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씨와 그의 조수 노릇을 하는 11세 소년 음포낭이 마운 시내 변두리 공동수도에서 고물 픽업트럭의 드럼통에 물을 담고 있다.

- 서진 씨, 1992년 대우건설 도로공사 때
- 주방장으로 왔다 현지 처녀와 결혼
- 아들·딸 키우며 식수장사로 생계 이어

- 독립 뒤 의무교육제 도입 등 사회 안정
- 다이아몬드산업 육성으로 경제성장 이뤄
- 에이즈 감염률 세계 2위라는 '그늘'도

넓은 면적에 비해 낮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는 보츠와나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종족 간 분쟁이나 정치적 갈등이 없어 매우 안정된 국가이다.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당시에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70달러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7000달러나 된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는 독립 후 발견된 다이아몬드 광산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자원이 많아도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는 정치적 혼돈과 경제적 착취로 인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도 부지기수다.

■눈부신 경제성장, 고민은 에이즈와 가뭄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된 세레체 카마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영국에서 유학한 인텔리였고, 대통령에 취임한 후 다민족 민주주의라고 하는 그의 이상을 추진했다. 보츠와나에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고, 국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추진했다. 구리, 다이아몬드 산업을 육성하였고 결국 그가 집권하고 있는 동안 보츠와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사회 기반시설과 보건, 교육에 투자하여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또한 부패 척결에 앞장서서 현재도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보다 나은 30위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보츠와나의 가장 큰 고민은 에이즈다. 에이즈 감염률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에이즈에 걸린 엄마로부터 병이 전염되는 사례도 아주 흔한 일이라, 아이에게 감염되는 경우도 빈번하고, 부모의 사망으로 인한 고아도 보츠와나 어린이의 15%에 달한다. 남은 아이들은 자연히 고아로,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 남부 내륙국 보츠와나의 화폐단위는 풀라(PULA)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이 공식행사를 치를 때 부르는 만세삼창 역시 '풀라 풀라 풀라'이다. 풀라는 이 나라 말인 츠와니어로 '비'를 뜻한다. 얼마나 가뭄에 시달리면 비가 돈이 되고, 신처럼 되었겠는가. 보츠와나는 남한의 6배가 넘을 정도로 넓은 땅덩어리지만 척박하고 건조해 인구는 20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여행길 가장 큰 위협은 코끼리떼

보츠와나 여행 당시 "칼라하리 사막 북부 변방에 '봉이 김선달' '부시맨들에게 물을 팔아먹는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호기심이 좀을 쑤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 1000㎞의 긴 여행길에 올랐다. 마지막 구간 3000㎞를 남겨두고 나타라는 마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흑인 청년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었다.

"원주민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야 뭐 사자나 표범이겠지요."

주저 없이 대답했더니 그는 고개를 흔든다. 원주민들은 코끼리와 하마를 가장 두려워한단다. '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CITES)'에 의해 지난 89년부터 상아 거래가 금지된 후 아프리카 전역엔 코끼리떼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특히 보츠와나 북부는 코끼리 밀도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곳. 더구나 나타에서 '봉이 김선달'이 살고 있는 마운까지는 코끼리떼 사고 다발지역으로 지난해엔 프랑스 여자가 밤길에 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횡단하는 코끼리떼 앞에서 급정거했으나 놀란 코끼리떼에 차를 밟혀 압사했다나.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 서쪽 지평선은 벌겋게 물들고, 검푸른 동쪽 하늘에서는 보름달이 올라오고,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어둠살을 부른다.

"에라 모르겠다. 이런 밤, 모텔 방에 누워 있으면 병이 나서 죽지!"

흑인 청년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운행을 강행했다. 코끼리떼를 만나면 라이트를 켠 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상책. 달밤에 집채 같은 코끼리떼를 여섯 번 만나고 야생 개떼와 하이에나를 수없이 만나며 마운까지 가니 벌써 자정이 가까웠다.

■현지 처녀와 결혼한 한국인 '봉이 김선달'

	보츠와나 교민 서진 씨와 필자(오른쪽)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튿날 '봉이 김선달'을 어렵잖게 만났다. 서진(徐辰) 씨. 그가 '봉이 김선달'과 너무나 다른 점은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 한몫 잡았지만, 서 씨는 물을 팔아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는 것. 남루한 옷차림에 덥수룩한 염소수염, 2평이 될까 말까 한 침실, 열악한 생활환경, 현지인 아내, 그리고 두 남매. 그는 1992년 대우건설의 보츠와나 북부 도로건설 현장의 주방장으로 이곳에 처음 왔다. 그리고 주방 보조원으로 채용한 현지인 처녀와 눈이 맞아 불장난을 하다가 1993년 홀로 귀국한다.

이듬해 그는 보츠와나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도로공사 중에 친하게 지냈던 윤 목수의 편지였다. 도로공사가 끝나고 모두 철수했지만 윤 목수는 보츠와나에 남아 인테리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편지는 서 씨가 주방장으로 있을 때 불장난한 현지인 처녀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보츠와나에서 사업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마음 약한 서 씨는 전 재산 280만 원을 들고 보츠와나로 날아와 마운 변두리에 있는 처녀 집을 찾아갔더니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떤가. 그는 처녀와 살림을 차리고 윤 목수와 인테리어 사업을 벌였지만, 사업이란 게 어디 뜻대로 되는 건가.

결국 윤 목수는 귀국해 버리고 서 씨는 목수 연장과 다 썩은 픽업트럭 한 대를 떠안고 보츠와나에 정착하게 되었다. 기가 막힐 일은 딸아이가 자랄수록 서 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동남아시아인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대우의 도로공사 현장엔 필리핀 건설 노무자들이 우글거렸다. 남들이 쑤군거리든 말든 '도인' 같은 서 씨는 자신의 딸이라 굳게 믿는다. 지난해 말에는 아들을 낳아 요찬이라 이름 지었다.

그의 주업은 물장사다. 마운 시내 공동수도에서 드럼통 두 개에 물을 받아 픽업트럭에 싣고 흙먼지를 날리며 사바나를 달려 원주민들에게 판다. 한 드럼에 6풀라. 식빵 하나가 2풀라니 물값은 보잘것없다. 어떨 때는 고물 픽업트럭에 현지인들을 싣고 마운 시내까지 태워주고 푼돈을 받기도 한다.

"살아갈 만합니까?"하고 물으니, "좋습니다. 체면 차릴 일도 없고, 눈치 볼 일도 없고 간섭받을 일도 없고…"하며 씩 웃는다. 그렇다. 그는 자유인이었다. 오지여행가


※이 지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