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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북부 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해역 아드리아 해(Adriatic Sea) 대운하에서 바라본 베니스 전경. 이탈리아 본토 사람들이 훈족의 침공을 피하고자 간척 사업으로 만든 '인공의 섬' 베니스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거듭나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이탈리아 베니스. 이름만 떠올려도 누구나 가슴이 설레는 '물의 도시'입니다. 이탈리아 전역이 우기(雨期)로 접어든 늦가을에 찾은 이 물의 도시는 촉촉했습니다.
또한 베니스는 '예술의 도시'입니다.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매년 열리는 곳입니다. 2년마다 열리는 미술축제인 비엔날레가 왜 베니스에서는 매년 진행될까요. 미술전(홀수해)과 건축전(짝수해)이 번갈아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만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건축 분야가 문화의 한 장르로 대접받지 못한 탓에 '건축전'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때마침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 소속 건축인들이 이탈리아 도시 건축 기행을 떠난다기에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던 지난 13일(현지시간) 수상버스를 타고 베니스의 자르디니에 도착했습니다. '정원'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단풍과 고요한 숲길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매년 여름 문턱에 베니스 비엔날레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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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베니스 대운하에 정박 중인 곤돌라. |
지난 23일 약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린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이례적으로 한국 건축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올해 건축전에선 한국관이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지요. 2년 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이 영화 '피에타'로 수상한 적은 있으나 비엔날레에서의 수상은 미술전을 통틀어 처음입니다. 척박한 한국 건축 문화 현실을 감안했을 때도 매우 뜻깊은 성과입니다.
전시 내용은 더 의미 있습니다. 한국관 전시는 '한반도의 오감도'라는 콘셉트로 마련됐네요. 작가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의 '오감도'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무대를 한반도 전체로 넓혔습니다. 근대화 이후 100년간의 남북 건축 흐름을 한 공간에 나란히 전시하고 미래상도 함께 조망했다고 합니다. 주제인 '1914~2014 근대성의 흡수'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남북을 함께 다뤄 주목받았습니다.
이번 시도로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이었던 1995년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고(故) 백남준 선생이 '남북 공동전시'를 목표로 한국관(26번째 국가관) 건립을 추진했던 당시의 꿈도 절반은 이룬 셈입니다. 서울 건축의 대표격인 청계천의 세운상가, 광화문광장, 북한의 김일성광장 등을 통해 건축문화와 이를 통한 시대의 반영을 찬찬히 소개한 전시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북한 건축가들과 공동 작업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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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노바의 탈출기로 유명한 탄식의 다리. |
베니스에서 둘러본 건축물에는 각각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일상을 품었던 친숙함 때문인지 건축이야말로 '가장 담백하고 솔직한 예술'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엔날레 전시관을 벗어나면 거리의 더 많은 집과 교회가 사연을 전합니다. "100년 된 건물은 최신식"이라는 이탈리아의 도시 건축은 말없이 오랜 시간의 흥망성쇠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번영과 멸망, 정복과 피란 등 굴곡진 역사는 건축물을 통해 오늘날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만 한 해 약 4700만 명. 세계인들은 왜 로마의 콜로세움과 베니스의 운하를 갈망하는 걸까요. 먼 길 마다치 않고 모인 여행객들은 2000년 전 집터와 거리에서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괴테는 로마에 도착 후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성당, 박물관, 유적지를 순회하며 눈에 담느라 여념이 없을 관광객들은 어떤 이야기를 얻어갈까요. 이탈리아 유명 도시 건축 기행에서 그 해답을 어렴풋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 120여 개 섬, 400여 개 다리 엮고 관통한 수로·대운하
- 괴테·카사노바가 사랑한 광장과 카페
- 가라앉기 전 가봐야 할 물 위 건축섬
이탈리아 베니스는 수백 년에 걸친 간척 사업으로 바다 위에 탄생한 땅. 역사의 부침에 따라 수많은 사람의 고단한 손길이 묻은 섬 전체는 하나의 건축물이다. 현장에서는 물 위에 뜬 건축물의 면면이 시선 따라 달리 보였다.
여기서 귀밝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베니스 이야기를 우선 풀어보자.
6세기 훈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 사람들이 더는 물러날 곳이 없자 아드리아 해의 석호섬으로 피란했고, 그 섬을 중심으로 땅을 넓혀간 끝에 지금의 모양을 갖추었다. 결국,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가 사람의 손으로 탄생한 셈이다. 농경도 어업도 불가능했던 악조건은 역설적으로 베니스를 최고의 해상무역도시로 만들었다. 실제 15세기까지 500년가량 지중해의 중심에서 해상제국으로서 위상을 떨쳤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금융, 교육, 문화가 꽃피었고 유흥문화 또한 발달했다.
16세기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로 수몰 위기에 놓였다는 위기감은 도시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사람들은 베니스의 석양과 운하와 뱃사공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아드리아 해에 떡 버틴 '거대한 건축물' 베니스 현장은 여전히 분주했다. 세월의 더께와 세계 문화예술사를 아로새긴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인 섬의 매력이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본토에서 베니스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차를 타고 무솔리니가 세웠다는 '자유의 다리'를 건넜다. 차로 이동하는 것은 이곳이 마지막. 일부 여행객은 장화도 준비했다. 비가 오면 바닷물이 넘쳐 무릎까지 올라오곤 하는 일이 흔한 탓이다.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그렇게 우리는 '물의 도시' 베니스로 들어갔다.
■베니스의 '간선도로'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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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로 전경. |
수상버스는 베니스 중앙을 S자로 관통하는 대운하를 따라 움직였다. 120여 개의 섬이 400여 개의 다리로 이어진 베니스를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작은 퍼즐 조각을 이어 붙인 모양일 것이다. 크고 작은 섬의 중앙을 관통하는 것이 이 운하다. 일직선이 아닌 S자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유속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갑작스러운 해수면 상승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베니스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화물을 실어나르는 대운하는 이곳의 관문이자 거대한 건축물 '베니스'의 중심이다. 운하를 따라가다 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베니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소박한 집과 건물들. 높아 봐야 4층 남짓한 건물에는 창문이 유난히 많다. 지반이 약한 주변 환경을 고려해 건물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비잔틴, 르네상스, 바로크 등 시대가 흐르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됐다"는 베니스 건물의 묘미를 한마디로 단정해 설명하기 어려웠다.
수백 년간 그 자리에 있었을 건물들의 벽 색깔은 바랬지만, 주변 풍광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느낌이다. 집집이 개인용 선착장이 마련된 것이 이채로웠고, 대문 앞에 설치된 물막이에 이곳 물난리의 심각성이 짐작되기도 했다.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 신호국 회장은 "베니스 현지를 걸어보니 건축학적인 시각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공간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각 섬의 풍경도 각양각색이었다. 시장이 형성된 섬, 학교가 모여있는 섬, 가옥이 모여있는 섬 등을 운하를 따라가며 구경할 수 있다.
운하의 절반쯤을 지나다 보면 베니스의 관광명소 '리알토 다리'에 당도한다. 16세기 말 안토니오 다 폰테가 돌로 된 최초의 다리를 설계·건축한 것으로 아치형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28m에 이르는 커다란 중앙 아치를 1만 2000여 개의 나무 말뚝이 받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로는 큰 규모의 공사로 건축가 다 폰테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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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병 창궐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을 기념해 건립된 살루테 성당. |
수로 위의 다양한 종류의 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관광객을 실은 곤돌라, 수상택시가 여유롭게 오가고 노를 젓는 곤돌라 뱃사공도 여전히 남아 있다. 곤돌라는 과거 도시 면적이 제한적이었던 베니스 사람들이 시신 운구를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훌륭한 관광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상버스 옆에서 물건 상자를 싣고 느리게 지나던 세계 최대 물류회사의 배는 매우 낯설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S자 운하의 끝에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있다. 바로크 양식의 건축이 돋보이는 살루테 성당은 발다사레 론게나가 설계를 맡았으며 흑사병 창궐시대가 막을 내린 것을 기념해 17세기에 세워졌다. 이 성당 내부의 마리아는 특이하게도 얼굴이 까맣게 표현되어 있다. 이어 배에서 내려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황금사자와 산 마르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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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베니스를 대표하는 산 마르코 광장. |
베니스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아마 '산 마르코 대성당'과 '산 마르코 광장'일 것이다. 베니스의 수호성인인 마르의 유골을 모신 성당인 산 마르코 대성당은 9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양식으로 유명하며, 동방의 양식도 가미됐다. 이는 당시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베니스 건축의 특징으로 보인다. 특히 성당 건축에 장식된 여러 가지 부조 등은 동방 침략 때 가져온 것들로 채웠다고 전하는데, 이후 나폴레옹이 베니스 점령 후 떼어가기도 했다. 뺏고 빼앗기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성당이 자리 잡은 산 마르코 광장은 길이 175m, 폭 80m로 베니스의 정치·종교·문화의 중심지다. 'ㄷ'자로 둘린 건물은 열주로 가득 채워져 하나의 홀로 보이기도 한다.
1층에는 상점이 들어섰는데 특히 1720년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플로리안은 바이런 괴테 루소 헤밍웨이 카사노바 등이 찾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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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광장에서 바라본 산 마르코 성당 전경. |
광장 입구에는 익숙한 황금사자의 모습이 보인다. 산 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가 날개를 달고 황금빛을 띠는 모습이다. 베니스영화제와 비엔날레에서 최고 영예를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이 여기서 연유했다.
광장에서 가까운 곳엔 '두칼레 궁전'과 '탄식의 다리'도 있다.
베니스 총독의 관저였던 두칼레 궁전은 고딕 양식에 비잔틴,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가미된 모습으로 당시 엄격했던 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가 바로 '탄식의 다리'이다. 물이 자주 차오르는 베니스에서 지하감옥행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형살이를 앞두고 탄식을 내뱉었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카사노바가 갇혔다가 그를 '사랑했다'는 많은 여인의 도움으로 이곳을 탈출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관광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베니스를 잠깐 들르는 관광객도 산마르코 광장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경험은 놓치지 않을 정도로 대표적인 명소이며, 이곳 베니스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장소이기도 하다.
# 미술과 건축의 중심 베니스 비엔날레서 '한반도 오감도' 황금사자상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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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을 관람하기 위한 관광객들이 전시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로 미술과 건축계에서 권위를 자랑한다. 1895년 미술전으로 시작해 1980년부터 건축전까지 확대됐으며 홀수 해는 미술전, 짝수 해는 건축전이 개최된다. 전시는 크게 '국가관 전시'와 '주제관 전시'로 나뉜다. 주제관 전시는 그 해의 주제에 어울리는 실험적 작품들이 대거 소개된다. 건축전이 열린 올해의 주제는 '기본(Fundamental)'으로 렘 콜하스가 총감독을 맡았다.
국가관 전시는 자르디니에 위치한 26개 국가관(일부 국가관 복수국가 사용)에서 진행된다. 각자 국가에서 그해의 주제에 맞춰 준비하며 이곳에 국가관을 갖지 못한 나라는 본 전시관에 따로 관을 마련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만 국가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1995년 고(故) 백남준 선생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마지막으로 국가관을 갖게 됐다. 올해 한국관 전시는 조민석 커미셔너가 맡았으며,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 The Korean Peninsula)'라는 주제로 지난 100년의 남북한 건축을 다뤘다. 이 전시로 한국은 비엔날레 진출 역사상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처음으로 받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관에서 만난 안내요원 바스쿠루 발렌티노(25) 씨는 "전시 기간 하루 2000여 명 가까이 찾았다. 다른 관보다 내용이 알차 한 번 들어오면 꽤 오래 머물다 가는 것이 특징"이라며 현지의 높은 관심을 전했다.
베니스 글·사진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