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캄피돌리오 광장 뒤편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전경. 이곳에는 고대 로마 시민들의 신전, 공회당 등이 있다.

- 미켈란젤로가 극찬했다는 판테온
-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세운 개선문
- 아치건축의 결정체 콜로세움 등
- 로마 발길닿는 곳마다 유적 즐비

- 해상무역도시로 번성했던 폼페이
- 수도시설 물탱크 목욕탕 사우나 등
- 오늘날과 견주어도 뒤질 것 없는
- 뛰어난 생활건축 기술에 절로 감탄

로마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 풍부한 한 권의 책과 같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새로운 내용이 나오듯, 걸음을 옮길수록 옛 유적지와 건축물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품을 팔아 로마 남쪽에 자리 잡은 폼페이도 찾았다. 화산 폭발로 오랜 세월 묻혔다가 모습을 드러낸 이곳에서는 고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사를 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멈춘 도시 폼페이의 광장에서 바라본 베수비오 산의 모습.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와 함께 두 도시를 찾았다. 고대 유적부터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근현대까지 인류 문명사가 녹아 있는 로마는 수천 년의 시간이 손에 잡힐 듯한 도시였다. 현지 가이드는 "지금도 땅을 파기만 하면 유적이 발굴돼 공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로마에서는 특히 과거 황제의 위용을 과시하던 고대 건축물이 흥미를 자극했다. 유럽 대륙을 정복하며 제국을 이뤘던 로마는 그들의 번영을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을 통해 과시했다. 엄청난 노동력과 자원이 들어갔을 거대한 건축물은 로마인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수천 년의 이야기가 흐르는 곳, 로마와 폼페이의 건축물에서 그 옛날 번영과 몰락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제국의 번영…여전한 로마의 위용

	흔히 '콜로세움'으로 불리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

제국의 상징이자 위상을 과시하는 대표격 건물로는 단연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 꼽힌다. 흔히 '콜로세움'으로 부르고, 영화나 드라마 속 로마 검투사의 무대로 등장하던 바로 그곳이다.

서기 80년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된 콜로세움은 5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극장이었다. 최대 지름 188m, 높이 48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소실된 상태였다. 르네상스 시대 교회나 궁전을 짓기 위해 이곳의 대리석을 뜯어갔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로마 시내에 버티고 선 콜로세움은 당시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듯했다.

콜로세움은 '아치의 결정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술이었던 아치는 곡선을 만들면서도 하중을 견고하게 받친다. 콜로세움은 수많은 아치를 활용해 상당한 무게를 지탱했다. 외부는 그리스식 기둥으로 장식해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건축적으로도 화려하지만, 내부 장치도 '스펙터클'하다. 잔혹한 경기가 벌어졌던 이곳에는 극적인 연출을 위한 엘리베이터 형태의 구조물, 해전(海戰)을 재현하기 위해 경기장에 물을 채우고 비우기도 하는 배수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관중석은 황제의 모습이 잘 보이게끔 배치됐다. 황제의 권위와 자비가 동시에 연출됐던 콜로세움은 원활한 통치를 위해 존재한 제국의 상징이었다.

바로 옆에는 개선문이 있다. 316년에 세워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으로 높이 20m, 너비 25m, 폭이 7m 규모를 자랑한다. 황제의 생애와 업적을 세세하게 조각해 기념하고 시민들에 홍보하는 데 활용됐다.

대표적인 권력의 상징물인 개선문은 이후 나폴레옹이 파리 샤를드골 광장에 세운 개선문의 시초가 되었다. 신전으로 지어졌던 판테온도 빼놓을 수 없다.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한 번쯤 봤을 석고상의 주인공 아그리파의 감독하에 서기 27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한다.

	판테온 전경.

로마건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자 유럽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건물 중 하나인 판테온은 원형 그대로 지금까지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도 극찬했다는 건물은 거대한 구형 지붕으로 덮였고, 높이 30m, 두께 6.2m인 콘크리트 벽체가 지탱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하늘을 상징했다는 천장 한가운데 뚫린 지름 9m의 구멍이다. 빛이 들어오고 하늘과 통하는 유일한 창문으로, 비가 와도 내외부의 압력 차로 빗물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들어온 빗물이 빠져나가게끔 바닥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동행했던 ㈜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 김두진 사장은 "고대 건축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의 말에서 새로운 유형의 부산건축이 탄생을 기대해 본다.

■사라진 도시…화려한 폼페이 전설

로마에서 남쪽으로 차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에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가 있다. 서기 79년 화산재가 찰나에 삼켜버린 이곳은 18세기 발견되기 전까지 당시 모습 그대로 묻혀 있었다. 비옥한 땅에 상업까지 발달해 풍요를 누렸던 도시는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하게 사라졌다.

폼페이로 향하는 길에 멀리 베수비오 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거대한 폭발로 도시를 집어삼켰던 위력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폼페이는 단 2분 만에 6m 두께의 화산재로 모습을 감췄다.

입구에서부터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완벽하게 그때 모습이 남아있어서인지 골목에서 수레를 끄는 노예가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격자형으로 짜인 도로망은 이곳이 로마의 도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허물어진 집터에는 가옥, 상점, 식당 등이 함께 위치했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창가도 발견된다. 벽화나 돌에 새겨진 그림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상무역도시였던 폼페이는 유흥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고 흥미로운 것은 수도시설이었다. 폼페이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공공수도가 설치되어 있고, 가느다란 수도관도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폼페이에는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도교를 설치됐고 물을 보관하는 물탱크까지 존재했다. 공공수도, 공중목욕탕, 귀족의 주택으로 각각 나눠 보급됐다고 전해지니 얼마나 높은 생활 수준을 영위했는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납으로 만든 수도관 때문에 폼페이 사람들은 납중독을 앓았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이곳이 로마 최대의 환락 도시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발달한 수도시설로 온탕, 냉탕과 사우나 시설까지 갖춘 공중목욕탕도 인기 시설이었다. 이를 지켜본 부산의 원로 건축가는 "2000년 전 설계가 지금보다 뛰어난 것 같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희극이 상연되던 야외극장, 스포츠 경기가 벌어지던 탁 트인 야외경기장, 시민들이 모였을 광장의 터는 시간이 멈춘 채 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일상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 스페인광장·트레비 분수·코스메딘 성당 등도 여행객들 필수 코스로

1955년 '세기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과 '진중하고 고뇌하는 역할'이 잘 어울리는 그레고리 팩이 출연한 로맨틱 영화 '로마의 휴일'. 이 영화 개봉 이후 전 세계인의 가슴에는 '로마'를 향한 열망이 심어졌다. 왕실의 생활이 따분해진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로마 거리로 뛰쳐나가 데이트를 즐기며 들렀던 장소는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먼저 오드리 헵번이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곳은 '스페인 광장'. 17세기에 교황청 스페인 대사관이 이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트레비 분수도 빼놓을 수 없다.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말에 쌓인 동전은 하루 우리나라 돈으로 약 450만 원에 달한다고. 하지만 최근 보수가 시작돼 앞으로 2년간 동전 던지기는 물론 분수의 물줄기 구경도 못 하게 됐다.

오드리 헵번이 머리카락을 자르던 트레비 분수 광장의 미용실은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자리를 옮겼다고 현지 가이드는 설명했다. 떠난 자리에는 '로마의 휴일' 포스터만 눈에 띄게 붙어있다.

'거짓을 말하면 손이 잘린다'는 '진실의 입'(사진)이 있는 코스메딘 성당 앞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이 때문에 코스메딘 성당이 '진실의 입'에 가려 관광객들에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맨홀 뚜껑이었던 '진실의 입'보다 더욱 들러볼 만하니 여행 시엔 참고해 봐도 좋겠다.

로마·폼페이=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