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전당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영화사랑방'을 운영한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평론가, 영화학과 교수,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관객과 함께 보고 싶은 한국 영화를 즐기고 이야기하는 자리다. 이번에는 젊은 독립영화 감독이 추천한 영화를 상영하는데, 지난달 '미스진은 예쁘다'를 만든 장희철 감독이 박헌수 감독의 '진짜 사나이'를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진짜 사나이'(1996년)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 영화가 그 시대 주류 영화를 벗어나는 지점에 있었다는 점과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였다. 1990년대는 제작사마다 특색을 지닌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1996년 개봉 영화를 살펴보면 현재 한국 영화가 놓치고 있는 점을 반성할 수 있다. 같은 해 인상적인 데뷔작이 쏟아진 점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김기덕의 '악어', 임순례의 '세 친구', 김태균의 '박봉곤 가출사건', 임종재의 '그들만의 세상', 김용태의 '미지왕(데뷔작이 생애 유일한 영화가 된)'이 있다. 또 장선우의 '꽃잎', 임권택의 '축제', 이명세의 '지독한 사랑', 배창호의 '러브 스토리'등 당대 한국 영화에서 중요한 경향을 만들었던 감독들의 작품도 나와 신인과 중견 감독의 영화가 골고루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임권택 감독을 제외한 다른 감독들에게 연출의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고 있는 점은 감독의 예술적 세계가 성숙하면서 관객과 함께 나이 드는 감독의 부재로 이어진다. 장선우 감독이 영화 제작을 떠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냉철하게 비판했던 영화적 역량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는 아쉬움으로 이어진다.

정리하자면 1990년대는 신인 감독의 새로운 실험과 패기, 한국 사회에 대한 색다른 접근과 작가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중견 감독의 공존이 한국 영화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사나이'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밀고 나간 영화다. 제작자의 입김이나 관객의 취향을 고려하는 조심스러움보다 이런 것이 세상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나이가 진짜 사나이라는 직설화법이 강하게 묻어 있다. 하지만 영화의 구어체적인 대사를 통해 사나이의 정의, 삶과 죽음, 살아가는 태도와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가치가 발화될 때 특별한 감흥이 생긴다. 일상을 낯설거나 새롭게 만드는 장면, 빠르고 동적인 리듬과 느슨한 리듬의 자유로운 결합, 불연속적인 편집과 과장된 미장센은 독특한 정서와 분위기를 드러낸다. 또 그 시대의 주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진지함과 코미디의 결합을 내세우면서 A급 제작 규모와 B급 영화 감수성이 뒤섞임에 주저하지 않는 용기와 규정된 가치관을 내던지고 돌파하는 파괴력도 느낄 수 있다.

현재 영화계는 감독의 고유한 세계를 담보하지 못한 채 자본의 논리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감독들은 투자·제작자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감독의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 있는 영화가 생각날 때마다 '진짜 사나이'의 외침이 생각날 것 같다.

영화평론가