어딘가 분명 직선으로 가겠다는 목표와 의지가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집착과 번뇌를 접고 잠시 쉬어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없는 상황에서 괜히 무리하게 자신과 타인의 힘을 이용하여 어떻게 해보려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 화양계곡을 가다보면 바위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어떤 일이 우여곡절을 겪게 되더라도 결국은 원래 뜻대로 됨을 비유하거나 충신의 절개를 꺾을 수 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올바르고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비록 순간은 만나는 유혹에 흔들려도, 링반데룽에 의해 아무리 돌아간다고 해도 항상 명확한 목표인 정의는 살아있기 때문에 결국은 그 장소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문득 인디언들의 삶의 지혜가 부러워 진다. 그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잠시 말을 멈추고 서 있는다. 그들의 정신이 미쳐, 그들을 쫓아오지 못할까봐. 정신의 링반데롱….

이혜정·구평복지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